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이 6월 3일로 확정됐다. 미증유의 세계사적 혼란을 불러온 도널드 트럼프 2기에 우리의 생존을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시간이다. 대통령 궐위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원회라는 예비 학습 기간 없이 곧바로 실무에 들어가는 점도 선택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트럼프 2기와 같이 가게 될 대한민국호 차기 선장의 핵심 자질 다섯 가지를 정리해봤다.
제1 덕목은 국제 감각이다. 지금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면 눈을 들어 백악관을 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지구촌 동향에 밝은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트럼프의 ‘영혼의 단짝’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역사상 국제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참모가 아니라 지도자 자신의 국제 감각이 탁월해야 하는 이유다. 율사 또는 586 운동권 출신이 대부분인 한국 정치인에게 가장 부족한 자질도 이 부분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미국에 처음 가봤다고 할 정도로 우물 안 개구리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이미 G7 반열에 오른 한국은 이제 세계인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나라다. 지도자의 해외 인맥과 외국어 실력, 국제 정세 지식은 국격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 전문성이다. 가히 3차 세계대전 수준의 통상 전쟁을 촉발한 트럼프 시대, 지도자의 경제 지식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캐나다가 좋은 예다. 트럼프 취임 직후 25% 관세 폭격과 51번째 주 편입 조롱을 당한 캐나다가 기대하는 구원투수는 비정치인 출신 경제 전문가인 마크 카니다.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골드만삭스를 거쳐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물론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로도 스카우트된 세계적 경제 전문가다. 이달 말 총선에서 총리 당선이 유력한 그를 향한 캐나다인의 주문이다. “트럼프를 능숙하게 다뤄 캐나다 이익을 최대한 지켜달라.” 카니의 화려한 경력과 논리적 무장에 트럼프도 전임 쥐스탱 트뤼도를 대할 때와 태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대통령의 무지는 ‘죄악’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경제 개념으로 나라를 망친 전례를 숱하게 봐왔다. 예산 집행이 주 업무인 자치단체장 정도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 정책을 정면으로 다뤄본 사람이라야 한다. 그래야 예산과 재정, 세제, 산업·통상 정책 등 경제 전반의 운용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뼛속까지 비즈니스맨인 트럼프와 상대하기 위해선 참모가 아니라 지도자 본인이 경제 전문가여야 한다는 게 시대적 요구다.
세 번째는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수호 원칙이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중국 견제다. 중국과 맞대고 있는 우리는 일본과 함께 미국의 대중국 전선의 주요 안보 파트너다. 트럼프 1기인 문재인 정부 때 전략적 모호성이라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일본과 시종일관 불화하며, 북한만 바라보는 자폐적 외교로 참사를 초래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매끄러운 동행을 위해선 이념적 화음이 필수다.
네 번째는 통합과 소통 능력이다. 내전 수준의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로선 팬덤이 강한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면 갈등이 증폭할 우려가 크다. 비정치인 출신 지도자로 냉각 기간을 두는 효과도 생각할 수 있다. 상대와 타협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소통 능력 역시 정책적 역량에서 나온다.
마지막은 도덕성과 품격의 언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얘기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측근이 없는 지도자’가 도덕적일 수 있다. 사나운 말이 사나운 정치를 낳는 사례는 무수하다. 분열도, 통합도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시대정신은 ‘주어진 삶의 현실에서 출발’(빌헬름 딜타이)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현실의 출발점은 거대한 국제 정세 흐름이다. 우리가 가진 인적 자원에서 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따르는 길이다. “국민은 저마다의 정부를 갖는다”는 출처 불명한 말보다 명의 멸망을 지켜본 고염무의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 더 와닿는다.나라의 흥망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서민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