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그림책 작가 “그림책에 글과 색깔을 지운 이유”

“그림책에 글과 색깔을 지운 이유는 독자에게 깨닫는 순간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국내 최초로 열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만난 이수지 작가는 그림 만으로 세계를 감동시켰다. 2022년 한국 작가 최초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분을 수상했다.

그는 “필요한 글을 뺀 것이 아니라 이미지만으로도 이야기가 된다”며 “글 없는 그림책을 읽을 때 깨닫는 멈춤이 있는데, 독자를 가장 창의적으로 만드는 순간이자 작가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도야 놀자’ 역시 글이 없고 그림만 있다. 바다의 파란색이 점점 아이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미국과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14개국에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글이 없어 제목만 번역한 채로 출간됐다.

이 작가는 몇가지 색만 제한적으로 써왔다. ‘파도야 놀자’에 하늘색과 검은색, ‘그림자놀이’에 노란색과 검은색 2가지 색만 쓰였다. ‘물이 되는 꿈’에 하늘색 1가지 색만, ‘검은새’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검은색 1가지 색만 쓰였다. 그 이유에 대해 “색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의 한 요소로 활용하고 싶었다”며 “색이 너무 많으면 의미가 없어지는데, 한두가지 색이 반복된다면 의미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물론 이 작가도 다양한 색을 활용하기도 한다. 색종이 고유의 색깔을 그림책에 쓰고 싶어 ‘여름이 온다’ 에는 색을 칠하기보다는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를 그대로 잘라붙였다. 그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붙잡는 알록달록한 그림책이 되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은 후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이 늘고 있는 점에 대해 이 작가는 “어린이용 그림책, 어른용 그림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실 어른들이 그림책에 빠져드는 것은 그림책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책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을 투영해서 읽는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이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 더욱 풍부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림책이지만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그는 “특히 어린이 입장에서는 전쟁은 정말 느닷없이 무서운 일로서 닥친다”며 “불꽃놀이가 있는 그대로 환호하고 즐길 수 있는 불꽃이었으면 하지, 전쟁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에도 참여한 적 있다. 그는 “표지는 책의 서사를 딱 한장의 그림으로 은유한다는 점에서 그림책과 비슷한 것 같다”며 “한강 작가님과 아는 사이였는데, 미술쪽에도 조예가 있는 한강 작가님이 제 ‘심청’의 그림 중 하나를 쓰고 싶다고 제안해서 믿고 응했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부산광역시가 후원하는 도서전은 28일부터 닷새 간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다. 주제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상상의 나라 ‘라퓨타’다.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희망으로 어린이만의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도서전에는 16개국 193개(국내 136개, 해외 57개) 출판사가 모여 도서 전시, 강연 및 세미나, 현장 이벤트, 워크숍 등 150여 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세계적 아동문학상인 린드그렌상, 안데르센상 등을 수상한 백희나, 이수지 작가 등 국내외 최고의 아동문학 작가와 연사 118명도 총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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