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소송 우려에 사소한 내용까지 기록… 사명감 하나로 버틸수 있을지”

22 hours ago 4

[벼랑 끝 소아의료]
소아과 전공의 충원 20% ‘붕괴 가속’
“보상 적고 의료사고 배상 부담은 커
최소 인력 확보-수가 인상 나서야”

“365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응급 상황에 대기하고, 소송 걱정에 사소한 내용도 기록으로 남기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언제까지 사명감 하나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소청과)에서 일하는 전공의 2년 차 김모 씨는 “아이들 생명을 살리고 싶어 소청과를 택했지만 갈수록 고민이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이 병원에서 3년 만에 뽑힌 전공의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인터뷰한 전공의와 전임의(펠로) 4명은 “소청과 대가 끊겼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최근 5년간 소청과 붕괴에 가속도가 붙었다”며 위기감을 토로했다. 이들은 일은 힘든데 보상은 턱없이 적고, 소송 부담 등 책임은 큰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신규 전공의 모집에서 소청과 충원율은 20.6%(34명)에 그쳤다. 전체 진료과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선발된 전공의도 대부분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됐다.

소청과는 ‘적자 진료과’라는 인식 탓에 대학병원 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전공의 4년 차 김모 씨는 “기껏 레지던트를 모집했더니 병원에서 인턴과 전담 간호 인력을 줄이겠다고 했다”며 “4년 차지만 여전히 1년 차만큼 당직을 서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소아 진료는 정맥주사를 놓을 때도 성인보다 인력이 추가 투입돼야 할 정도로 난도가 높다”며 “이런 처치의 수가가 낮으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료 소송에 대한 부담은 소청과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4년 차 김 씨는 “특정 수술이나 약물이 필요한 경우 ‘잘못되면 책임질 수 있느냐’는 보호자를 만나면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소아 환자는 기대수명이 길어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성인보다 배상액도 훨씬 크다. 4년 차 전공의 박지윤(가명) 씨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지만 17억 원이 넘는 배상금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도 있는 내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해도 되는 건가 싶다”고 하소연했다. 지역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대학병원 전임의로 일하는 이모 씨는 “세부 전공을 정할수록 전문 인력으로 대우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영상의 이유로 세부 전문의를 뽑지 않는 지역 병원이 상당수다. 이 씨는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세부 전문의 혼자서 여러 분과 환자를 다 책임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혼자 체력을 갈아 넣으면서 일해야 하는데 책임도 혼자 져야 하니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꿈 하나로 일을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성인에게 경증인 병도 소아에게는 경증이 아닐 수 있다”며 “소청과의 낮은 수가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정부와 각 병원이 최소한의 당직 인력이라도 확보해 줘야 더 이상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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