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두 번째 영국 국빈방문을 시작한 가운데, 현지에선 곳곳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런던 근교 윈저성 외벽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투샷’이 걸렸다. 런던 시민들은 ‘악랄한 파시스트’, ‘차 마시러 온 독재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과 일방적인 관세 정책 등에 대한 항의로 풀이된다.
무슬림 이민가정 출신으로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 당시 ‘파시스트’라고 비판한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트럼프식 공포와 분열의 정치 거부한다”는 글을 영국 가디언에 실었다. 이러한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 맞춰 2028년까지 현지에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 300억 달러(약 41조4000억 원)를 투입하겠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 윈저 성벽에 트럼프·엡스타인 ‘투샷’ 시위
트럼프 부부와 찰스 3세 국왕 내외의 1박 2일 윈저성 일정을 하루 앞둔 이날, 윈저성 외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과 영상이 몇 분간 재생됐다.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3년 미 조지아주에서 기소됐을 때 찍은 머그샷(수용자 기록부용 사진)과 미성년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다 사망한 엡스타인의 사진들이 등장했다. 엡스타인과 트럼프가 함께 찍은 사진, 둘의 관계를 조명한 언론 기사도 나왔다. 영국에서 주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단체인 ‘당키스(Donkeys·당나귀들)’가 이를 기획해 윈저 성벽에 투사한 것. 현지 경찰은 영상 재생을 중단시키고 관련자 4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이번 시위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2박3일 영국 일정 내내 ‘엡스타인 유령’이 따라다닐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사건 당시 영국 유력 인사들도 엡스타인과 어울리며 부적절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15일 피터 맨덜슨 전 주미 영국 대사를 갑작스럽게 해임했다. 그가 엡스타인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생전에 그를 옹호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는 마차 행렬과 고성에서의 숙박이 포함돼 있지만, 영국 관리들에겐 이번 방문이 동화 같은 이야기보다 현실적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 칸 런던시장 “트럼프, 분열 정치 부채질”
이날 윈저성 바로 앞에선 수십 명이 모여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펼쳤다. 시위대는 ‘트럼프 퇴진’과 ‘트럼프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단체 트럼프 저지 연합(Stop Trump Coalition)의 제이크 앳킨슨 대변인은 “우리는 트럼프 정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에 ‘영국 국민의 뜻이 아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야당인 노동당 소속으로 지난해 첫 3선에 성공한 칸 런던시장은 가디언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서 분열 정치를 부채질해왔다”며 “런던시민들이 공포의 정치를 거부한다는 점을 그에게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런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포용·낙관적”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미 빅테크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맞춰 영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MS는 영국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엔스케일과 2만3000개 이상의 고급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영국 최대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12만 개의 첨단 GPU를 영국 전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구글은 향후 2년 동안 50억 파운드(약 9조 원)를, 세일즈포스는 2030년까지 20억 달러(약 2조7500억 원)을 영국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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