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옥 前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최근 서울 주요 대학에서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대면 시험 부정행위가 대규모로 적발돼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를 두고 학생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필자는 본질적으로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적인 평가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본다.
이제는 AI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AI를 어떻게 활용해 역량을 극대화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는 비단 대학가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창업 지원 시스템'에도 엄중하게 적용돼야 한다.
현재 K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공공기관의 창업지원사업 심사평가는 마치 수능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다. 전문심사위원들이 제출된 사업계획서의 기술성과 사업성을 평가해 당락을 결정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유려한 문서작성 능력'이 우선시 된다는 점이다.
필자가 전북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역의 많은 중소기업이 뛰어난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하고도 정작 R&D 지원사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사업계획서를 정부 양식에 맞춰 써낼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전북테크노파크 소속 전문위원들을 기업과 연결해 사업계획서 작성을 돕게 함으로써 그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R&D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현장 전문가의 '조력'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기업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났던 것이다.
창업진흥원장 시절의 기억은 더욱 뼈아프다. 매년 약 2000개의 스타트업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만, 그 뒤편에는 7000~8000개에 달하는 탈락 업체들이 있었다. 창업진흥원 데이터센터를 통해 지원사업 선정에서 제외된 업체들의 사업계획서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당장 사장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보석 같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하지만 현재의 '단판 승부형' 심사평가 시스템에서는 한 번 탈락된 아이디어나 신기술은 개발자의 유별난 고집이 없는 한 대부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혁신 자산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필 방지'에 급급할 때, 창업 선진국들은 이미 AI를 공식적인 파트너로 인정하며 혁신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영국 혁신청(Innovate UK)은 AI 활용을 금지하는 대신, 오히려 AI를 활용해 더 명확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계획서를 쓸 수 있도록 공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또, 서류 제출 전 AI가 기술성과 시장성을 미리 체크해 보완점을 알려주는 사전 진단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의 중소기업 혁신연구 지원(SBIR) 프로그램은 '심사'보다 '육성'에 방점을 둔다. 문서 작성 역량이 부족한 기업을 위해 전문가가 계획서 작성을 돕는 'Phase 0' 단계를 운영하며, 전문가들은 AI와 시장 데이터를 활용해 '안 되는 이유'가 아닌 '되게 만드는 방법'을 조언하는 코칭형 프로세스를 지향한다.
에스토니아 역시 AI 비서 'Burokratt'를 통해 창업자의 아이디어를 법적 요건 및 시장 데이터와 연결해 사업 모델 구체화를 돕는다. 이처럼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미 '평가자'에서 '공동 창업자적 조력자'로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창업 지원의 패러다임을 '심사평가'에서 '지도육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다.
첫째, AI를 활용한 사업계획서 작성을 '공식화'해야 한다. 창업자가 아이디어의 개요와 핵심 기술을 개괄적으로 입력하면, 방대한 빅데이터를 가진 AI가 시장 현황을 분석하고 사업계획서를 표준화된 형태로 고도화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대필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도구의 활용'이다. 이를 통해 창업자는 문서 작성의 고통에서 벗어나 사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심사평가위원의 역할을 '판사'에서 '조력자'로 전환해야 한다. AI가 정교하게 다듬은 계획서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이 아이디어나 기술은 '즉시 사업화 가능' '데이터 보완 필요' '기술 고도화 필요'” 등 맞춤형 진단을 내리는 방식이다. 단순히 점수를 매겨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아이디어나 기술 또는 창업아이템을 상업화할 수 있을지 조언하고 길을 열어주는 '집단지성 컨설팅'이 핵심이 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창업'이나 '모두의 아이디어' 프로그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금을 걸고 등수를 매기는 경쟁의 틀에 머물러 있다. 현장의기업인들과 예비창업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단지 '글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꿈이 버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AI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공식적으로 창업 생태계에 끌어들여야 한다. AI가 사업의 뼈대를 세우고, 전문가들이 살을 붙이며, 정부가 판을 깔아주는 '상생의 시스템'이 구축될 때, 우리는 탈락의 늪에 빠졌던 수천 개의 혁신 씨앗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 대한민국이 진정한 창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다.
백두옥 前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 jadebe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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