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1조원 넘게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불황형 급전 대출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번복하는 과정에서 불붙은 부동산 단기자금 수요, 글로벌 관세 전쟁발(發)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이 겹치면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02조6658억원(17일 기준)이었다. 3월 말 대비 1조596억원 늘었다. 통상 월말에 일부 대출 상환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증가세가 유독 가파르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이달 말까지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월간 신용대출이 2021년 7월(1조8636억원) 이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로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이 전월 말 대비 증가한 것 역시 작년 11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신용대출은 경기 침체 영향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수 경기가 악화 일로를 걷는 와중에 신용대출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좋지 않은 신호”라고 평가했다.
증시 급락하자 빚투 확산…"5월이 더 불안"
은행 신용대출 4년 만에 최대
넉 달 연속 쪼그라들던 신용대출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2주 남짓 동안 증가폭이 1조원을 넘어서자 가계대출 관리에 나선 금융당국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문제는 빗장 풀린 대출 수요가 당분간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와 금리 인하 압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한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7일 기준 741조509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2조4997억원(0.3%) 증가했다. 이미 지난달(1조7992억원) 가계대출 증가폭을 넘어섰다.
이달 가계대출 급증세를 이끈 것은 신용대출이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은 이달 1~17일에만 1조596억원(1.0%) 늘었다. 신용대출은 작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 연속 전월 대비 감소했는데 이달 들어선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신용대출이 늘어난 것은 생계형 단기 대출과 투자자금 수요가 늘어나서다. 여기에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증가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시차를 두고 대출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
관세 전쟁으로 주춤한 증시에 뛰어든 해외 빚투(빚내서 투자) 투자자들이 최근 신용대출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로 미국 등 주요국 증시가 급락한 이후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매수가 급증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9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약 37억달러로 지난달 순매수액(41억달러)의 90%에 육박했다. 2월(30억달러) 순매수액은 이미 뛰어넘었다.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크게 늘었다.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이달 1~17일 6435억원(1.7%) 증가했다. 대기자금으로 불리는 요구불예금은 이달 들어 24조1882억원(3.7%) 급감했다.
주택 거래가 급증한 점도 신용대출 수요를 견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자금은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하더라도 취득세, 공인중개사 중개수수료와 같은 거래비용은 신용대출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주택 매매 거래는 5만698건으로 전월 대비 32.3% 급증했다.
문제는 주담대,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이 적극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시작한 이후에도 좀처럼 주담대 규모가 줄어들지 않아서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 역시 이달 1조5018억원(17일 기준) 늘었다.
업계에선 이대로 가면 지난달 증가폭(2조3198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2월 12일부터 확대 재지정한 3월 24일까지 늘어난 주담대 수요가 본격적으로 가계대출 총량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주담대는 신청부터 공급까지 1~2개월 시차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달은 물론 다음달까지 가계대출 증가폭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기준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금리 인하 기대가 큰 상황에서 대선 국면을 맞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가계대출 수요가 더 확대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