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북한강변을 따라 서종면 수능리 깊은 숲속에 다다르면, 회색빛 음악감상 공간 ‘모던클로이스터’가 나온다. 1년 전쯤 문을 연 이곳은 자신을 ‘빛을 듣고 소리를 보는 공간’으로 소개한다. 모던클로이스터는 중세 수도원의 클로이스터(회랑)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다. 클로이스터가 중세 수도자들에게 천국의 공간이었던 것처럼, 현대인들에게 음악을 통한 특별한 쉼과 명상으로 ‘작은 천국’이 되고자 한 바람을 담았다. 모던 건축에 기반을 두고 중세를 포함한 고음악과 클래식, 현대의 재즈 등 컨템포러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종합 예술 공간을 구상했다.
지난 15일 저녁 이곳에서는 특별한 음악감상회가 열렸다. 저녁 7시부터 ‘모클 음감회: 모리코네vs반겔리스’라는 주제로 약 2시간 동안 영화음악의 두 거장의 시기별 주요 음악들이 영화의 명장면들과 함께 펼쳐졌다. 이날 사회는 공간을 만든 조대성 대표(53)가 직접 진행했다.
“악보를 볼 줄 모르던 반겔리스는 마치 예언자와 같았고, 모리코네는 모든 음을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하는 정교한 설계자와 같았어요.”
모던 클로이스터의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2층과 3층의 음악 감상 공간으로 안내 받는다. 이음새 하나 없는 육중한 문을 열면, 우선 미학적으로 압도적인 오디오 스피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 대표는 한국 나사렛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산타클라라대 성악과 합창지휘 석사, 클레어몬트대 교회음악 박사를 지낸 인물.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성당에서 9년간 음악감독일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 나사렛대 음악목회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모던 클로이스터는 조 대표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곳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우연히 들은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반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듣고 싶다’는 꿈으로 1만 여장의 LP와 음반들, 오디오와 스피커, 음향 기기 등을 수집해왔다.
공간의 한 가운데에 놓인 JBL파라곤 스피커는 오디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피커로 불린다. 1957년 세계 최초의 ‘좌우 일체형 스테레오 스피커’로 제작돼 케네디 시절 백악관에서도 사랑받던 명물. 전면의 곡선이 소리를 굴절시키는데, 이 부분이 특히 아름다워 디자인 스피커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그 옆을 웅장하게 지키고 선 스피커는 ‘골드문트 아폴로그’, 1987년 만들어진 오리지널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당시 150개 전후 만들어졌는데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전시됐던 모델이라고. 이 스피커의 외형은 이탈리아 현대미술가인 로타 로리아 클라우디오가 디자인했는데,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몰딩 기법과 화강암 가루로 만든 재질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하이 그로시 피아노 마감으로 처리했다.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 연구소와 디자이너들이 합작해 스피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밖에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스피커라는 별칭을 가진 ‘던테크 소버린’, JBL의 또다른 역작 ‘에버레스트(Everest)’와 ‘마트레곤(Matregon)’, 영국 귀족에게 납품되던 1950년대 오토그래프 스피커의 1990년대식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등 2층과 3층에 보물같은 스피커들로 가득하다.
당대 첨단의 스피커들 앞에 놓인 하프시코드(러커스 플레미쉬), 파이프 오르간(콘티누오)은 마치 금방이라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고음악 연주회로 떠날 수 있는 곳임을 암시한다. 조 대표는 “여러 장르의 음악과 연주, 스피커의 디자인까지 감상할 수 있는 ‘뮤지토리움’이 되길 바랐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 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그 음악에 맞춘 최적의 소리를 찾아내는 건 사람의 일. 방문 날짜와 시간을 사전 예약해 미리 곡을 신청해 두면, 그 곡에 꼭 맞는 음원과 스피커를 찾아준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 음악감상회는 별도 공지된다.
양평=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