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일본을 공격한다?…30년 게임 개발자의 '야심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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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징코게임즈 김태곤 총괄 디렉터 / 사진=조이시티

레드징코게임즈 김태곤 총괄 디렉터 / 사진=조이시티

'임진록', '거상', '군주 온라인'.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계보를 짚으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김태곤 레드징코게임즈 디렉터다. 그의 30년 개발 인생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신작 '임진왜란: 조선의 반격'이 오는 28일 모바일·PC 플랫폼을 통해 정식 출시된다. 조이시티가 퍼블리싱을 맡은 이 작품은 '거상'의 경제 시스템과 '임진록'의 역사 서사를 결합한 MMORPG다.

한국 게임 시장에서 역사물은 양날의 검이었다. 소재의 무게감이 클수록 상업적 실패의 위험성도 크다. 그럼에도 김 디렉터는 임진왜란이라는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번번이 투자자 반대에 부딪혀 프로토타입만 서너 번 만들다 좌절했지만, 결국 2024년 직접 투자를 결정하고 역사 게임 전문 공방 레드징코게임즈를 설립했다.

출시를 하루 앞둔 신작 게임의 배경이 된 임진왜란은 7년간 조선·일본·명나라 3국이 총력을 다한 전쟁이다. 이순신·권율 같은 실존 영웅부터 거북선·화차 같은 역사적 병기까지, 김 디렉터가 "게임 세계관으로 이보다 좋은 소재가 있나"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레드징코게임즈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임진왜란을 새 MMORPG 소재로 다시 꺼내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번 작품만의 새로운 해석이 있다면요.

"처음 임진왜란을 게임 소재로 개발을 시작한 이래 이걸 메인 소재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10년도 더 되는 시점부터 계속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을 개발해왔어요. 근데 개발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을 경험했죠. 당시 우리 게임들의 해외 진출 이슈가 있었던 시기라 '역사물이 되겠어?', '임진왜란이면 일본과 명나라가 나오는데 껄끄럽지 않겠어?' 같은 이유로 투자자들이 선뜻 동의해주기가 쉽지 않았어요. 서너 번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본격 개발로 이어지지 못했죠.

그러다 2024년 1월에 '내 개발 인생에서 다시 못 만들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투자를 결정하고 레드징코를 설립했어요. 역사 게임 전문 공방을 표방한 거죠. 엔씨나 넥슨 같은 대기업이 있고 인디 게임 회사가 있는데, 그 사이에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회사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세계관의 매력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조선·일본·명나라라는 특색 있는 세 나라가 등장하고, 이순신 장군 같은 최고의 인물들이 있고, 거북선·화차·천자총통 같이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는 무기들이 있는 전쟁이에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3개 국가가 총력전을 벌인 전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기 어렵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게임만의 차별점도 있어요. 명량 3부작이 이순신 장군과 해전 중심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게임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룰 수 있습니다. 2시간 상영으로 끝나는 영화와 달리 게임은 1년이 지나도 서비스가 계속되거든요. 제가 만든 거상은 지금도 20여 년째 서비스 중이에요. 그 긴 시간 동안 유저들과 소통하면서 세계관을 계속 확장할 수 있다는 게 게임의 강점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임진왜란 편에 더해, 히데요시의 재침을 막기 위해 조선이 원정군을 일본에 보내는 가상의 이야기인 '조선의 반격' 편도 담겨 있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조선이 연합해 히데요시를 압박한다는 개연성 있는 허구죠. 나아가 명나라와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도 향후 업데이트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이런 '임진왜란 유니버스'는 게임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 역사적 고증과 게임적 재미가 충돌하는 순간이 많았을 텐데, 어디까지는 지키고 어디서는 변주하셨나요.

"임진왜란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는 최대한 부합하게 합니다. 하지만 가상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눈치 볼 거 없이 상상력을 펼쳐요. 단, 진짜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놓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유저들의 눈높이죠. 조선 무장이 갑옷을 입고 있는데 게임성을 위해 그걸 미소년으로 만들거나, '저게 총칼을 막을 수 있을까' 싶은 디자인 중심의 갑옷을 만들면 일단 몰입이 안 돼요. 사람들이 사극과 역사물을 통해 이미 갖고 있는 선험적 경험들을 배신하면 안 됩니다. 두 개의 이미지를 딱 놓고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그 기준이 안 맞는 거예요. 그 불편한 지점을 하나하나 찾는 게 저희 작업이었습니다.

이번에 총 3번에 걸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역사적 사실 전개에 대해서는 대다수 유저분들이 호평을 해주셔서 일단 그 부분은 합격점을 받은 것 같아 안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게임성을 강화하는 데 더 집중하면 된다고 보고 있어요."

▶ 다른 MMORPG와 차별화되는 핵심은 무엇인가요.

"제 게임의 본질은 경영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인원을 잘 활용하는 경영의 요소가 게임과 접목될 때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는 큰 투자를 하거나 많은 사람을 원하는 일에 투입하는 게 어렵잖아요. 게임이 그 가상의 체험 공간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만든 게임들은 MMORPG임에도 여러 명의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해요. 거상도 10명 이상이 함께하고, 이번 임진왜란도 전투에 장수 6명이 투입됩니다. 특색 있는 장수들을 적절히 조합하고 상대의 특성을 분석해서 대응했을 때 느끼는 쾌감이 있어요. 경영에서 시장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였을 때 느끼는 그 쾌감과 같은 거죠.

김태곤 게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게임의 본질을 경영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도 그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인물들에 대한 경영, 자본과 전투 능력에 대한 경영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형태가 저희 게임의 본질이고, 그 특성이 임진왜란 세계관 위에서 펼쳐지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 '인카운터 전투'는 어떤 재미를 주는 시스템인가요.

"일반적인 MMORPG 전투가 한 명의 주인공이 필드에서 적을 하나하나 상대하는 방식이라면, 저희는 여러 장수가 등장해서 유기적인 역할을 하는 형태입니다. 힐러, 딜러, 탱커를 나 혼자 구성하는 거예요. 어떤 병기를 들고 들어갈지, 어떤 조합으로 대적할 것인지를 내가 직접 결정하는 거죠.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부대를 구성해 적진에 쳐들어갈 때 뭘 가지고 들어갈지 계속 생각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부대를 투입했을 때의 짜릿함이 있는데, 저는 그 RTS(실시간전략게임)의 DNA를 RPG 전투 한 판에 녹아낸 겁니다. 액션은 피지컬이지만, 이건 '뇌지컬'이 필요한 전투예요. 모바일 기기의 특성상 피지컬보다는 전략성을 더 볼 수 있는 측면도 있고, 그래서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게임들과 모바일이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레드징코게임즈 김태곤 총괄 디렉터 / 사진=조이시티

레드징코게임즈 김태곤 총괄 디렉터 / 사진=조이시티

▶ 공성전과 해상전을 '임진왜란답게' 만들기 위해 가장 신경 쓴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공성전이 없는 임진왜란은 팥소 없는 찐빵이에요. 다만 많은 MMORPG들이 공성전을 수백 명이 참전하는 연례 행사처럼 다루는데, 저는 그게 적합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소수의 유저들이 모여서 레이드(raid·특정 콘텐츠를 공략하기 위해 다수의 플레이어가 모이는 것)를 뛰듯이, 성을 점령하거나 지키는 공격대를 만들어보자는 게 취지였어요.

공성탑이 들어가려면 해자(성 주위에 파놓은 도랑)를 먼저 메워야 하고, 소가 끄는 수레로 해자를 메우면 공성탑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비가 오면 해자가 다시 차오르고, 공성탑도 또 파괴되죠. 날씨라는 변수가 생기는 겁니다. 여기에 유머도 좀 넣고 싶어요. 공성전이 벌어지면 잔치 분위기가 나야 하거든요. 밖에서 구경하는 유저 중 누군가는 엿장수로 변해서 엿을 팔고, 전투 중인 장수가 그 엿을 먹으면 버프도 받는 식이죠. 너무 진지한 엘프와 오크들의 전쟁만 봐왔는데, 우리 식의 위트 있는 전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해상전은 참 어려웠어요. 처음에 거북선과 아타케부네(일본 전국시대 대형 군선)가 맞닥뜨려서 포를 쏘면 아무런 긴박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유저 1명이 3척의 배를 이끌고 출항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함대 대 함대가 싸우는 느낌의 다이나믹함을 주려고 한 거죠. 파이널 테스트에서 해상전투의 성장이 놀랍다는 반응을 많이 받았어요."

▶ 실존 인물을 게임의 수집·육성 대상으로 다루는 데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 엄청 크죠. 예전에 태극기를 옷에 장식처럼 붙이기 시작했을 때 처음 하는 사람은 굉장한 용기가 있었을 거예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이 인물을 잘못 평가하는 건 아닌지, 불가피하게 장수들 간의 등급이 나눠지는 부분에서 유저들이 분노할 일은 없을지 엄청 신경 쓰입니다.

그럼에도 시도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정 사진으로만 보는 위인들을 게임 시스템으로 녹여내서 유저가 직접 컨트롤하고 전투에 투입하는 거잖아요. 저희 같은 경우엔 근엄하게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농사도 짓고 채광도 해요. 조금 더 친숙한 코드가 들어가면서 가까이 느끼게 하고 싶은 겁니다. 게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 인물에 대한 친숙함과 애정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그 애정이 생기면 나무위키도 찾아보고 더 조사하게 되거든요. 신성시하는 마음보다 친숙한 마음이 결국은 더 오래 간다고 생각합니다."

▶ 경제 시스템에 특히 힘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경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딘가는 잉여가 되고 어딘가는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교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서버 통합 거래소가 있는 거예요. 두 번째는 아이템과 재화의 가치가 개발사가 아니라 유저들의 활동으로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채집지에서 많이 채집하면 채집물이 고갈돼요. 유저들이 선호하는 미션을 반복하면 그 보상이 점점 줄어들고, 잘 안 하는 미션의 보상은 올라가죠. 오늘 한 게임과 한 달 후의 게임 느낌이 다를 수 있어요. 지금은 싸구려지만 언젠가는 비싸질 수 있는 거죠. 주식 유튜브에서 어떤 종목이 유망하다고 분석하는 것처럼, 게임 내에서도 지금은 쌀을 채집해서 파는 게 최고의 이익이지만 한 달 후에는 철광석이 더 유리하다고 분석하는 유저들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런 무대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핵심 타깃 이용자는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역사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제 스타일의 경영 전략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첫 유저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에 의해서 게임성에 대한 평가가 나오면, 그다음 전통적인 MMORPG 유저분들도 오실 거라고 봅니다.

요즘 게임들이 너무 비슷하다는 지적을 많이 듣거든요. 모든 유저를 데려가겠다는 욕심에 색깔이 다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작은 업체라는 게 오히려 강점이에요. 명량이나 왕과 사는 남자 같은 역사물 영화도 처음엔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셨지만, 거기서 감동의 요소가 확인되니까 입소문이 퍼져서 더 많은 관객이 찾아왔잖아요. 저희 게임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첫 유저분들은 역사물과 저의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고, 거기서 시작해서 점점 확산되는 구조를 기대하고 있어요."

▶ 출시일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에 맞춘 배경은 무엇인가요.

"일하다가 힘들고 그러면 충무공 묘소를 찾아가요. 아산 음봉에 계신데, 언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용기와 힘을 주시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저와 개발팀이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고, 우리 게임의 핵심 주인공이기도 하죠. 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게임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제 입장에서는 못난 게임이지만 이렇게 한번 만들었습니다라고 올려드리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소회입니다."

▶ 김태곤 디렉터 개인에게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이 50이 넘어가니까 이제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요. 능력은 못 키우는데 보는 눈만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냥 B급 개발자입니다.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이렇게 시도해서 하나의 가능성을 시장에 보여드릴 수 있다면, A급 개발자분들도 이 역사 게임에 관심을 가지실 거예요. 제 역할이 그게 아닐까 싶고요.

B급 개발자도 자기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일관성을 가져가는 업체들의 모델이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그런 업체가 많지 않거든요. 인디 게임 아니면 대형 게임, 그 중간이 없어요. 저는 사실상 MMORPG의 인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에이(일본 게임사)가 삼국지 시리즈를 30년 넘게 했고, 시드마이어가 문명을 30년 넘게 했잖아요. 그분들처럼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꾸준히 색깔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개발비를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유저분들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는 선에서, 게임성만큼은 개발팀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 가수로 치면 TV에 많이 나오는 가수가 아니어도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하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제 스타일의 게임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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