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배재고와 스타벅스, 오디세우스와 외눈박이

1 week ago 20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 트로이 전쟁을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그렸다. 동아일보DB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고교야구대회에서 스타벅스 관련 구호를 외쳐 징계를 받은 배재고 학생 일부가 최근 야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학생들 처신이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어른들 책임이 크다. 사회적 상처를 건드리며 먼저 큰 싸움을 벌인 것은 어른들이지 학생들이 아니다. 싸움의 여파가 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들었을 때 어른들이 학생들을 보호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정치적 선명성을 부각시키려는 재료로 이들을 희생시킨 측면은 없는가. 정치권이 이와 관련된 5·18 민주화운동 문제들을 서로 자신들 진영을 결집시키고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극도의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것이다. 세상에 무결점의 주장은 없다. 자기만 옳다는 태도가 무조건적인 종교적 신앙에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반론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폭력이 나온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표현의 자유를 더 인정하고 확대하는 것뿐이다. 다시 한 번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인용하자면 “만일 이 세상의 인류 100명 중 99명이 같은 의견이고 단 1명만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1명의 의견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1명이 다른 모든 이의 의견을 힘으로 묵살하는 것과 똑같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 1명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가 틀렸다고 하더라도 의견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그러하듯이 진리가 어느 한쪽 의견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의견에 부분적이라도 담겨 있을 수 있어 의견들이 결합돼야만 전체적인 진리의 퍼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이라 하더라도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발언 기회조차 막는다면 인류의 미래를 강탈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학자가 주장했듯 민주주의란 단순히 다수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판적 검토를 허용함으로써 다수결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오류를 수정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장치가 표현의 자유다. 미국 헌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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