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대 후반 중국인 고교생들이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부근에서 한국 공군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하다 적발됐지만, 중국 정부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더라도 '입법 공백'으로 간첩죄 기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등 수사당국은 10대 후반의 중국인 2명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군사기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지난달 21일 오후 3시 30분께 미 군사시설과 주요 국제공항 부근을 돌아다니며 DSLR 카메라로 수천 장의 사진을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이 중 한 명은 부친이 공안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범행 동기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다만 설령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군사상 정보 수집 목적으로 촬영했다고 해도 간첩죄로 처벌하긴 어렵다.
간첩죄를 규정한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여기서 '적국'은 북한으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북한 외 다른 국가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할 경우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수사 당국이 두 사람에게 군사기지법을 적용한 것도 이 같은 입법 공백 때문으로 풀이된다. 군사기지법에 따르면 군사기지·군사시설을 무단 촬영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 안보 시설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검거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가정보원 건물을, 지난 1월에는 제주국제공항을 촬영한 중국인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 역시 정보 수집 등 부정한 의도가 드러나더라도 북한과 연관성을 입증해야 현행법상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
현재 수사 당국은 이 같은 범죄들을 군사기밀보호법, 군사기지법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간첩죄에 비해 법정형이 낮아 범죄 억제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7월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영국 방산업체 한국지사장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국내 방산업체 기술본부장 B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B씨는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육군 준위로부터 감시·경계 전력 관련 군사기밀 자료를 받아 A씨 측에 넘긴 혐의를 받았고, A씨는 해당 자료를 사내에 퍼뜨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군사 기밀을 유출한 중대한 사안이지만 간첩죄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아 군사기밀보호법만 적용됐다.
2018년에는 해외 정보관 명단을 일본 등 외국에 넘긴 전직 군 간부들이 수사 당국으로부터 적발돼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경우에도 군형법상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죄'가 적용돼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에 그쳤다.
이 같은 법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간첩죄의 대상인 '적국'의 범위를 '외국 또는 외국 단체'까지 넓히는 형법 개정안이 여러 번 국회에 발의됐지만, 지난해 11월 1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의결된 이후 진전이 없는 상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 개정안에 반대했다고 주장하며, 12·3 계엄 검토의 이유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민주당이 개정안에 반대했다고 보기 어렵고, 여러 법안을 종합해 대안을 마련하는 심사 단계였다고 판단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