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양자컴퓨팅의 다음 승부처는 '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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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말리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글로벌 기술 R&D 총괄 부사장 양자컴퓨팅 경쟁은 더 이상 큐비트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양자컴퓨팅을 이끌어온 것이 물리학이었다면, 이제 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은 '누가 더 잘 만드는가', 곧 제조다. 지난 수십년간 반도체 산업 현장을 지켜온 입장에서 보면, 좋은 기술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일관된 품질로 만들어내는 능력, 곧 산업화야말로 양자컴퓨팅이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의 컴퓨팅 환경으로 들어오기 위해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다. 그리고 세계적인 제조 생태계를 갖춘 한국은 이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은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원리를 증명하고, 그 다음 그것을 일관되게 대량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내는 단계다. 트랜지스터 원리를 규명한 물리학이 있었기에, 그 트랜지스터 수백억개를 손톱만한 칩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새겨 넣어 온 세상에 공급하는 오늘의 반도체 산업이 가능했다. 두 단계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성과를 완성하는 과정이며, 앞서 말한 산업화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공정 제어와 통합, 품질 관리, 플랫폼의 성숙도였다. 양자컴퓨팅은 지금 이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소자 하나가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서 나아가, 제조 가능하고 안정적이며 확장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때다. 뛰어난 양자 소자가 실험실에서 한 번 동작하는 것과, 동일한 성능의 소자를 수천·수만개 균일하게 양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는 재현성과 수율의 문제이며, 물리학의 발견과 제조의 규율이 맞물려야 비로소 풀린다. 이 지점에서 실리콘 기반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 스핀 큐비트 방식은 반도체 산업이 수십년간 다져온, 이미 검증된 양산 인프라 위에 그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완전공핍형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FD-SOI) 기술은 우수한 전력 효율과 정교한 공정 제어, 높은 집적도를 바탕으로 안정성과 재현성이 핵심인 양자 하드웨어에 적합한 기반을 제공한다. 물론 실리콘 방식이 모든 답은 아니며, 여러 방식이 저마다의 강점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다만 물리적 돌파구가 실제 제품으로 옮겨지는 마지막 구간에서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은 결국 제조 역량이다. 양자와 고전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는 이종(heterogeneous) 구조가 될 미래 컴퓨팅의 토대를 떠받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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