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색 층층이 쌓아 새로운 색채로…플레트네프 음악세계 압축[문화대상 이 작품]

3 hours ago 5

피아니스트·지휘자 면모 압도적
바이올린 협업자 로자코비치는
현 끊어지는 돌발상황에도 침착

  • 등록 2026-07-14 오전 6:00:00

    수정 2026-07-14 오전 6:00:00

[박문선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이사] ‘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던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지휘를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5월이었다. 그가 자신이 창단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첫 내한공연을 펼쳤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였다.

미하일 플레트네프(오른쪽)와 다니엘 로자코비치(사진=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
미하일 플레트네프(오른쪽)와 다니엘 로자코비치(사진=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지금, 그날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며 플레트네프가 이끄는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RIO)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11일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먼저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을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피아니스트이자 예술감독인 클라라 민이 기획부터 섭외, 연주까지 직접 이끌어온 페스티벌이다. 거장과 차세대 연주자들이 함께 호흡하며 시대와 세대를 잇는 음악적 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레트네프가 지휘하는 RIO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의 협연 무대는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오케스트라 공연 중 첫 번째 무대였다. 1부에서 연주한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는 이날 공연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였다. 이 작품은 슈만 말년의 내면세계를 담고 있는 곡으로,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 RIO의 음악적 역량과 앙상블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협연자 다니엘 로자코비치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의 연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표현력, 안정된 기교와 깊이 있는 음악성은 슈만의 복합적인 정서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공연 중 예상치 못한 장면도 있었다. 3악장을 연주하던 중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진 것이다. 로자코비치는 당황하지 않고 악장의 악기를 건네받아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갔고, 객석은 그의 침착한 대처에 큰 박수를 보냈다.

2부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두 작품, 라흐마니노프의 ‘바위’와 플레트네프의 ‘라흐마니아나’(Rachmaniana)로 꾸며졌다.

라흐마니노프가 20대 초반에 작곡한 교향적 환상곡 ‘바위’는 15분 남짓한 짧은 작품이지만, 훗날 ‘죽음의 섬’과 교향곡 제2번으로 이어지는 특유의 음향 세계가 이미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깊고 어두운 현악의 울림과 풍부한 관현악 색채, 그리고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감정의 흐름을 RIO는 높은 집중력으로 표현해냈다.

마지막 작품인 플레트네프의 ‘라흐마니아나’는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단순히 편곡하거나 오마주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 언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플레트네프는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 감각을 바탕으로 현악기의 섬세한 음색 변화와 목관의 실내악적 대화, 저음 금관의 깊은 울림, 하프와 타악기의 절제된 사용을 통해 투명하면서도 밀도 높은 음향을 만들어냈다. 특히 모든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대신 음색을 층층이 쌓아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라는 세 가지 면모를 모두 갖춘 플레트네프의 음악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음악 페스티벌은 대형 공연기획사가 아닌 한 개인의 열정과 비전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내년에는 이 페스티벌이 프랑스에서 열린다고 한다. 머지않아 다시 국내 무대에서 플레트네프와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