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재료 혁신 선도… ‘스페셜티 소재 일류 기업’으로 도약

11 hours ago 4

[100년 기업을 향해] 일동케미칼㈜
전자재료 1세대 ‘소재 자립’ 한길
배터리-우주 항공으로 영토 확장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일동케미칼 본사 전경.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일동케미칼 본사 전경.

반도체도, 폴더블 스마트폰도, 전기차 배터리도 결국 ‘소재’가 성능을 가른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핵심 전자재료의 국산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AI 반도체와 전고체 배터리 시대가 다가올수록 해외에 의존하던 고순도·고기능성 소재의 값어치는 더 커진다.

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33년간 묵묵히 자기 기술을 벼려온 소재 기업이 있다. 일동케미칼㈜(대표 조준혁)이다.

고난을 딛고 다시 일어선 1세대 소재기업

일동케미칼의 역사는 한국 전자재료 산업의 성장사와 겹친다. 1994년 ㈜동아켐텍으로 출발해 2013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이 회사는 산업용 솔벤트와 반도체 케미컬에서 시작해 디스플레이·이차전지 소재까지 영역을 넓혀온 1세대 소재 전문기업이다. 일동케미칼은 대구 달성군 논공산단에 본사와 두 공장을, 경기 화성 동탄에 UV(자외선) 경화 소재 연구분소를 두고 올해 창업 33주년을 맞았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때 고난의 시기를 지났지만 2022년 말 새 경영진과 함께 ‘재도약’의 길에 들어섰다. 그 중심에는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나노·고분자공학 박사이자 삼성디스플레이 기술전략 담당 출신인 조준혁 대표를 필두로 삼성SDI 제조기술 그룹장과 동진쎄미켐 사업부장을 지낸 박재휘 사장, 삼성SDI 영업기획 출신 송용관 전무가 한 팀을 이뤘다.

글로벌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생산·경영을 책임지며 직접 현장을 이끈다는 점이 일동케미칼의 첫 번째 저력이다. ‘내가 맡은 일에서 최고 전문가가 돼 가정의 행복을 책임지고 인류사회에 공헌하자’는 핵심 가치는 회사의 재도약을 떠받치는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20년의 무사고, 신뢰가 된 반도체 케미컬 회사의 가장 단단한 뿌리는 반도체 케미컬이다. 웨이퍼 세정과 산화막 제거에 쓰이는 혼합 산부터 식각액·현상액·스트리퍼·시너까지 반도체 전(前) 공정에 필요한 케미컬을 폭넓게 다룬다. 그중에서도 전력 반도체 웨이퍼 표면처리를 위한 스핀 식각액은 20년 넘게 단 한 번의 품질 사고 없이 공급해 온 간판 제품이다. 미세한 불순물 하나가 수율 전체를 좌우하는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 이처럼 긴 거래 이력은 신뢰도 증명서와 다름없다. 비결은 ‘ppb(10억분의 1)급 순도 관리’에 있다. 금속 불순물과 이물을 ICP-MS(유도결합플라즈마질량분석기) 같은 정밀 분석장비로 걸러내고 0.2㎛ 크기 파티클(미세먼지)까지 통제한다. 여기에 고객의 공정 환경과 성능 요구에 맞춰 농도를 일일이 재단해 주는 맞춤형 대응력이 더해진다. 같은 현상액이라도 고객마다 다르게 설계하고 스핀 식각액과 BOE 식각액은 용도별·농도별 제품군으로 갖췄다. 이런 기술력 덕분에 일동케미칼은 네패스 및 국내외 전력 반도체 분야를 선도하는 주요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최근에는 패키징 공정용 감광성 폴리이미드(PSPI) 디벨로퍼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한 번 맺은 고객과 오래가는 거래가 회사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다.

일동케미칼 에천트 제조설비. 일동케미칼 제공

일동케미칼 에천트 제조설비. 일동케미칼 제공

유무기 하이브리드, 흉내 낼 수 없는 한 수

디스플레이는 일동케미칼이 가장 오래 공들인 무대이자 회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다. 간판 제품은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전자기 간섭(EMI) 차폐 투명 하드코팅으로 전자파를 막으면서 투명성과 대전방지 기능까지 갖춘 고난도 소재다.

일동케미칼은 이를 국내 대형 패널사에 양산 공급한다. 기술의 폭도 넓다. OLED TV의 수명을 늘리는 산소·수분 차단 측면 실런트와 고굴절 봉지재, 초박형 패널의 강성을 높이는 블랙 하드코팅, 접거나 마는 화면을 겨냥한 폴더블·롤러블용 접착 소재까지 개발을 마쳤다.

이 모든 소재의 비밀은 회사의 핵심 무기인 ‘유무기 하이브리드 기술’에 있다. 유기 고분자의 유연함에 무기 나노 입자의 기능을 결합해 단일 소재로는 낼 수 없는 복합 성능을 끌어내는 설계 기술이다.

여기에 나노 입자를 고르게 흩뿌리는 초정밀 분산과 UV·열경화 설계가 더해진다. 모니터가 더 얇고 유연해질수록 소재에 요구되는 물성도 까다로워지는데 일동케미칼은 바로 그 지점에서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을 만들었다. 같은 기술은 반도체 패키징 몰딩재와 유리 기판 접합 소재로도 자연스럽게 뻗어 나간다.

세계 최초 전고체 배터리에서 우주 항공까지

일동케미칼의 진짜 무기는 ‘미래’다. 2022년 회사는 차세대 배터리용 극판 페이스트의 세계 최초 양산 공정을 확립했다. 해당 페이스트는 나노 입자의 분산을 위해 필수적인 분산제 없이도 균일한 분산이 가능해 고성능 극판 구현과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향상에 기여하는 핵심 소재다. 지금은 이를 국내 주요 배터리 대기업에 공급하며 고성장을 이끌고 있다.

다음 목표는 입자 크기를 70㎚(나노미터)까지 낮춘 건식 나노 실버 파우더의 국산화다. 차세대 배터리 극판 소재의 핵심 공급자가 되겠다는 구상이며 탄소나노튜브(CNT)를 고르게 분산하는 기술도 함께 가다듬는다.

회사의 시선은 배터리 너머로도 향한다. 로봇 관절부용 고내열·고경도 코팅과 우주항공용 경량 소재를 하이브리드 기술로 개발하고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통해 충남대, 충남테크노파크, LG디스플레이 등과 전도성 고분자(PEDOT:PSS)의 국산화에도 도전한다. 일동케미칼은 배터리 극재에서 연 50억 원, AI 반도체 기판 중간재에서 연 70억 원 등 구체적인 매출 목표까지 제시하며 디스플레이 중심이던 사업을 반도체·배터리·로봇·우주항공으로 넓히는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재 자립이라는 큰 그림, 일류 기업의 꿈

33년간 삼성·LG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거래를 끊임없이 이어왔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신뢰의 증거는 없다. 큰 기업이 쉽게 할 수 없는 소량 다품종·빠른 시제품 영역을 중견기업 특유의 기민함으로 메워온 것이 일동케미칼의 생존 전략이다.

고객사의 공정을 깊이 이해해 맞춤 소재를 먼저 제안하는 ODM·OEM 방식, 대학·연구기관과 손잡는 산학협력과 오픈 이노베이션, 고객사마다 전담 기술 인력을 붙이는 밀착 대응이 그 바탕이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과 ISO 9001·14001 인증,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분야 국책과제 4건 연속 수주가 그 실력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한다.

회사가 그리는 그림은 분명하다. 수입에 기대던 핵심 소재를 국산 기술로 대체하는 ‘소재 자립화’, 차세대 산업이 필요로 할 소재를 먼저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첨단 고분자와 초정밀 분산 기술로 전자재료 혁신을 이끄는 스페셜티 소재 일류 기업.’ 일동케미칼이 내건 비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을 떠받치는 소재처럼 이 회사는 오늘도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소재 강국의 내일을 쌓아 올리고 있다.

“100년 기업 향한 도전과 혁신 지속”

[인터뷰] 조준혁 일동케미칼㈜ 대표

조준혁 일동케미칼 대표(사진)가 늘 곱씹는 네 글자가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창업주가 거듭 건네는 당부다.

“말이 앞서지 마라, 무엇보다 건강을 먼저 챙겨라.” 묵묵한 실력으로 증명하라는 이 가르침은 33년간 요란하지 않게 기술을 쌓아온 일동케미칼의 방식과 꼭 닮았다.

조 대표가 임직원에게 강조하는 단어는 ‘배움’과 ‘겸손’이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낮은 자세로 배워야 진짜 전문가가 됩니다.” 개인이 맡은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자라고 그 성장이 다시 회사의 힘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일동케미칼을 키워온 원동력이다.

“함께 성장해야만 100년 기업이 가능합니다.” 회사의 ‘배움(學)·협력(協)·실행(行)’이라는 경영 철학은 사람과 기술이 함께 크는 ‘영속적 기업’을 향한다.

기술 경영자로서 그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연구개발 부문까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주 52시간 규제를 두고 “손발을 묶어 놓고 뛰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구원이 시간에 얽매여선 창의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과 중심의 자율적 연구 환경이야말로 소재 산업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가 그리는 내일은 또렷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넘어 이차전지·로봇·우주항공으로 사업을 넓히며 핵심 소재 국산화를 이끄는 ‘스페셜티 소재 일류 기업’이다.

“우리만의 무기인 첨단 고분자와 초정밀 입자 분산 기술로 소재 자립도를 높이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겠습니다.” 빛을 감추고 힘을 길러 온 33년을 넘어 이제 그 빛을 드러낼 채비를 하고 있다.

윤희선 기자 sunny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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