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을 한 달 남겨 놓고 국회에서 대권 도전을 직접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국무총리로 2년 반 동안 국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입장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폭주가 이어지는 정치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 전 총리는 공식 출마 선언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민주당을 향해 한층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 전 총리는 “자기 편의를 위해 탄핵하는 게 아니고, 국무위원들을 직무 정지 시키는 게 아니고, 수사검사 직무를 정지시키는 게 아니고, 대통령과 입법부가 충돌하지 않고 협치하는 근본적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와 희망은 없다”며 최근 민주당의 행보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특히 지난 1일 밤 민주당이 기습적으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탄핵소추를 시도한 것에 대해 “어제 정말 실망했다. 우리나라 정치수준이 정말 이 정도인가”라며 개탄했다. 최 전 부총리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직전 한 전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이날까지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이었던 한 전 총리가 이를 수리하면서 탄핵소추 절차는 무효화됐다.
한 전 총리는 “왜 민주당이 지금 한미 ‘2+2’ 회의에서 관세협상 주력부대로 활동하는 최 전 부총리를 몇 시간 동안 결정해 탄핵하는지,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에 대해 비참함과 참담함을 느꼈다”며 “국가 안정성, 대외적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조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를 지지해온 보수진영 인사들은 그의 ‘위기의식’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고, ‘쉽지는 않지만 직접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 측은 “민주당의 폭주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단순히 ‘반명(反明) 빅텐트’ 차원에서 출마 결심을 한 것이 아니다”며 “진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림 없이 건전한 정치의 구도를 다시 만드는 데 있다는 생각에 ‘국가대개조 빅텐트’를 구상해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전 총리는 출마 선언문에서 “새로운 정부는 ‘한덕수 정부’가 아닌 바로 ‘여러분의 정부’”라며 “저는 이길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이고 좌나 우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사람이며 약속을 지킨 뒤 즉시 물러날 사람”이라고 피력했다.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는 거리두기를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관련 질문을 받고 “한 번도 제 철학을 꺾어가면서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본 적 없다. 제 나름대로 항상 설득하려 노력했다”고 답했다.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윤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경청의 창구를 열어놓겠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2주에 한 번씩 언론과의 기자회견, 야당 당수와 식사, 노조·기업·시민단체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등 소통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한 전 총리는 출마 첫날부터 빅텐트에 대한 구상을 가감 없이 밝혔다. 임기 단축과 3년 차 개헌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한동훈 전 대표가 지금껏 강조해온 것이고,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라는 슬로건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제시한 것이다. 또 약자와의 동행은 보수진영 유력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걸었던 핵심공약이었다. 한 전 총리는 출마 선언 말미에 “저에게 가차 없이 쓴소리 하시는 분들, 대선 과정에서 경쟁하시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삼고초려해 거국통합내각에 모시겠다”며 “국무총리라서 못한 일을 대통령의 힘으로,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오 시장과는 이날 바로 오찬을 함께하는 속도감 넘치는 행보에 돌입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오 시장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본 한 전 총리는 이곳의 한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으며 오 시장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약자와의 동행’을 본인 공약으로 차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오 시장은 즉석에서 “물론입니다”라고 화답하며 “제가 출마는 못하지만 제가 준비한 정책은 출마시키겠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식사 후 기자들과 만나 “어려운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복지 혜택을 본인의 선호와 선택에 따라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며 “어떤 물건을 나눠주는 것보다 재원을 들여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는 정책이 옳다. 그것이 보수의 가치와 ‘약자와의 동행’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이란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는 직후 첫 지방 일정으로 광주로 내려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걸로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전 총리가 유일한 호남 출신 대선 후보임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한 전 총리는 광주로 향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모두가 가슴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지역이어서 출마 선언 첫날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를 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정책, 국민통합 이런 데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