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시장에 실망을 안겼다. 기대한 종전 관련 구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란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더 거센 공격을 예고하자 증시가 급락하고 유가는 반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양국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란에서 실질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했다. 하지만 합의가 되지 않고 있어 “조만간 그들을 매우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며 “2~3주 동안 맹렬히 공격해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발전소를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으며 석유 시설 타격도 가능하다고 위협했다. 지상군 투입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호르무즈해협 항행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 석유가 필요하지 않다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호르무즈해협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또 미국산 석유를 사고, 해협을 직접 장악하라고 각국에 제안했다.
실망한 아시아 증시는 크게 타격받았다. 전날 종전 기대에 8%대 상승한 한국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이후 4.47% 내린 5234.05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5.36% 하락했다.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모두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됐다. 원·달러 환율은 18.4원 상승한 1519.7원을 기록했다. 이틀 연속 하락하던 유가는 브렌트유 6월 인도분 가격이 6.7% 오르는 등 급등했다.
◆ 기대감 꺾인 시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에 관한 대국민 연설은 이틀 전 갑작스레 예고됐다. 연설 하루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전쟁을 끝낼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 전해지고, 이날 아침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측에서 “휴전을 요청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부풀었다. 증시는 상승하고, 유가는 급락했다.
하지만 오후 9시 시작된 연설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의 방식이나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기보다는 앞으로 “2~3주 동안 강한 타격”을 하겠다면서 합의를 종용했다. 특히 이란의 발전소 등 인프라를 공격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이 궁금해 하는 종전 계획, 호르무즈 통행 재개 계획, 지상군 파병 여부, 이란의 미래에 관한 언급은 모두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루스소셜 내용을 재탕했다”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아시아 증시부터 찬물을 끼얹었다. 코스피는 전날 8.44% 급등한 데 이어 이날도 1.33% 오른 채 출발했다. 이란 전쟁이 끝나면 세계 경제를 옥죄어 온 공급망 리스크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면서 시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상승폭을 계속 반납하던 코스피는 연설이 시작된 지 17분 후에는 하락세로 전환했다. 오후 2시 34분과 46분에는 각각 코스닥, 유가증권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이날 0.61% 올라 개장했으나 2.38% 급락 마감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1.82%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74% 떨어졌다. 시차를 두고 열린 유럽 증시도 하락 출발했다.
달러인덱스(DXY)는 0.48% 상승해 100.13 수준(오후 5시 기준)으로 올라왔다. 각종 암호화폐 가격도 일제히 급락했다. 온라인 베팅사이트 폴리마켓에서 이달 말까지 이란 전쟁이 휴전할 가능성에 베팅한 비중은 연설 전에는 40%였으나 연설 후에는 28%로 내려갔다. 6월말까지 휴전할 가능성도 66%에서 61%로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 강한 타격을 언급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전쟁이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 중동 분쟁 확대될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새로이 던진 메시지는 거의 없었다. 민간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밀어부치겠다는 전략이 이란의 변화를 불러일으킬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타격 후에도 이란이 항복 선언을 하지 않을 경우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관해 각국에 “이제라도 늦었지만 용기를 내서 해협을 그냥 장악하라”고 말한 것은 오히려 불안감을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쨌든 이 분쟁이 끝나면 해협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라면서 “그들(이란)도 팔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포천 지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한 채로 이란 문제에서 손을 떼는 것이 미국에 “수십 년에 걸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른 나라들도 저마다 핵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행방이 묘연한 문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국민연설에서는 핵 개발이 실제로 이뤄지는지 “위성으로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에 통행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걸프 지역 국가들이 이란의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 저마다 이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에 나서면서 중동 지역이 끝없는 분쟁을 벌이게 되고, 이 경우 미국도 다시 중동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고문을 지낸 밥 맥널리는 포천지에 이 경우 “베트남전 패배보다도 미국 외교정책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강진규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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