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또 '금사과·금배'…폭염 예고에 과수 농가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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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에서 26년째 신고배 농사를 짓는 윤모씨는 폭염 예보가 야속하다. 배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과실에 봉지를 씌워 키우는 유대재배 과일이다. 여름 내 봉지 안에 들어 있어 가을 수확에 나설 때가 돼서야 피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윤씨는 “안 그래도 4월에 추운 날씨가 이어져 응달진 곳에 있던 배꽃이 많이 졌다”며 “올해도 여름에 엄청 덥다는데, 작년처럼 배들이 말캉말캉할 정도로 익어버릴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꿀벌 실종에 봄철 우박까지

올해 봄철에 꿀벌이 집단 폐사한 데 이어 경북지역 대형 산불과 늦봄 우박까지 겹치면서 사과·배 등 주요 과일 농사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벌써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치솟는 등 최악의 여름 폭염이 예고돼 과일 작황 악화에 따른 ‘금사과·금배’ 현상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한국양봉협회 충남지부에 따르면 올해 봄 벌 깨우기를 마친 결과 월동 과정에서 벌통 내 10만7642군의 벌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군당 약 2만 마리가 사는 것을 고려하면 지난겨울 충남에서만 21억 마리 이상 줄어든 셈이다. 충남 꿀벌 폐사율은 47.5%로 일반적인 월동 폐사율(20%)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봄철에 주요 과일의 수확을 돕는 ‘화분매개자’인 꿀벌이 사라지면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온 급변동으로 꽃도 많이 피지 못했다. 5월의 하루평균 기온 변동폭은 지난달 12.1도로 역대 두 번째로 컸다. 부여에서 양봉업을 하는 강재선 씨는 “올해 겨울엔 서해안 쪽에서 꿀벌이 많이 죽었다”며 “밤 온도가 7도까지 내려가 꿀벌 움직임도 둔화된 편”이라고 말했다.

올봄 경북 산불에 이어 충청권에 우박까지 내린 것도 악재다. 경북에서는 3월 말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에 사과 재배지 1600㏊ 이상이 피해를 봤다. 충북과 경북 내륙 일부 지역에서는 우박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사례가 잇따랐다. 음성과 단양엔 지난달 28일 1㎝ 크기의 우박이 내렸다.

◇길어진 폭염…금사과·금배 재연되나

여름 폭염 예보는 과수농사의 걱정을 더 키우고 있다. 기상청은 이달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40%, 7~8월엔 각각 50%로 예상했다. 올해 5월부터 6월 9일까지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선 날은 서울 기준 4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많았다.

한반도의 여름철 폭염 기간은 길어지는 추세다. 첫 폭염일은 서울 기준 2022년 7월 2일에서 지난해 6월 14일로 앞당겨졌고 마지막 폭염일은 2022년 7월 30일에서 지난해 9월 18일로 늦어졌다. 연간 폭염일수는 2022년 10일에서 지난해 33일로 2년간 세 배 넘게 늘었다.

과일 작황에 치명적인 열대야도 늘어날 전망이다. 밤까지 25도 이상의 고온이 이어지면 열매가 조기에 낙과하거나 표면이 갈라지고 모양이 일그러지는 피해가 발생한다. 지난달 21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23도까지 오르며 역대 가장 더운 5월 아침을 기록했다. 경북 문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박진호 씨(54)는 “열대야가 계속되면 줄어든 사과 열매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농업계에선 2023년과 같은 사과·배 가격 폭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여름 이상고온으로 사과나무 일소(햇볕 데임) 피해가 이어졌고, 탄저병과 겹무늬썩음병까지 확산하며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그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000t으로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최저치였다. 배 생산 역시 18만4000t으로 26.8% 줄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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