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망간 앵무새를 다시 새장에 집어넣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아빠는 냉장고 위로 올라간 새를 몰기 위해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섰고, 엄마는 급한 대로 새가 날아오르면 낚아채기 위해 재활용 쓰레기를 담아놓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아빠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제 막 중2병에 접어든 동생은 “날지 못하는 인간한테 잡히면 그건 새가 아니지”라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 냉장고 뒤로 들어간다.”
거실 소파 위에 올라가 이 모든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내가 외치자 “안 돼!” 하며 엄마가 바구니를 집어 던졌다. “뒤로 들어가면 못 잡는단 말이야.”
날아온 바구니에 놀랐는지 엄마의 고함 소리에 놀랐는지 다행히 앵무새가 포드닥 소리를 내며 다시 날아올랐다.
“아빠, 잡아!”
내 명령에 아빠는 식탁 의자 위에서 날아올랐고, 날아오름과 동시에 당신이 앵무새와 같은 새가 아님을 깨닫고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아이코!”
뒤이어 팔을 뻗은 엄마의 간절함에도 새는 TV 모니터 위에 외줄타기를 하듯 내려앉아 우리 모두를 골탕 먹이고 있었다. “저거 은근히 얄밉네.” 나는 조금씩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작전을 바꾸자.”
앵무새가 제일 좋아하는 씨앗들로 바닥에 줄을 세우자 마침내 새가 TV 모니터에서 내려왔다. “가만있어.” 나는 성급히 달려들려고 하는 엄마와 아빠를 진정시키며 새가 스스로 새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새장 입구로 길게 씨앗 길을 놓았다.
“그래 조금만, 그래, 조금만.”
간절한 우리의 부름에 새는 한 발 또 한 발 새장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얄미우리만치 천천히, 그것도 온갖 씨앗의 맛은 다 음미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지만 새장에 스스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동생의 말처럼 나는 새를 잡을 수 없다면 걷게 해서라도 잡아야 했다.
폴짝. 또 폴짝. 이게 웬 횡재냐는 표정으로 씨앗들을 먹어치우던 앵무새는 새장 앞에 다다라 뭔가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그냥 먹어. 그냥, 안으로 들어가서 먹으라고.” 안달이 난 아빠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애를 태웠다. 급기야 손으로 밀어 넣을 듯 부채질을 하는 통에 가만있으라는 엄마의 핀잔을 한 번 더 들어야 했다. “두 사람 좀 가만히 있어, 제발.” 우리는 모두 이제 막 새장 입구로 발을 들여놓는 앵무새의 앙증맞은 두 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학원 다녀올게” 하고 평소에는 공부도 하지 않던 동생 녀석이 벌컥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앵무새는 새장 안에 있던 씨앗마저 잽싸게 낚아챈 뒤 홀연히 날아가버렸다.
“잡아. 어서 잡으라고!”
때늦은 나의 절규와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 잡고 뭐 해”라는 엄마의 원망만이 덩그러니 거실 한가운데 남았다. 아빠는 조금 전 의자에서 자유낙하 하며 부딪힌 무릎을 살필 사이도 없이 두 여자의 뜨거운 눈총을 홀로 받아내야 했다.
앵무새가 탈출을 감행한 지는 한 달쯤 되었다. 그렇다고 지난 5년간 얌전히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새장 밖으로까지 탈출을 감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떼를 써서 데려온 이후, 종종 밥을 줄 때 손가락을 깨물거나 잠시 풀어놓은 사이 온 데 똥을 지린 적은 있어도 요즘처럼 새장을 벗어나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 것이 반복된 적은 없었다. 더구나 새장을 스스로 열고 나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는 척하지 마.”
저녁 먹을 때 싱크대 위로 다시 나타난 앵무새를 보고 엄마는 숨죽여 말했다.
“아는 척을 안 해야 가까이 올 거야.”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고는 슬쩍 밥 먹기 전부터 쥐고 있던 씨앗 봉지에서 앵무새가 제일 좋아하는 씨앗 하나를 꺼내 식탁 끄트머리에 무심히 툭 던져놓았다.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앵무새는 식탁 위를 뱅뱅 돌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거봐. 내 말 맞지?”
거의 매일 아빠와 ‘내 말이 맞네’로 싸우고 있는 엄마는 맞은편에 앉은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빠는 엄마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자꾸만 머리 위를 맴도는 앵무새 때문에 한껏 고개를 낮추고 있었다.
“아이~거 자식, 내려앉으려면 빨리 내려앉든가 불편해죽겠네.”
정확히 아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가 식탁 끄트머리에 내려앉았다. 깜짝 놀란 엄마는 말할 것도 없이, 아빠와 나는 있는 힘껏 숨을 참은 채 엄마가 잽싸게 앵무새를 낚아채길 기다렸다.
“뭐 해? 어서 낚아채, 어서.”
이제는 얄밉기까지 한 날렵한 두 발로 통통 씨앗을 향해 다가오는 앵무새를 보며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엄마를 재촉했다. “빨리!”
엄마가 급한 대로 씨앗 봉지로 앵무새를 낚아채려고 하는 순간, 미처 부리로 씨앗을 물지 못한 새가 엄마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며 있는 힘껏 엄마의 옆머리를 쪼고 달아났다. “아얏!”
또다시 앵무새는 사라지고, 엄마의 오른쪽 귀 뒤로 외줄기 핏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는 척하더니 꼬시다.”
때를 놓치지 않은 아빠의 얄미운 목소리가 급기야 피를 본 엄마의 분노를 더 끓어오르게 했다.
그날 밤, 나는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부엌 싱크대 쪽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고, 부엌 옆에 있는 동생 방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스럭거리는 것처럼 들리던 소리는 이내 딱, 딱, 딱 하는 뭔가를 찍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는 인기척을 느낀 듯 뚝 끊어졌다. 그러고 침대로 돌아왔을 때 다시 딱, 딱, 딱 소리를 내며 한동안 이어졌다.
얼마 전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앵무새가 새장을 탈출한 직후였다. 늦은 밤에 들려오는 그 소리는 흡사 부리로 책상이나 싱크대 문짝을 찍는 듯한 소리였고, 견디다 못해 방문을 열고 나가면 금세 알아채고 소리가 뚝 끊기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밤늦은 시간에 들려오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기회만 생기면 자꾸만 탈출을 감행하는 앵무새의 소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말마따나 날아다니는 새가 하는 짓을 날지 못하는 사람이 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소리를 견딘 채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태진이를 공격한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제 앵무새의 탈출과 아파트에서 일어난 세 번의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세 번의 사건 모두 새가 탈출한 날 밤에 일어났다. 엄마도 그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한 달 전, 처음 앵무새가 새장을 탈출한 날 밤에, 가봐야 어디 가겠어 하고 안심하고 있던 날 밤에, 우리는 모두 책상을 찍는 듯한 그 소리가 주방을 날아다니며 새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새는 주방이 아닌 주방 창문 밖에서 발견되었다.
처음 앵무새를 발견한 것은 엄마였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제일 먼저 주방에 나갔던 엄마가 주방 창문 밖에서 유리창을 콕콕 찍고 있던 새를 발견했다. 엄마보다 겁이 많은 아빠가 자기 전에 모든 창문을 걸어 잠그는 통에 아마 새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새장으로 돌아온 앵무새를 보며 어젯밤의 그 소리는 무엇이었는지 의아해했다. 부리로 나무를 찍는 듯한 그 소리, 날카로운 무언가로 둔탁한 물체를 딱딱 찔러대던 그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그런데 정작 앵무새는 주방이나 집 내부가 아닌 창밖을 날아다니고 있었다니, 도무지 그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앵무새는 어떻게 새장도 모자라 집 밖까지 탈출하게 된 걸까?
첫 번째 피해자는 103동의 현석이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등을 세 번 찔렸다. 아니, 정확히 찔렸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날카로운 무언가로 등을 세 번 찔린 듯하다고 경찰한테 말했다. 반면에 두 번째 피해자인 104동의 종우는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허벅지를 베인 것 같다고 말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가 그랬는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그 두 사건이 정말 앵무새의 소행이라면 ‘세 번 쪼았다’라고 하거나 ‘부리에 쪼인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앵무새가 또다시 탈출한 날 밤에, 세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앵무새가 사람을 골라 공격하다니. 그것도 어린 학생들만 공격하다니. 하지만 세 번의 탈출과 사건들이 맞물린다고 해서 꼭 새의 소행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괜히 엄마에게 꼬시다고 했다가 욕을 얻어먹은 아빠를 데리고 앵무새를 찾는 척 집을 나선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배달을 ‘잠시 쉬겠다’고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래서, 태진이는 괜찮대?”
술이 오르는지 아빠는 벌써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고 있었다.
“팔뚝이 조금 찢어지긴 했는데, 괜찮나 봐.”
나는 언제 내 얘기를 꺼낼까 눈치를 살피며 들은 대로 알려주었다. 눈을 끔벅거리면서도 된장찌개에 공깃밥까지 말아 먹는 걸 보면 아주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기 말이야” 하며 말을 꺼내려는데 “내가 먼저 좀 하자”며 아빠가 말을 잘랐다. 대체로 이런 경우에는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는 우선 내 앞에 채워져 있던 소주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아빠 일 그만두면 안 될까?”
“안 돼. 내가 먼저 때려치울 거야.”
“뭐?”
술기운이 달아나는지 아빠는 푹 꺼진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뭘 때려치워? 학교?” 하고 물어보는 얼굴이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차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칠 건데, 돈 아까우니까 지금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겠어?”
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 아빠의 빈 잔에도 술을 따르고 내 잔에도 따랐다. 되도록이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소주를 마시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익숙한 레퍼토리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왜 배달 일 하는지 몰라서 그래? 아빠가 왜 낮에는 택배하고 밤에는 배달하는지 몰라서 그러느냐고?”
그 말 뒤에는 늘 ‘대학을 못 나와서’,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밭떼기를 다 날려먹어서’, ‘그래서 대학을 못 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동생과 내가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하거나, 혹시라도 대학을 가기 싫다고 했다가는 늘 듣게 되는 말들이었다. ‘공부를 해서 뭐 하다니? 그런 어리석은 말이 어딨어!’ 하며 눈물까지 보이는 통에 우리는 일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더는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재미도 관심도 없는 그곳에,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을 계속해서 갖다 바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배달 일을 안 하겠다는 거지, 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할 말이 많았지만 나는 이미 나빠져버린 아빠의 기분을 생각해 그만두었다.
“학교 졸업하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땐 안 말릴 테니까”라는 말을 끝으로 아빠는 홀짝홀짝 소주만 들이켰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내려다가 “도대체 언제 일 나갈 거야?”라는 날이 선 엄마의 물음에 “내일, 그래, 내일은 나가야지”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제발 당신이라도 정신 차려. 학원 간 녀석은 들어오지도 않고, 도대체 앵무새는 어디로 날아갔길래 안 돌아오는 거야? 어?”
점점 끓어오르는 엄마의 분노를 보며 아빠와 나는 살기 위해서는 거실을 떠나 각자의 방으로―물론 아빠는 그럴 방도 없지만―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 때는 바로 다음 날 아침 돌아왔던 것과 달리 앵무새는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나고는 다음 날이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앵무새가 돌아오지 않은 날 밤, 나는 우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한테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고 얻어터진 아빠가 울고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울음소리는 동생의 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별로 친하지 않았던 남동생의 방문을 여는 것도 모자라, 무슨 이유로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는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울음소리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설마 앵무새가 돌아오지 않아서 우는 건 아니겠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아빠는 결국 엄마한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완전 똥 씹은 표정으로 택배 일을 나갔다. 무려 한 달 만의 출근이었다. 너는 왜 안 나가냐는 엄마의 매서운 질문에 나도 집을 나서긴 했지만 사실 방학이 시작된 지 오래라 딱히 학교에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3, 4, 5월 석 달만 다니면 금세 여름방학을 한다고 말했다면, 엄마는 아마 세상에 그런 날강도들이 어디 있느냐며 쌍욕을 날렸을 것이다. 한 학기에 돈을 5백 넘게 가져가면서, 어떻게 애를 이렇게 천하의 백수처럼 놀릴 수 있냐며, 장학금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딸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막상 집밖에 나와 보니 갈 때가 없었다. 굳이 돈을 들여 버스를 타고,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는 학교에 가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때 눈앞으로 아빠의 트럭이 지나갔다. 분명 나보다 훨씬 먼저 집에서 나갔었는데. 아무래도 주차된 차 안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을 나선 모양이었다.
“아빠, 스돕! 스돕, 아빠!”
나는 전력을 다해 아빠의 트럭을 따라가며 고함을 질렀다. 에어컨이라도 나오는 아빠의 차 안이 시간을 때우기에 제일 나을 것 같았다.
“학교도 때려치우고 바로 택배 일 하려고?”
어젯밤의 서운함이 남았는지 아빠는 재밌지도 않은 농담을 던졌다. “안 그래도 오늘부터 배워보려고”라고 받아쳤지만 역시나 재밌지 않은 건 아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 에어컨을 틀어놨는데도 차 안이 쾌적하지 않았다. “차가 왜 이래. 에어컨도 영 시원찮고” 하며 다시 말을 걸어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택배도 싣지 않은 차를 끌고 도무지 어디로 가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어? 저기, 저기 우리 앵무새 아니야?”
넋을 놓고 있다가 나는 차 앞으로 휙 날아가는 새를 보며 소리쳤다. “저기 봐, 꽁지깃이 반밖에 없는 게 우리 앵무새 맞잖아.”
이제 막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던 아빠는 부루퉁한 얼굴로 잠시 쳐다보고 있더니 “그렇긴 한데, 머리에 빨간 깃털이 더 많잖아. 우리 앵무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앵무새는 데려올 때부터 꽁지깃이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생이 이틀 밤낮을 밥을 안 먹고 버티는 통에 분양을 받으러 가긴 했지만, 나는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끄럽게 깍깍거리는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중에 골라도 꼭 저 같은 걸 고른 동생도 한심했다.
‘그러지 말고 여기, 멀쩡한 애들 중에 골라 봐. 얘는 꽁지가 반밖에 없어서 제대로 날지도 못해.’
하지만 뒤이어 이어진 동생의 말에 지켜보고 있던 가게 사장님도 우리도 딱히 뭐라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새장에 가둬놓을 건데, 날고 못 날고가 뭐가 중요해요.’
들릴 듯 말 듯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동생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배달 못 한 택배가 있어. 금방 다녀올게.”
골목 안쪽 주택 1층 출입문 위에 내려앉은 앵무새를 쳐다보고 있을 때 운전석에서 내린 아빠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거 하나 배달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서 그대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새는 주택 2층으로 올라가는 비스듬한 담장 위를 오르내리며 분주히 콘크리트 가루를 쪼아 먹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 소리에 달려가보니 아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현관 입구에 나자빠져 있었다. 새가 오르내리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던 아빠는 그 안에서 반듯이 누워 숨진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말았다. 아빠는 한 달 전에도 택배를 배송하기 위해 이 집을 들렀다고 했다. 내용물이 전기면도기였는데, 꼭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고 아빠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말했다.
아빠는 숨진 할아버지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소한 물건들을 택배로 시켜 물건을 받을 때마다, 고생이 많다고 꼭 물 한 잔씩 주던 분이었다고 했다. 일회용 면도기를 쓰다 보니까 자꾸만 살이 베인다는 말에 아빠가 전기면도기를 추천해줬다고 했다. 그래서 꼭 전해주고 싶었다고, 물건을 전해주지 못해서 계속 찜찜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문을 안 열던 순간부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었다고, 용기를 내 진즉에 문을 뜯어봤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더는, 이제 더는 이 일을 못 하겠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그제야 일을 그만두고 싶다던 아빠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인 없는 전기면도기를 경찰관에게 넘겨주고 돌아오면서 아빠는 정이 쌓이는 게 무섭다고 했다. 쌓인 정들이 모여 단단해지기도 전에 괴팍한 사람들을 만나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때론 이제 막 정을 쌓아가던 어른들이, 때론 아직 어른이라고 부르기도 앳된 이들이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의욕이 꺾여버린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벨을 눌러도 나와 보지 않는 집이 두려워졌다고, 얼마 전에는 전날 배달한 아이스박스가 그대로 쌓여 있는 고시원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더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고향에서 보낸 갖가지 반찬들을 끝내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그 안에 있었을 거라고, 아빠는 정말 마음을 다친 사람처럼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정신 차려. 다 큰 어른이 뭐 하는 짓이야!”
나는 횡설수설 웅얼거리며 핸들을 잡은 아빠가 못내 걱정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엄마한테 해야 할 얘기를 자꾸만 나한테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면 진즉에 엄마와 상의했으면 될 일이었다. 겁이 나서 한 달 동안이나 두문불출할 일이었으면 적어도 가족과 상의는 했어야 한다.
“바로 들어가서 엄마랑 상의하는 거야, 알았지?”
내 말에는 대답도 않고, 아빠는 바람이라도 쐐야겠다며 배달 일을 하는 오토바이를 끌고 나갔다. 청록색 오토바이도 모자라 청록색 짐칸에, 청록색 헬멧까지 쓰고 달리는 폼이 꼭 이틀 전에 가출한 우리 집 앵무새 같았다. 그놈이 범인인데, 나는 좀 전에 본 아빠의 약한 모습을 잊으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식탁에 알 수 없는 종이들을 쭉 펴놓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앉아 있는 모습은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니다.
“도현이 방에 가서 볼펜 한 자루만 가져와.”
도무지 손으로는 셈이 안 되겠던지 엄마는 볼펜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식탁에 쭉 펼쳐져 있는 종이들은 각종 공과금 청구서였다.
오랜만에 들어와본 동생의 책상 위에는 깎다 만 연필들과 부러진 연필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요즘에도 연필을 쓰는 놈이 있구나 생각하며 서랍을 뒤지는데 좀처럼 볼펜이 나오지 않았다. 책상 맨 밑 서랍 속에 깎지 않은 연필만 수십 자루 있을 뿐이었다. 공부에 별 취미가 없는 동생은 그래도 취향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때 “뭐라고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펜이 없는데” 하며 방을 나서려는데 “네? 경찰서요?” 하는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거실에 울려 퍼졌다.
경찰서에 들어서며 엄마는 “우리 새끼 어딨어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내 새끼 어딨냐구요?” 하며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덩치를 부풀리는 우리 집 앵무새 같았다. 갑자기 뛰쳐나오느라 산발이 된 머리까지, 날개를 한껏 펴고 적을 위협하던 앵무새의 모습 그대로였다.
범인은 앵무새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한 달 전부터 아파트 근처에서 일어난 세 번의 사건은, 또한 오늘 일어난 사건까지 모두 동생이 벌인 짓이었다.
동생은 연필로 건우의 눈을 공격했다. 앞선 세 명의 피해자가 모두 뒤에서 가격당한 것과는 달리 동생은 이번에는 건우를 정면에서 공격했다. 날카로운 연필 끝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로 알고 있었던 건우의 눈을 찔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건우와 태진이, 종우와 현석이가 내 동생의 제일 친한 친구인 줄 알았다.
“계속 여기 있어봤자 소용없어. 너는 집에 가.”
동생의 곁에서 조사하는 것을 하나하나 듣고 있던 엄마는 밤이 늦어지자 나를 떠밀며 말했다. 같이 있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고, 그러면서도 경찰관이 동생을 몰아붙이기라도 할 양 치면 “지금 애한테 무슨 짓이에요!” 하며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딴에는 엄마도 무서웠을 텐데, 어떻게든 엄마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동생에게 말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행동들 때문인지, 처음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하지 않던 동생도 차츰차츰 하나씩 지난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차마 끝까지 다 들을 수 없을 만큼, 한편으로는 한집에 살던 사람이 당한 일을 이렇게까지 모를 수도 있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여러 번 동생이 우는 소리를 들었고, 한 번은 살짝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그날 동생의 뒷모습은, 조금 전 한껏 날개를 펴고 적을 위협하던 앵무새의 모습과는 달리, 때론 아무리 맛있는 씨앗을 줘도 멍하니 창문 밖만 내다보고 있던 우리 집 앵무새를 닮았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던 동생의 모습은, 발정이 온 건 아닐까 걱정하며 넣어줬던 다른 앵무새에게 있는 대로 쪼임을 당하고 깃털을 뽑혔던 오래전의 앵무새와 닮아 있었다. 그날의 앵무새처럼, 그 밤 동생의 깃털은 형형색색 화려하지 않고 흐릿한 무채색에 가까웠다.
경찰서 밖은 안보다 더 시끄러웠다. 경찰차에 실려 온 주취자가 차에서 안 내리려고 떼를 쓰고 있었다. 버티는 힘이 얼마나 좋던지 경찰 두 명이 달라붙어도 그 진상을 못 뜯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경찰서 입구로 오토바이 한 대가 유유히 들어왔다. 싸이카가 아니었다. 일정한 속도로 달려와 내 앞에 우뚝 멈춰 선 것은 바로 아빠의 배달 오토바이였다.
“앵무새 뭐야?”
나는 어이없게도 아빠의 헬멧 위에 당당히 앉아 있는 새를 보며 물었다. 꽁지깃이 반은 뜯기고, 아빠 말마따나 머리의 정중앙 반이 빨간 깃털인 영락없는 우리 집 앵무새였다.
“색깔도 비슷하니까 지 동룐 줄 아나 봐.”
아빠는 여전히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전에도 몇 번, 정체를 알 수 없는 화려한 색깔의 새들이 달리고 있는 아빠의 헬멧 위에 내려앉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아빠의 청록색 오토바이와 청록색 짐칸,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아빠의 청록색 헬멧은 정말이지 우리 집 앵무새를 많이 닮았다. 유력한 용의자가 이제 용의선상에서 확실히 배제되는 순간이었다.
“근데 왜 이제 와? 연락한 지가 언젠데.”
“잡힌 놈은 잡힌 놈이고, 합의금이라도 벌어야지.”
아빠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뒤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짐칸에 헬멧 있으니까 써.” 그러고는 내가 올라타기 무섭게 부릉 하고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미처 헬멧을 꺼내 쓸 시간도 없었던 나는 부랴부랴 짐칸에서 헬멧을 꺼내 썼고, 아빠는 크게 원을 돌며 오토바이를 돌렸다. 아빠 머리 위에 내려앉은 앵무새는 용케 발톱으로 헬멧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오토바이가 경찰서 입구를 막 통과할 때쯤 <배달이요> 하고, 아빠가 배달을 시작하고 악몽을 꿀 때면 중얼거리던 말을 앵무새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배달이요.>
<배달이요.>
<배달―.>
“아, 시끄러워!”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식탁 위에 널브러진 청구서들을 치우며 먼저 씻고 자라고 했다. 맥주 한잔 할까, 하고 물어봤지만 “오늘은 먹지 말자”라고 말했다. 반쯤 열려 있던 동생의 방문을 닫고 나는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씻고 나왔을 때는 잠깐 담배를 태우러 나갔는지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 내려다보니 아빠 머리 위로 담배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날 밤 아빠는 세 번 혹은 네 번 정도 쥐새끼처럼 현관을 들락날락하며 담배를 피웠는데, 나도 덩달아 잠이 오지 않아 베란다에 나가 그런 아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연필 끝이 건우의 눈 옆을 스쳐 괜찮다고 하지만, 동생은 어떻게든 행동의 결과를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우리 둘이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했을 때,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며 엄마와 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애 좀 재우고, 옷이라도 갈아입히고 다시 오라고 해서 왔어.”
엄마는 한겨울 집 앞에 만들어놓았던 눈사람이 녹아내릴 때처럼 스르르 소파에 주저앉았다. 늘 그러던 것처럼 방으로 들어가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동생도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파에 앉았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남았는지 푸르스름한 기운이 거실 바닥으로 희미하게 비치던 즈음이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사실 우리가 깨어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깨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이렇게 말없이 나란히 앉아 애꿎은 새장을 바라보고 있을 일도 없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나 보자, 하고 이 새벽녘에 소파에 앉아 있을 우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때 딱, 딱,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앵무새가 새장의 잠금장치를 부리로 콕콕 찍어대고 있었다. 다시 탈출을 감행할 모양이었다.
“앵무새 내가 풀어줬어.”
그 순간 동생이 말했다. 우선 ‘서로 말 안 하기’ 내기에서는 동생이 졌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늘 진다.
“앵무새가 무리 생활을 한다는 거 알아?”
그러며 참고 있던 말을 내뱉는다. “무리 생활을 하는 애를 새장에 가둬두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풀어줬어. 혼자 갇혀 있는 꼴이 보기 싫었거든.”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기운이 푸르스름하던 새벽의 기운을 거실 바닥에서 조금씩 밀어낸다.
“근데 자꾸만 돌아오는 거야. 아무도 없는 새장으로 말이야.”
동생은 지난 기억이 떠오르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는다. 우리는 동생의 이야기가 앵무새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앵무새를 닮았다. 아주 넓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좁은 새장에 갇힌. 결국에는 새장으로 돌아와야 할 앵무새와 닮았다. 매 순간 탈출을 갈구하는 앵무새를, 매 순간 날기를 갈망하지만 홀연히 날지 못하는 앵무새를. 어쩌면 이미 꽁지깃을 다쳐버린 앵무새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남은 우리 셋은 ‘서로 말 안 하기’ 내기에서 두 번째로 지는 사람이 되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가 들어줬어야 할 이야기를,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놓쳐버렸을지도 모르는 동생의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들어주려 애를 쓴다.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함을, 지금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기운만큼이나 어렴풋이 깨닫는다.
[심사평] 충분히 준비된 작가를 만났다는 설렘
(최윤 소설가·조경란 소설가)
예심을 거쳐 전해 받은 총 15편의 응모작을 공들여서 읽었다. 예년보다 작품의 수준이 높아져서 당선작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에 담긴 의도와 시도는 이 시대 소설이 하는 일에 대해 상기하게도 했다. 이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소설은 어느 정도는 희망이나 인간애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숨’은 폐경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의 출구 없어 보이는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중년의 위기는 숨 막힘처럼 찾아오고, 새로움의 시도는 프리다이빙을 통해 여전히 숨이 남아 있음을, 그 숨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숨을 참는 법, 숨을 참고 멀리 나아가는 방법과 과정이 이 글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더 디테일하게 그려졌다면, 울릉도에 온 이후 모든 것이 예정된 결말로 흘러가 버리는 듯 보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전남편에게 쓰는 서간체인 ‘치즈케이크’는 자기 고백적 형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된 문장과 어조가 돋보였다. ‘선량함이 장점’인 젊은 부부에게 생기는 삶의 균열, 그 후 다방면으로 존재의 변신을 모색하는 과정과 여성 특유의 숨겨진 능력과 변화를 담담하게 보여주려는 시도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독자에게도 느껴질 수 있는 생생한 장면이나 ‘불량’에 대한 인물의 새로운 관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을 나누었다.
올해 당선작을 ‘앵무새의 탈출’로 선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였을까.
탈출과 귀환을 반복하는 앵무새를 둘러싼 네 명의,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가족은 어느 면으로 모두 앵무새를 닮았고,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독자를 닮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인물에 내장된 페이소스와 문제를 가시화하는 필요한 소동들의 배치와 서술방식의 은근함, 현실을 읽어내는 시선의 방식 등이 벌써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충분히 준비된 작가를 만났다는 설렘으로 어떤 이견도 망설임도 없이 ‘앵무새의 탈출’을 올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축하드린다. 그리고 많은 응모자의 내일의 글쓰기에도 큰 박수를 드린다.
[당선소감] 글을 쓰기 위한 탈출
(윤재민 소설가)
글이 너무 진지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원래는 안 그런데 글만 쓰면 진지해지려는 저에게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을 써보자고 시작한 글이 ‘앵무새의 탈출’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방황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내 안의 문제를 주변의 문제들로 돌리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서른이 넘어 커피 일을 시작하고, 마흔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글 쓰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명산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르는 지게꾼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다란 나무 양쪽에 짐을 싣고 가파른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우리나라 설악산과 지리산에도 아직 지게꾼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은 괜한 방송을 탔다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지리산의 지게꾼은 사찰의 김장을 위해 80kg 가까운 짐을 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그를 본 등산객들이 격려의 박수를 쳤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볼 때면 이제 힘들다는 말은 못 쓰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직 써야 할 얘기들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핑계 대지 않고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말을 기대하고 건넨 원고에 날카로운 평을 하는 아내가 편치 않았습니다. 당선이 되면 그 앞의 원고를 다 보여주겠다고 원고를 끊었습니다. 만추문예 덕분에 원고 대방출의 시간이 앞당겨졌습니다. 최윤, 조경란 선생님의 심사는 받았으니 이제 아내의 심사를 받아보겠습니다. 기쁜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