블랙핑크 제니가 착용해 대중에게도 알려진 인공지능(AI) 안경이 국내에 상륙했다. 맞은편에는 한국 토종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파트너 삼은 구글-삼성 연합이 하반기 출격을 벼르고 있다. 한때 외면받던 안경형 기기가 고도화된 생성형 AI를 만나면서 빅테크의 새 먹거리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AI 글라스 시장 급성장
30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글라스 출하량은 870만대로 전년(2024년) 대비 322% 급증했다. 메타가 85.2%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출하량은 740만 대로 281.3% 증가했다. 옴디아는 올해 출하량이 1500만대를 넘고 2030년에는 3500만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 전 세계 스마트글라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0% 늘었다. 같은 기간 AI 스마트글라스가 전체의 78%를 차지했다. 업체별로는 메타가 73% 점유율로 가장 앞섰다.
2030년 세계 스마트글라스 시장 규모는 82억6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그랜드뷰리서치는 예상했다. 출하량과 시장 규모 전망이 함께 커지면서 빅테크의 신제품 출시도 잇따르는 양상이다.
제니 앞세운 메타, 젠몬 손잡은 구글·삼성
메타와 에실로룩소티카는 이달 25일부터 국내에서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 판매를 시작했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각각 69만원부터다. 레이밴 메타는 백화점·면세점·안경원에서, 오클리 메타는 오클리 파트너 스토어에서도 살 수 있다.
메타는 블랙핑크 제니를 앞세워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중이다. 제니가 착용한 레이밴 메타 웨이페어러 이미지가 공개되면서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도 제품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레이밴 메타는 웨이페어러·스카일러·헤드라이너 스타일로 나왔다. 12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와 오픈이어 오디오를 탑재했고, "헤이 메타"라는 음성 명령 한 마디로 촬영·녹화를 실행할 수 있다. 오클리 메타는 스포츠형 '뱅가드'와 라이프스타일형 'HSTN' 두 가지로 출시됐다. 프리즘 렌즈 기술과 IP67 방수·방진 성능을 갖췄다.
구글과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구글 I/O 2026'에서 안드로이드 XR 기반 AI 글라스 2종을 처음 공개했다. 두 회사가 지난해 12월 젠틀몬스터·워비파커와 협업을 발표한 이후 실제 디자인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설계와 갤럭시 연동을 맡고 구글은 안드로이드 XR과 제미나이 기반 AI 서비스를 담당하는 구조다. 젠틀몬스터는 실험적 디자인을, 워비파커는 일상형 클래식 디자인을 맡았다.
AI 글라스 경쟁이 기술 사양 싸움만으로 전개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얼굴에 쓰는 제품인 만큼 디자인과 착용감, 브랜드 이미지가 초기 구매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메타는 레이밴·오클리를, 삼성·구글은 젠틀몬스터·워비파커를 끌어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구글 제품은 디스플레이를 넣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마이크·스피커를 통해 AI 기능을 쓰는 구조다. 사용자는 안경을 쓴 채 길 안내를 받고 메뉴판 번역을 들으며 음성으로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를 뺀 건 착용감과 배터리 수명을 함께 잡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화면을 넣으면 기능은 늘지만 무게·발열·전력 소모 부담도 커진다. 우선 스마트폰과 연결해 쓰는 AI 보조 기기에 가까운 형태로 출발하는 셈이다.
애플도 비슷한 안경형 기기 신제품을 준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진다. 블룸버그 등은 카메라·마이크·스피커에 시리를 연동한 일상형 웨어러블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출시 시점과 세부 사양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6~2027년부터 시장은 메타·안드로이드 XR·애플이 주도하는 3파전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화면보다 시선·음성으로
기기 성격 자체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연구기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스마트글라스를 '시선 중심 컴퓨팅'으로 규정했다. 기존 개인 컴퓨팅이 화면과 손 중심이었다면 AI 스마트글라스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대상과 공간 자체가 데이터가 되는 방향이라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중화를 가로막는 문제들도 여전하다. AI 글라스에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들어가는 만큼, 쓰는 사람에게는 편리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메타는 촬영 시 LED 표시등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했지만, 회의실·카페·지하철 같은 공간에서 이 장치가 충분한 고지 수단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실제 사용 과정에서 확인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소도 시선 정보·주변 영상·대화 데이터 같은 고감도 정보를 다루는 만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배터리 지속시간·발열·경량화 같은 하드웨어 과제도 함께 언급됐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AI 글라스는 스마트폰을 없애는 제품이라기보다 스마트폰을 꺼내는 횟수를 줄이는 제품으로 봐야 한다"며 "결국 AI 성능만으로는 부족하고, 착용감·디자인·배터리·개인정보 보호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풀어내느냐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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