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약속 등 선제적 외교에도
24% 상호관세 부과되자 충격
정치권은 "지극히 유감" 반발
이시바, 트럼프와 회담 또 추진
美 농산물 수입 확대할지 촉각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국가 재난'에 비유했다. 최대한 빨리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벌여 관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7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출석한 이시바 총리는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사태"라며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의 상호관세에 상당 부분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미국에 1조달러(약 146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최대한 치켜세우는 '아부 외교'로 관세 문제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섰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직후부터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서 일본에도 '예외 없이'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달 무토 요지 경제산업상이 미국에 급파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잇달아 만났지만 긍정적인 해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지난 2일 미국 행정부가 일본에 24% 상호관세를 부여한다고 발표하자 일본 내부는 들끓기 시작했다. 동맹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지나치다는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무토 경제산업상은 "지극히 유감"이라며 "미국에 제외를 요청하는 등 끈질기게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TBS 계열 재팬뉴스네트워크(JNN)가 자국민 26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7%가 "일본 정부는 트럼프 관세에 맞서 대항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상호관세는 일본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철강·소재 등에 폭넓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이번 상호관세가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0.4%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다이와소켄도 관세 인상으로 일본 실질 GDP가 최대 1.8%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관세 발표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일본 주식시장이다. 닛케이225지수는 3일을 포함해 3영업일 연속 폭락 중이다.
이시바 총리도 바쁘게 움직이는 상황이다. 지난 3일 대책 마련을 위한 초당파적 협조를 얻고자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당대표 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교섭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 이번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협의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시바 총리가 전화 협의나 방미 회담 시 내밀 수 있는 뾰족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화 약세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일본 정부가 인위적인 엔화 강세를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언급되는 것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다. 현재 중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산 밀·대두·옥수수·쇠고기 등 농축산물에 추가 관세를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를 만회할 시장을 물색하고 있는데 농축산물 수입이 까다로운 일본이 타깃 중 하나다. 미국 정부 당국자가 여러 차례 "일본이 미국산 쌀에 70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