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94〉 [AC협회장 주간록104] 벤처투자법 개정, K-벤처 생태계의 새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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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 시장은 지금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구조 전환 입구에 서 있다. 최근 발의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투자 기간을 늘리거나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수준의 개정으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벤처투자회사 운용 구조를 바꾸고, 창업기획자 투자 가능 범위를 넓히며, 지방자치단체와 모태조합을 포함한 공공 자본 역할을 재정렬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번 개정안은 K-벤처 생태계를 더 빠르고, 더 투명하고, 더 넓게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한 새로운 설계도에 가깝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 제도 도입이다. 현행 법체계는 벤처투자회사가 직접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하고 운용하는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벤처투자 시장이 고도화되면서 산업별 전문성, 펀드별 책임 분리, 인력 운용의 유연성이 중요해졌다. 이번 개정안은 벤처투자회사가 유한회사 또는 유한책임회사 형태의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전문회사가 벤처투자조합 결성과 업무 집행을 담당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는 국내 VC 운용 구조가 단일 조직 중심에서 펀드별 전문 운용체계로 이동할 수 있는 제도적 출발점이다.

다만 이 제도는 제한 없는 자회사 확장이 아니다. 법안은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가 벤처투자회사 및 그 소속 임직원이 합해 100% 출자한 회사여야 하고, 본점 외 영업소를 둘 수 없으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문인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또 하나의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는 하나의 벤처투자조합만 결성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운용 전문성을 높이되, 남용 가능성은 제한하려는 균형적 접근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책임 있는 운용 분리라고 보는 것이 맞다.

두 번째 중요한 변화는 창업기획자, 즉 액셀러레이터 투자 의무 대상 확대다. 기존 창업기획자 의무 투자 대상은 초기창업기업 중심으로 제한돼 있었다. 초기 투자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성장 사다리가 끊기는 문제가 있었다. 액셀러레이터가 초기 단계에서 기업을 발굴하고 보육해도, 해당 기업이 3년을 지나거나 후속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제도적으로 적극 지원이 어려울 수가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 한계를 보완한다. 창업기획자 투자 의무 대상을 초기창업기업뿐만 아니라 업력 5년 이내이고 국내외 투자 유치 이력이 없는 창업기업, 자신이 투자한 초기창업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고시하는 유사 대상까지 확대한다. 이는 액셀러레이터를 단순한 시드 투자자가 아니라 초기 발굴, 보육, 후속 투자까지 연결하는 풀스택 초기 투자자로 재정의하는 변화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초기기업은 보통 첫 투자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시장 검증, 제품 고도화, 인력 확보, 후속 투자, 글로벌 진출까지 이어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제도가 초기 투자에만 머물러 있으면, 액셀러레이터는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도 가장 중요한 후속 성장 단계에서 손을 떼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단절을 줄이고, 액셀러레이터가 기업 성장 연속성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세 번째 변화는 지역 투자 활성화다. 법안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역중소기업 육성 관련 기금이 창업기획자가 업무집행조합원인 개인투자조합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는 지역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지역 창업기업은 수도권에 비해 투자 접근성이 낮았고, 지자체 자금 역시 복잡한 기금 구조나 제한적 운용 방식에 묶이는 경우가 많았다. 지자체가 지역 기반 액셀러레이터와 개인투자조합을 통해 직접 초기 투자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다면, 지역 기업 발굴과 민간 매칭 투자가 훨씬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역 창업 생태계는 단순히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업을 발굴하고 검증하며 후속 성장으로 연결하는 운용 주체가 부족하다. 따라서 지자체 출자 확대는 예산 투입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역에 기반한 액셀러레이터가 GP 역할을 하고, 지자체가 LP로 참여하며, 지역 기업이 초기 자금을 공급받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 창업 정책이 보조금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네 번째 변화는 모태조합 공시 의무 신설이다. 한국벤처투자가 모태조합 결산서, 운용 현황, 운용 성과, 기타 운영 자료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모태조합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가장 중요한 정책자금 플랫폼이다. 그만큼 운용 투명성, 성과 공개, 시장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공시 체계가 강화되면 LP와 민간 운용사는 정책자금 방향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시장 참여자 간 정보 비대칭도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행정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벤처투자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장치가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변화는 각각 따로 떨어진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벤처투자회사에는 전문 운용 구조를 허용하고, 액셀러레이터에는 후속 투자와 업력 5년 이내 기업 지원의 길을 열어주며, 지자체에는 지역 투자 참여 경로를 넓히고, 모태조합에는 투명성을 요구하는 구조다. 이는 결국 K-벤처 생태계를 중앙집중형, 단기 집행형, 초기 단절형 구조에서 전문화, 연속성, 지역성, 투명성을 갖춘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제도 변화가 곧바로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도가 유연해질수록 시장 참여자 역량 차이는 더 뚜렷해진다.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전문 인력과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운용사는 실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창업기획자 투자 대상이 확대되더라도 선별 역량이 부족하면 후속 투자는 오히려 손실 확대 통로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출자가 확대되더라도 지역 내 우수한 GP와 검증 체계가 없다면 정책자금의 비효율이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의 성공 여부는 법조문 자체보다 실행 역량에 달려 있다. 액셀러레이터 업계는 더 정교한 기업 평가 체계, 보육 성과 관리, 후속 투자 판단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VC 업계는 펀드별 전략과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자체는 단순 출자자가 아니라 지역 산업과 창업기업을 연결하는 전략적 LP가 돼야 한다. 모태조합은 공시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기준점을 제공해야 한다.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장으로서 이번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법안은 액셀러레이터를 더 넓은 투자 생태계의 핵심 주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셀러레이터는 더 이상 단순히 창업 초기 기업을 발굴해 소액 투자하는 기관에 머물 수 없다. 앞으로는 초기 발굴, 보육, 후속 투자, 지역 투자, 글로벌 확장까지 연결하는 플랫폼형 투자자로 진화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그 방향을 제도적으로 열어주는 의미가 있다.

물론 보완할 점도 있다.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 전문인력 기준, 업무 위탁 범위, 내부통제 기준은 시행령과 하위 규정에서 명확히 설계돼야 한다. 창업기획자의 후속 투자 허용 범위도 현장에서 혼선이 없도록 구체화해야 한다. 지자체 출자의 경우에도 단기 성과 중심 예산 집행이 아니라 장기적 지역 투자 생태계 조성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모태조합 공시 역시 단순 자료 공개가 아니라 시장이 활용 가능한 형태의 정보 제공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이번 벤처투자법 개정 논의는 규제를 얼마나 푸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벤처투자 생태계가 더 전문적으로, 더 책임 있게, 더 지역적으로, 더 투명하게 작동할 수 있느냐다. 지금 대한민국 벤처투자 시장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금 확대가 아니라 자본이 더 빠르게 순환하고, 더 정확하게 배분되며, 더 오래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번 개정안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투자조합운용전문회사는 VC 운용 구조 전문화를 열고, 창업기획자 투자 대상 확대는 AC 성장 사다리 역할을 강화하며, 지자체 출자 확대는 지역 벤처투자의 실질적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모태조합 공시는 정책자금의 신뢰를 높인다. 이 네 가지가 제대로 결합될 때 K-벤처 생태계는 단순한 투자시장 확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자본 순환 구조로 진화할 수 있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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