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다주택자 투기세력 몰아
규제 쏟아내 임대시장 위축
주택공급 보릿고개 넘으려면
개인 보유물량 풀릴 수 있게
유인책 정교하게 설계해야
이사철이 다가오면 집값 뉴스보다 전월세 앱을 먼저 연다. '매물이 있나' '월세가 감당이 되나' '보증금은 안전한가' 등 주거 불안은 매매가격보다 살 집의 '가용 물량'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물량은 새로 짓는 집뿐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택 재고가 임대 시장으로 얼마나 부드럽게 흘러 들어오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동향(1월 5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8%, 전세가격은 0.14% 상승했다. 숫자는 상승이지만, 체감은 '활황'보다 '얇아진 시장'에 가깝다. 거래가 줄면 가격은 선호 단지 중심으로만 형성되고, 다수의 실수요는 관망 끝에 임대로 이동한다. 결국 생활비로 체감되는 승부처는 전월세다.
전월세가 먼저 민감해지는 것은 공급 사이클 때문이다. 입주 물량이 줄면 전세가 먼저 긴장한다. 직방 전망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6412가구로 지난해(3만1856가구) 대비 큰 폭 감소가 예상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착공이 꺾였다는 신호도 있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1~7월 누계 주택 착공은 12만4547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13.1% 감소했다. 오늘의 착공 감소는 몇 년 뒤 입주 감소로 이어지고, 그 충격은 대개 전월세에서 먼저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다주택자 이야기를 피하기 어렵다. '다주택'이라는 단어는 감정부터 건드린다. 그러나 공급이 부족한 국면에서 다주택을 한 덩어리로 죄악시하거나 임대인을 통째로 '적'으로 세우면 결과는 종종 역설적으로 나온다. 임대 물량의 상당 부분은 개인이 보유한 주택 재고에서 즉시 나온다. 새 아파트는 시간이 걸리지만 기존 주택이 임대로 풀리는 속도는 빠르다. 공급 부족기에는 '즉시 공급 가능한 재고'가 시장을 완충한다.
다주택자의 긍정적 역할을 '옹호'가 아니라 '기능'으로만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첫째, 이동성이다. 취업·전근·돌봄·학군 이동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임대가 충분해야 급한 이사가 가능하고, 무리한 매수 쏠림도 줄어든다.
둘째, 다양성이다. 공공이 단기간에 채우기 어려운 소형·도심형·다세대 재고가 임대로 기능하며 선택지를 만든다. 셋째, 유지 관리다. 임대 운영이 지속가능해야 수선·리모델링이 돌아가고 낡은 집이 '살 만한 집'으로 남는다. 임대는 단순 보유가 아니라 생활 인프라스트럭처다.
해외에선 이 관점이 더 자연스럽다. 독일 통계청(Destatis)은 2024년 독일 인구의 52.8%가 임차 거주자이며 유럽연합(EU)에서 임차 비중이 가장 높다고 설명한다. 임대가 '임시 거처'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 표준인 사회다. 미국은 수요가 임대로 이동하면 공급도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 분석에 따르면 단독주택 착공 중 임대 목적 신축(Built-for-Rent) 비중이 2021년 5%에서 2023년 10%, 2024년 9% 수준으로 확대·유지됐다. '사지 못하면 빌린다'는 수요를 '빌리도록 짓는' 공급이 받쳐주는 구조다.
일본의 경우 브루킹스는 2003년 주택·토지조사 기준 일본 민간 임대주택의 다수가 개인 소유(85%)였다고 소개했다. 제도와 시장구조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임대를 '비정상'이 아니라 '표준 서비스'로 다루고, 민간 임대 공급이 시장을 받치도록 설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다주택을 누르면 전월세는 정말 싸질까? 공급이 부족한 시기에 임대 물량까지 위축되면, 전월세는 먼저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투기를 눈감자는 얘기도 아니다. 핵심은 '다주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로 기능을 분해하는 것이다. 정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겨냥해야 한다.
방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급은 '공개 여부'가 아니라 체감 가능한 '전망형 시간표'가 관건이다. 인허가·착공·준공 통계는 이미 공개돼 있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건 '지난달 실적'이 아니라 '앞으로 2~3년, 어디서 무엇이 왜 늦어지는가'다. 단계별 평균 지연(리드타임)과 병목 원인을 함께 보여주는 전망형 공급 캘린더가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줄면 기대가 안정되고, 기대가 안정되면 과열과 공포의 진폭도 줄어든다.
둘째, 임대 시장은 '벌'이 아니라 신뢰 인프라로 잡아야 한다. 임차인 보호를 '가격 통제'로만 접근하면 공급이 움츠러들 수 있다. 그 대신 보증금 안전장치(보증·보험 접근성), 표준계약과 정보 투명화, 분쟁조정의 속도와 실효성을 강화하는 '리스크 통제'가 더 직접적이다. 임대인에게는 예측 가능한 운영 환경을 주되, 그 대가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식이 맞다.
셋째, 다주택은 통째로 규정하지 말고 장기 임대 공급형을 제도 안으로 유도해야 한다. '중장기 임대'는 칼럼의 구호가 아니라 제도 언어로 말해야 한다. 현행 안내 기준으로 임대 의무 기간은 유형에 따라 단기 6년, 장기 10년 체계로 설명된다. 이 틀 안에서 '장기·품질·안전' 조건을 충족하는 임대 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목적은 누굴 이기는 게 아니라 국민의 주거 불안을 줄이는 것이다. 투기는 억제하되 임대 공급은 키우고, 임차인 보호는 가격 통제보다 안전과 신뢰로 강화하는 것. 그 정교한 설계가 2026년 주택 공급에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길라잡이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부동산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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