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경쟁자서 동업자로…포스코·현대제철 '오월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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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철강과 2차전지 분야에서 폭넓은 협력을 약속하는 업무협약(MOU)을 지난달 21일 맺었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미국의 25%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짓기로 했는데, 포스코가 여기에 투자자로 참여하고 철강 제품 일부를 가져다 쓸 계획이다. 국내 철강 1·2위 라이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관계가 ‘프레너미(frienemy)’로 재정립되고 있다는 평가다.

“美 관세 파고 함께 넘자” 손잡은 1·2위

프레너미란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말로,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기업 간 관계를 가리킨다. 이 용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인 테리 앱터가 <베스트 프렌즈>라는 책에서 처음 썼다. 친구가 잘되길 응원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의 이중적 심리를 표현하면서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프레너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쪽에선 ‘갤럭시’와 ‘아이폰’으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다른 한쪽에선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어주고 공급받는 사이여서다.

철강회사들은 내수 위축과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밤에 불을 밝힌 포항제철소의 모습.  뉴스1

철강회사들은 내수 위축과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밤에 불을 밝힌 포항제철소의 모습. 뉴스1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1970년대부터 철강 공급사와 고객사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현대차가 현대제철을 통해 자동차 강판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자 포스코는 강판 원료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번 합작은 총 58억 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하는 미국 제철소 투자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현대제철과 북미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싶어 하던 포스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철강업계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건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이, 해외시장에서는 중국 철강사들이 유발한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의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은 지난해 영업이익(연결 기준)이 1년 전보다 각각 38.5%, 60.6% 급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했다. 산업 전반의 복합 위기가 ‘오월동주(吳越同舟, 적끼리 한배를 타고 협력)’를 이끌었다는 얘기다. 해외 철강업계에서는 2014년 유럽의 아르셀로미탈과 일본의 일본제철이 미국 앨라배마주의 한 제철소를 합작 형태로 인수한 사례 등이 있긴 하다. 다만 이는 내수시장에서 경합하지 않는 철강사끼리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협력과는 차이가 있다.

2차전지·R&D 분야 협력도 이어질 듯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아직 구체적 방향이 제시되진 않았지만 두 그룹은 미국 제철소 공동투자 외에도 저탄소 철강 개발, 2차전지 소재 연구개발(R&D) 등에서 전략적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국내외에서 업계 1·2위 기업 간 합병이나 특정 사업 분야의 협력 사례는 많지만, 이번처럼 회사의 미래를 담보하는 전 영역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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