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몇 년 내 선진국 일자리의 60%가 인공지능(AI)의 영향권에 듭니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한국은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에 노동개혁을 주문했다.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노동시장에 쓰나미가 덮치는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거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달 31일 2박3일 일정으로 경북 경주를 찾았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일 숙소인 경주 라한셀렉트호텔에서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단독 인터뷰했다.
▷한국 방문은 어땠나요.
“훌륭했습니다. 정상회의 자체는 물론 K팝, K테크, K자가 들어간 모든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세안·APEC 정상회의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뭡니까.
“세계경제가 불확실하고 힘든 시기에 전 세계인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는 길은 국가 간 협력이라는 인식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째, 개방경제 국가들이 성장 엔진으로 무역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느꼈습니다. 다극화한 세계에서도 이 엔진이 계속 작동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둘째, APEC 지역 내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강력한 거시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리가 겪은 위기는 건전한 통화·재정정책의 중요성을 일깨워줬습니다. 셋째, 협력을 통해 함께 일하고 차이점을 조정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세계가 불확실하다’고 했는데 현재 세계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전환(transformation)입니다. 우리는 정치, 기술, 인구 구조, 기후까지 거대한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각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이 퇴조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까.
“데이터를 보면 여전히 전 세계 교역의 72%가 최혜국대우 원칙에 기반해 이뤄집니다. 세계 최대 경제국(미국)의 무역정책이 크게 변했을 때도 대부분 국가는 보복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눈에는 눈’식 보복의 악순환으로 빠져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역은 물과 같습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죠. 수천 년의 역사가 보여주듯 물의 방향을 바꿀 순 있어도 흐름은 멈출 수 없습니다.”
▷미·중이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두 경제대국이 갈등을 완화할 길을 찾는 건 세계경제에 긍정적입니다. 합의 여파를 세부적으로 평가해보진 않았지만 (미·중이 무역전쟁을 멈추기로 한) 1년은 두 나라가 교역을 늘릴 수 있는 1년일 뿐 아니라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1년입니다. 대화는 언제나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미·중 갈등이 순조롭게 해결될까요.
“합리적 정책 결정이 결국 우세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성장하고 활력 넘치는 경제를 유지해 기업과 가계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는 불가피하지만 풀어갈 길은 있습니다.”
▷향후 세계경제의 최대 위험은 뭐라고 봅니까.
“2020년 이후 우리는 충격이 더 빈번하고 더 심하게 발생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의 판단, 기업의 결정, 자연재해 등 여러 요인에서 예상치 못한 충격이 이어질 겁니다. 최근 허리케인 ‘멜리사’가 자메이카 경제를 초토화한 사례를 보세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다가올 쇼크에 대비해 강한 완충장치를 구축해야 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던 것까지 생각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과 기업을 보호할 준비를 해놔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평균이 2029년 123%에 달할 것이라고 IMF가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 배경엔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금리 인상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재정 건전화를 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다음번 충격에 대비할 완충장치를 남겨두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부채 상환은 인적자원과 경제에 투자할 수 있는 귀중한 재원을 잠식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IMF는 한국 국가부채도 올해 53%에서 2029년 약 63%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부채 증가 속도가 우려되는 것 아닌가요.
“세계 평균에 비해 한국은 매우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재정은 사회적으로 공정성을 강화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이른바 ‘초혁신경제’에 투자되곤 했습니다. 한국의 혁신 성과는 자랑할 만합니다. 혁신은 한국의 모든 곳에 있었습니다. 조선업과 농업, 도시 생활, 심지어 화장품 산업까지 말입니다. 이런 혁신 덕분에 기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세상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있습니다.”
▷한국의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강조한 두 가지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구조개혁이었습니다. 구조개혁을 끈질기게 추진해야 합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한국은 ‘NATO’(No Action, Talk Only·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란 지적도 있습니다.
“구조개혁을 사회 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 방식으로 추진하길 바랍니다. IMF 연구에 따르면 국민이 개혁 과정에 참여하고, 진정성 있는 협의와 명확한 소통이 이뤄질 때 개혁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예컨대 고령사회에서 연금개혁이 왜 필요한지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국제적 협력도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와 함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이 여는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현금성 지원을 한 건 어떻게 봅니까.
“최근 한국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성장을 저지했습니다. 이처럼 경제가 외생적 요인으로 충격을 받았을 때 여력이 있다면 재정을 활용하는 건 현명한 일입니다. 다만 공공지출을 쓸 때 사용처를 정교하게 겨냥해야 합니다. 취약계층 지원뿐 아니라 보다 여유 있는 계층이 저축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고안해야 합니다.”
▷‘AI 거품’ 논란이 있습니다.
“AI는 이미 우리가 일하고, 살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선두 기업들은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 요인도 있습니다. 첫째, AI가 경제 전반으로 얼마나 빠르게 확산하느냐입니다. 만약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면 실망감이 커지면서 ‘거품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기고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죠. 이렇게 되면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해야 합니다. 둘째,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입니다. IMF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향후 몇 년 안에 AI의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일부 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60%라는 수치는 마치 노동시장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치는 것과 같습니다. ”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IMF는 회원국에 AI가 가져올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AI 준비지수를 개발했습니다. 디지털 인프라, 노동시장 유연성과 적응력, 혁신이 경제에 확산하는 정도, 규제·윤리 체계 등 네 가지를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한국은 15위였습니다.”
▷한국이 순위를 더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동시장 개혁은 한국이 추진해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기술을 민첩하고 이전 가능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나 직종에서 다른 영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또 AI가 격차를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포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앞서 있습니다. 이제 노동시장과 규제, 윤리 부분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80년 IMF 역사상 첫 동유럽 출신 수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 80년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동유럽 출신 수장이다. IMF 총재는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경제대국이 맡아왔는데,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2019년 총재에 올라 지금까지 IMF를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때 97개국에 3600억달러(약 515조원) 이상의 자금 지원을 주도했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해 임기는 2029년까지다. IMF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재이기도 하다.
불가리아 출신 경제학자로, 1990년대 세계은행에서 환경담당으로 근무했다. 2010년부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으로 예산, 인권, 국제협력 등 주요 부문을 담당했다. 2017년 초에는 세계은행 2인자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돼 글로벌 금융 현안을 총괄했다.
경주=임다연 기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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