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가 자체 브랜드(PB) 식품에서 합성 색소를 전면 퇴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국 식품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최대 유통사의 결정이 단순한 내부 개편에 그치지 않고 수입 식품 전반의 기준으로 번질 경우, 라면과 과자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해온 한국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1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약 1000종의 PB 식품에서 합성 색소, 보존제, 인공 감미료 등 30여 종의 첨가물을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월마트의 PB 식품 중 90%는 이미 합성 색소를 쓰지 않고 있으며, 남은 제품도 단계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회사 측은 “소비자들이 더 단순하고 익숙한 성분을 요구하고 있다”며 무첨가 전환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월마트 자체 브랜드에 국한되지만 향후 다른 판매 상품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이 무첨가 라벨에 익숙해지면 입점 브랜드에도 동일한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식품들이 월마트의 핵심 매대에 이미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번 월마트의 조치가 한국 업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월마트 온라인몰에서 다섯 봉지 묶음 제품과 컵라면 형태로 판매되고 있으며, 불닭까르보나라·떡볶이 등 다양한 파생 제품도 진열돼 있다. 농심 역시 신라면과 새우깡을 앞세워 월마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 스낵 박스로 묶은 과자류도 꾸준히 공급되고 있다. K푸드 열풍이 본격화하면서 월마트가 주요 판매 창구가 된 셈이다.
문제는 일부 라면과 스낵류가 여전히 합성 색소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강렬한 붉은색을 구현하기 위해 레드40·옐로6 등 합성 색소를 쓰는 경우가 일부 있고, 젤리와 사탕류 역시 선명한 색감을 위해 인공 첨가물을 사용한다. 유럽연합은 이미 특정 합성 색소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에서 첨가물 규제를 강화하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월마트의 이번 선언은 이런 흐름을 앞서 반영한 성격이 강하다.
식품업계에선 이번 월마트의 정책 변경 탓에 한국 식품이 매대에서 밀려날 위험이 당장은 없겠지만, 대응 속도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농심은 미국 현지 공장에서 파프리카 추출 색소와 비트 파우더를 도입했고, 삼양식품도 천연 색소로 대부분 대체했다. 오리온과 롯데제과도 클린 라벨을 내세운 현지 맞춤형 신제품을 늘려가고 있다. 다만 천연 색소는 원가가 높고 색상 유지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완전 대체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사가 무첨가 선언을 하면 다른 유통사들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K푸드가 미국에서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단순히 매운맛, 이색 경험을 넘어 건강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도 “지금은 불닭, 신라면 같은 히트 제품이 잘 팔리지만, 무첨가 트렌드가 확산되면 레시피 개선을 서두르지 못한 업체는 진입장벽에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