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의 탐나는 책] 피와 철, 그리고 몰락한 제국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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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폰 베르너가 그린 ‘독일 제국의 선포’. 가운데 흰옷을 입은 이가 비스마르크다.  ⓒWikimedia Commons

안톤 폰 베르너가 그린 ‘독일 제국의 선포’. 가운데 흰옷을 입은 이가 비스마르크다. ⓒWikimedia Commons

매일 들려오는 뉴스가 도무지 이게 현실인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고립주의를 선언하고, 이성과 합리의 사고방식은 어디에 맡겨 놓았는지 하루아침에 자국의 대규모 국가기관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린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기존의 원칙이란 것도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이라는 말이,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최고 권력자들 부근에서 들려오는 요즘이다. 이런 세태를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혼란의 암흑기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피와 철>은 19세기 말 격동의 시기, 불확실성의 진원지이던 독일을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역사서다.

[정소연의 탐나는 책] 피와 철, 그리고 몰락한 제국의 그림자

책 제목 ‘피와 철(Blood and Iron)’은 지역 유지 출신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일거에 권력자로 자리매김하게 한 그의 1862년 연설에서 따왔다.

“독일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닌 힘을 찾고 있소. 오늘의 커다란 문제 앞에 내려야 할 결단은, 과거에도 실패했던 연설과 다수결이 아니라, 철과 피로써 이루어져야 할 것이외다.”

국가 통일이란 명분이 있다고 해도, 피와 철이 상징하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말은 무자비하게 들린다. 비스마르크는 별명 ‘철혈 재상’에 걸맞게, 군사력을 키워 독일을 통일로 이끌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는 무력을 자제했다. 유럽 국가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동맹을 맺게 해서 때릴 듯 때리지는 않고 긴장을 유지하는 천재적인 외교가의 면모도 발휘했다.

비스마르크는 세 명의 황제를 모셨다. 할아버지 빌헬름 황제는 역사가들에게 큰 흥미를 주지는 않지만 당시 독일 제국을 위해 비스마르크를 중용하고 나라를 부국강성하게 했다는 공적은 평가받을 만하다. 문제는 서른도 안 돼 황제에 오른 손자 빌헬름 2세였다. 그 아버지는 중병으로 100일도 못 채우고 자리를 물려줬다. 비스마르크는 다음과 같이 빌헬름 2세를 묘사했다. “황제는 마치 풍선과 같다. 줄을 꽉 잡아당기지 않으면, 그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비틀어진 자기 확신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이 거만한 황제는 타국과의 연합을 자제하던 영국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해군력을 키워 당시 해상의 제패자인 영국을 뛰어넘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표명했다. 그러나 군비 증강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는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19세기 말은 산업혁명의 결과로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가 향상하던 시기였다.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사람들도 진중한 비스마르크 총리에 비해 거침없어 보이는 젊은 황제가 자신들을 화려한 미래로 데려다주리란 기대가 컸다.

빌헬름 2세 집권기(1888~1918년)에 독일은 급격한 군비 확장을 단행하며 제국주의적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890년 비스마르크를 해임하고 균형 외교를 폐기했지만 프랑스-러시아 연합을 견제할 방안이 없었다. 결국 이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무리한 군사정책과 외교적 실책으로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국민들은 피폐한 경제 현실을 마주했다.

빌헬름 2세는 1918년 11월 패전의 황제가 돼 네덜란드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낸다. 전범의 심판은 피했으나 독일인의 기억 속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몰락한 제국의 잔해는 그대로 남았고, 1933년 히틀러와 나치는 그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세종서적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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