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해만 안 하면 재건축 잘될 텐데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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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핵심 공급 수단 재건축·재개발, ‘10·15 대책’ 이후 올스톱 위기

최근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자 이재명 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를 포함한 역대급 수요 억제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 억제로는 한계가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수요자가 원하는 좋은 입지에 양질의 아파트를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주간동아가 수도권 공급절벽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뉴스1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뉴스1
“목동 아파트를 매입해 산 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온갖 규제를 겪었다. 그간 얻은 교훈은 정부가 작정하고 규제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정비사업 하지 말라’고 선언한 셈이니, 일단 조합설립 등 재건축 진행 속도를 조절해야할 것 같다.”

10월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목동 아파트 단지들은 사업성이 높고 필지 소유관계도 깔끔해서 재건축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며 “정부가 특혜를 줄 필요도 없고 그저 방해만 안 하면 재건축이 잘 이뤄질 텐데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정비사업 하지 말라고 선언한 셈”
목동 신시가지아파트는 10·15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 사정권에 든 재건축 단지 가운데 하나다.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보다 앞선 1980년대 정부가 계획적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교육시설, 녹지, 등 각종 기반시설을 갖춰 조성했다는 점에서 이른바 ‘0기 신도시’로 불린다. 1∼14단지 재건축이 모두 완료되면 현재 2만6635채에서 최고 높이 49층, 4만7000채 규모의 미니신도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목동에 신축 아파트를 대거 공급할 경우 서울 주택 수요의 상당 부분이 충족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정비사업에 차질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대책에서 나온 정비사업 규제 핵심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후) △5년 재당첨 금지(5년 내 투기과열지구의 다른 정비사업 조합원 분양 신청 금지) △대출 제한(잔금 대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 70%에서 40%로 하향, 15억 원 초과 주택은 대출 2억~4억 원으로 제한) 등이다.

투기 수요를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정비사업 지연 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선 재건축·재개발 거래를 원천 봉쇄할 경우 자금 여력이 부족해 ‘엑시트 전략’이 필요하거나 ‘현금청산’ 위험을 안게 된 일부 소유주와 조합원이 정비사업 진행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업성이 비교적 낮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경우 대출 규제까지 겹쳐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에 규제 대상이 된 서울 정비사업 지역은 재건축 139곳(10만8387채), 재개발 75곳(5만577채)에 달한다. 유휴 부지가 부족한 서울에서 기존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재건축·재개발은 현실성 높은 공급 대책으로 꼽힌다. 재건축·재개발은 통상 14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비구역 지정부터 조합해산까지 평균 정비사업 기간은 14년 2개월이었다. 공사비 인상에 따른 조합 안팎의 갈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 현재는 그보다 소요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3만6000채 규모인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내년 1만8000채, 내후년 1만 채로 급감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비사업 지연으로 자칫 신축 아파트 공급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자가 목동에서 만난 이들 사이에서도 이번 규제가 재건축에 끼칠 영향을 놓고 시각이 엇갈렸다. “재건축 속도를 높이는 데 반대할 다물권자(정비사업구역에 여러 물건을 소유한 사람)는 소수라서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소유 10년 차 주민 김모 씨)이라거나 “소유주나 조합 내부의 갈등이 심해질 텐데, 서울시가 말한 ‘2030년 전 사업시행인가’는 어려울 수 있다”(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 이모 씨) 같은 의견이 나왔다.

서울 일부 정비사업 현장에선 현금청산을 피하기 위한 고의적 소송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자신이 상담했다는 서울 시내 재건축 조합원 사례를 이렇게 설명했다.

“강남과 비(非)강남 지역에 재건축 아파트를 한 채씩 보유한 사람이 ‘5년 재당첨 금지’ 규제를 피하려고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더라. 두 지역의 분양 신청 시기가 5년만 차이가 나면 현금청산을 피할 수 있으니, 명분을 만들어 송사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가치 평가를 떠나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면 자칫 재건축·재개발이 지연될 수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사실상 ‘강제 거래 금지’ 조치를 당하게 됐다”면서 “현금청산 대상으로 내몰리거나 자금줄이 막힌 이들은 규제가 풀릴 때까지 정비사업을 하지 말자며 재건축·재개발 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의도, 목동 등 이른바 ‘상급지’로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높은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 외곽 지역 재건축·재개발은 가뜩이나 공사비 인상에 따른 사업성 악화가 우려되던 차에 추가 규제까지 덮쳐 울상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조합원은 “안 그래도 예상 분담금이 재건축 후 기대되는 집값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라 주민 사이에서 이견이 많았는데, 잔금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자 ‘그냥 재건축을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정비사업 규제, ‘똘똘한 한 채’ 심화”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로 정비사업이 지연되고 집값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인만 소장은 “이번 규제가 나온 후 조합원 지위 양도 조건을 맞출 수 있는 매물은 희소성이 높아져 오히려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신규 택지를 찾기 어려운 서울에 주택을 공급하려면 정비사업이 가장 주효한 수단”이라면서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재건축·재개발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은 그 자체로 사업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기에 미래 주택 공급을 위해 다소 참고 견딜 필요가 있다”며 “지난 노무현, 문재인 정부 당시 과도한 정비사업 규제로 지금 같은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벌어졌다. 현 정부는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12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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