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음주운전 징계 10명
사고 낸 후 측정 거부하기도
변협 징계는 사실상 솜방망이
법원도 상습범에 고작 벌금형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A변호사는 지난해 7월 술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가 정차 중이던 앞차를 들이받았다.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그는 결국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 거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A변호사는 여전히 법무법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력을 올려놓고 변호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법조계 내부에서 술 먹고 운전하는 변호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호사는 법을 직접 다루는 법률전문가인 만큼 음주운전에 한층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한 변호사에 대한 징계 등 처벌은 비교적 관대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변호사 음주운전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1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 사이 변협 징계를 받은 변호사 50명 중 10명이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음주운전을 한 경우가 6건으로 가장 많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등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경우는 3건,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한 사례도 1건 있었다.
변협은 이들에게 음주운전(변호사 품위유지 의무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징계 수위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었다. 10명 중 9명이 두번째로 낮은 수위인 ‘과태료 처분’에 그쳤고, 1명은 가장 낮은 수위인 서면 경고로 끝나는 ‘견책’을 받았다. 이들이 받은 과태료 역시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으로 경미한 수준이었다. 변호사법에 따라 변협은 문제를 일으킨 변호사에게 ‘견책’, ‘과태료’, ‘정직’, ‘제명’, ‘영구제명’ 총 5가지 징계 중 하나를 내릴 수 있다.
법원의 처벌 수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말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변호사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B변호사에게는 이미 2016년과 지난해 두 차례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등을 확정받은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변호사에게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이 선고되면 변호사 자격을 상실하게 돼 지나친 처벌이 될 수 있다며 세 번째 음주운전에서도 B변호사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과거 음주운전으로 2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반복했고, 당시 혈중알코올 수치 역시 높았다”면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변호사법에 따라 일정 기간 변호사 자격을 상실하게 돼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어 벌금형으로 선처한다”고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상당히 많은 변호사들이 상습적 음주운전을 한다는 것은 법조계는 이미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특히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을 앞두고 있는 만큼 법조인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가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