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다리를 면도날로 긋는 파격..."'내면의 악마' 직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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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다리를 면도날로 긋는 파격..."'내면의 악마' 직면하길"

"인간은 나약하고 추악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거짓말을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허함을 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죠. 제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내면의 악마'를 직면하길 바랍니다."

30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스페인의 연출가 겸 배우 안헬리카 리델은 한 명의 무당처럼 과감한 말을 쏟아냈다. 리델은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과 스페인 국가 희곡 문학상,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까지 받은 세계적인 연출가다. 다음 달 2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로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난다.

공연계가 그를 부르는 별명은 '무대 위 투우사', '마드리드에서 온 괴물', 스페인의 분노' 등이다. 리델은 각종 금기를 깬 강렬하고 충격적인 작품으로 세계 공연계에 파장을 일으킨 연출가다. 그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과감하고 불편한 퍼포먼스 때문에 공연 도중 퇴장하는 관객이 나올 정도다.

자신의 다리를 면도날로 긋는 파격..."'내면의 악마' 직면하길"

리델의 첫 내한 공연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 역시 그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이다. 후안 벨몬테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사랑의 죽음'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음악이다. 예술을 투우와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에 비유하면서 죽음을 탐구하는 연극이다.

투우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리델은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투우와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벨몬테가 목숨을 걸고 하는 투우를 일종의 '영적 수행'으로 여긴 것처럼 나도 목숨을 걸고 연극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다리를 면도날로 긋는 파격..."'내면의 악마' 직면하길"

이번 공연은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리델의 과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육점을 무대로 옮겨온 듯 도축한 소 사체가 등장하고, 면도날로 자신의 다리를 긋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펼쳐질 예정이다. 그는 "나는 피의 냄새와 맛, 새빨간 색깔을 보고 자극받는다"며 "피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간 기분을 느끼며 2시간 동안 연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다"며 "공연이 끝날 때마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다"며 웃으며 말했다.

리델은 이런 연출이 절대로 자신을 스스로 헤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관객이 "감정의 폭풍"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라고. 그는 "몸으로 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며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광기를 마주하고, 신체를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진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대 장치를 모형으로 대체하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자신의 다리를 면도날로 긋는 파격..."'내면의 악마' 직면하길"

그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현대 사회를 "좋아요 사회"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다. 리델은 "모두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어딘가에 속하길 원하면서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라며 "관객들이 가면을 벗고 내면의 악마를 직면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런 도발적인 메시지와 퍼포먼스의 뿌리에는 리델이 지키고자 하는 예술가로서 사명이 있다.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사회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며 "예술가도 동떨어진 곳에서 사회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가는 사랑받고 사회에 속하려 하지 말고 세상과 전쟁을 하듯 살아야 한다"며 "예술가를 미치광이로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헬리카 리델의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는 5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구교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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