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비영리 ‘의료법인’이 지역필수의료 붕괴 막을 버팀목

11 hours ago 5

박진식 대한의료법인연합회 회장(세종병원 이사장)

박진식 대한의료법인연합회 회장(세종병원 이사장)
‘집 근처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이 평범한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해야 하는 지역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은 10여 년 사이 40%나 줄었다. 제때 치료받았다면 살 수 있었던 죽음, 즉 ‘치료 가능 사망’의 비율마저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흔히 병원이 부족해서라고 여기지만 우리나라 병상 수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작 부족한 것은 필수의료라는 ‘기능’이다. 진료량에 따라 보상하는 현행 수가 구조에서는 환자가 적고 위험이 큰 지역일수록 필수의료를 지탱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무능이 아니라 제도의 한계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누가 맡건 공적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그리고 공적 재원은 기능 중복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공백을 안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곳에 투입되어야 한다. 각 지역에서 현재 필수의료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투입해 기능 중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또 투입된 공적 재원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

공적 재원 투입 대상으로서 ‘의료법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의료법인은 공적 재원을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적 그릇이다.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 설립과 해산은 물론이고 재산 처분과 정관 변경까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적 자금이 사적 이익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는 통제 장치를 이미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다.

또 의료법인은 태생부터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됐다. 의료법인 제도는 1973년 ‘의료의 공공성 제고와 지역 편중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 제도가 기반이 되어 1970∼80년대에 취약지마다 병원이 설립됐고 지금도 취약지 거점병원의 상당수를 의료법인이 책임지고 있다.

비영리 민간을 공공의료의 주체로 활용하는 흐름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일본은 ‘사회의료법인’ 제도로 세제 혜택을 주고, 필수의료의 책임을 맡게 하는 길을 일찍부터 택했다. 프랑스도 공익적 민간의료기관(ESPIC)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의료법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의료법인이 비영리성과 공적 통제라는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 해도 그것만으로 신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일부의 일탈과 그로 인한 나쁜 인식이 의료법인 전체의 위상을 깎아내린 것도 사실이다. 의료법인은 투명성을 기반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우리 곁에서 지역필수의료를 지켜 온 의료법인이라는 공익적 토대를 공공의료의 핵심 파트너로 인정하고 선제적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당면한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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