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국내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50조원 규모의 ‘국민펀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일반 국민을 비롯해 기업, 정부, 연기금 등 모든 경제 주체를 대상으로 국민참여형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주식 및 채권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시중 여유자금의 물꼬를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으로 돌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야심 찬 비전이다. 향후 수백조원 규모로 국민펀드 구상을 발전시켜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투자의 효과는 민간투자에 대한 구인(crowding-in)효과와 구축(crowding-out)효과로 나눠볼 수 있다. 민주당 주장대로 국민펀드를 통해 미래 국가 경제 성장을 좌우하는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대표적인 구인효과다. 혁신은 어렵고 불확실성이 크다. 공공투자는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을 줄여 과소 투자에 따른 시장 실패를 방지한다. 하지만 구축효과도 필연적이다.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 민간 부문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감소한다. 정부 규제와 관료주의가 개입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도 문제다. 공공투자는 구인효과가 구축효과보다 클 때 정당화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의 기업 지원이 세액 우대나 보조금 정책에 머무는 것도 구축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과거 관제 펀드가 흑역사를 쓴 이유는 구축효과가 구인효과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규제자인 정부가 투자자로 나서 이중 역할을 수행하는 것부터 시장경제의 ‘금기’를 깨는 이해상충이다. 아무리 ‘자발적 참여’라고 포장해도 기업에는 ‘실질적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정책 금융과 연기금이 ‘중간 또는 후순위’로 투자해 일반 국민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투자 위험을 보전하거나 손실을 막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은 필연이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거나 과도한 배당을 강조하다가는 오히려 투자 기업의 성장 잠재력만 훼손한다. 이명박 정부가 띄운 ‘녹색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모두 예외 없이 자투리 펀드로 전락한 이유다.
무엇보다 우려를 키우는 건 국민펀드가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한국판 엔비디아 육성을 위한 국부펀드 구상’을 구체화하는 방안이라는 사실이다. 이 대표는 최근 유튜브 방송에 나와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한국에 생기고 30%가 국민 지분이라면 세금에 그렇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AI 시대에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다”고 말해 자신이 꿈꾸는 기본사회를 위한 일환임을 시사했다. 국민펀드는 기본소득의 보완 내지 확장판이라는 의미다. 주로 조세로 재원을 마련해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재원 방식을 펀드 수익으로 일부 치환할 뿐이다. 이런 취지의 국민펀드라면 구축효과를 극대화할 게 뻔하다. 실패는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를 밀어붙이자 한 외국계 증권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데뷔했다’는 보고서를 내고 “정부의 (증시) 직접 개입에 경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펀드의 구조는 구축효과를 초래할 전형적인 사례”라며 “(민간 펀드가) 세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는 펀드매니저와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민펀드 구상에 쏟아지는 시장의 불신과 불안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