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리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제대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장)
섭식장애 환자 이야기다. 섭식장애는 먹는 것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다시 원래 편안한 식습관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극단적으로 체중이 감소하는 거식형 섭식장애와 폭식을 반복적으로 하는 폭식성 섭식장애 등이 전형적 형태다. 하지만 비정형화된 섭식장애가 훨씬 더 많다.
정형화된 섭식장애 유병률은 전 세계 인구의 3%에 이르며 비정형화된 섭식장애까지 포함하면 미국의 경우 인구 9%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섭식장애는 더 이상 특정인의 질병이 아니라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질환이다. 특히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치사율이 가장 높다. 모질게 지속하는 다이어트와 이에 따른 체중 저하는 감염이나 주요 장기기능 저하 등으로 이어져 사망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자살 위험도 높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기점으로 국내 10대 초반 여성 청소년의 거식증과 10세 미만 아동의 섭취장애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게 의료의 본질이기 때문에 중증 거식증은 사회보장체계인 공공의료와 건강보험이 우선 보장해야 할 분야다. 선진국들은 섭식장애를 공공의료에 포함시키고 지원한다. 일본의 경우 2014년 정부가 ‘섭식장애전국지원센터’를 설립해 현(県) 단위에서 섭식장애 환자와 가족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호주는 2023년부터 ‘국가섭식장애전략 2023∼2033’을 추진하고 있다. 섭식장애 경험자와 가족의 의견을 반영해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반면 국내에선 섭식장애 치료와 지원 체계는 거의 공백 상태로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도 청소년과 청년이 겪고 있는 섭식장애를 더 이상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환자가 회복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내 한 비영리단체가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대에서 ‘제3회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연다. 이 행사는 섭식장애 경험자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힘들게 견뎌온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김율리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제대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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