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한 해변 맹그로브숲 투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타나메라(Tanah Merah) 페리 터미널. 빈탄행 쾌속선에 올라타니 싱가포르 항구의 전경이 보인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에 자리잡고 있는 항구답게 수많은 화물선들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다.
배는 1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빈탄섬에 도착했다. 1996년부터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간의 협력으로 반얀트리와 클럽메드, 니르바나, 빈탄 라군 등 리조트가 개발됐던 천혜의 휴양지다. 한국에서 가려면 6시간의 비행시간이 걸리지만, 싱가포르인들에겐 주말에 훌쩍 떠날 수 있는 파라다이스같은 섬이다.
빈탄섬의 해변과 강가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수상가옥인 ‘켈롱(Kellong)’이 떠 있다. 어부 가족들이 살고 있기도 하고, 해산물 레스토랑이나 바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0월 빈탄 라고이 해변에 들어선 ‘호텔 인디고 빈탄 라고이 비치(Hotel Indigo Bintan Lagoi Beach)’는 수상가옥 켈롱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썰물로 물이 빠진 라고이 해변을 달렸다. 수정처럼 빛나는 모래해변에 푸른 하늘이 비쳐 데칼코마니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해변의 모든 리조트가 그야말로 물 위에 떠 있는 켈롱과 같은 느낌이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듄’에 나오는 것처럼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사막은 아니지만,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낯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소금사막은 때로는 경주의 고분군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울퉁불퉁이어지기도 하고, 불꽃처럼 뾰족뾰족 세워져 있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모래 언덕 위에 하늘하늘 펼쳐지는 흰색 스카프만 하고 서 있으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압권은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형성된 푸른빛 호수다. 호수의 물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오묘한 터키쉬 블루 색감을 낸다. 터키석을 갈아넣은 듯 하늘빛과 옥빛의 중간쯤 돼 보이는 물 색깔에 넋을 잃게 된다. 호수 건너편 모래언덕 위의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 B612를 닮은 모습이다.
●시원한 맹그로브 숲 탐험
인도네시아는 해안가에 맹그로브 숲이 잘 발달돼 있다. 빈탄 리조트 내에도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숲 속 깊숙한 곳까지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한 보트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강 위로 달려간다. 양쪽으로는 키가 30m가 훌쩍 넘는 맹그로브 숲이 우거져 있다. 보트는 큰 강변을 달리다가 좁은 숲 속 수로로 들어간다. 5~6m에 불과한 수로 위로 맹그로브 나뭇가지들이 낮게 드리워져 통과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앞서 가던 보트에서 가이드가 배를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킨다. 가지 위에 왕도마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맹그로브 왕도마뱀은 크기가 1.5m까지 자라며, 헤엄도 치고, 나무에 기어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또다른 나무엔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맹그로브 스네이크(뱀)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해가 진 후 어둑어둑할 때 진행하는 야간투어를 이용하면 매혹적인 빛을 발산하는 반딧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짠 바닷물에서도 잘 자라는 맹그로브는 나무뿌리가 거꾸로 치솟아 물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온 뿌리라 ‘호흡근(根)’이라고 불린다. 뿌리 틈 사이는 물고기와 새우, 가재, 게, 조개 등 각종 해양생물들에게 중요한 은신처와 서식지가 된다.
강변 숲 속에는 예전에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었던 가마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로 숯을 굽는다면, 열대 해변에서는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서 숯을 만들어 숲이 파괴돼왔다고 한다. 맹그로브는 탄수흡수 능력이 탁월해 ‘탄소 스펀지’로 불린다. 또한 산호초처럼 파도에서 토양의 침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피해가 컸던 이유가 리조트 개발로 맹그로브 숲을 다 파괴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 타이타닉호를 닮은 호텔
1912년 4월10일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4월14일 오후 11시40분 빙산과 충돌했고,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4년 운행을 시작한 배가 있었다. 미국의 선박이었던 둘로스(Doulos)호였다.
타이타닉호와 동일한 증기엔진을 사용했고, 크기는 작지만 매우 유사한 내부구조를 가진 배였다. 둘로스호는 1914년부터 2009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운항한 원양 여객선으로 기네스북 공식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배는 2010년 인도의 한 조선소에서 조각조각 잘려 고철로 팔릴 위기에 처했다. 당시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업가인 에릭 쏘가 이 배를 사들였다. 그는 배를 개조해 호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세심한 복원과 개조를 거쳐 2019년 고급 선박호텔인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로 재탄생시켰다. 이 배는 현재 빈탄섬의 페리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앵커(닻) 모양의 섬 위에 올려져 있다.
대서양에 수장된 타이타닉호는 실물로 볼 수가 없지만, 유사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에 묵으면 마치 타이타닉에 투숙하는 듯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총 104개의 객실은 현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럭셔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압둘 와합 빈탄리조트그룹(BR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빈탄섬 여행은 도시인 싱가포르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섬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두가지 여행 경험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빈탄섬 리조트의 명물은 길이 1.6km에 이르는 트레저 베이(Treasure Bay)다. 동남아시아 최대의 인공으로 만든 (海水) 석호다.
트레저베이 주변에 있는 나트라 빈탄(Natra Bintan) 리조트에는 100여개의 독채 글램핑 숙소가 있어 크리스탈 라군을 바라보며 캠핑하는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빈탄(인도네시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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