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비중을 절반까지 높인 채권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 신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위험자산 비중을 최대한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가 많아진 게 주요 배경이다.
◇이달 순자산 4조원 넘어설 듯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채권혼합형 ETF의 순자산 규모는 전날 기준 3조843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까지만 해도 8274억원 수준이던 채권혼합형 ETF 순자산은 작년 말 2조7410억원으로 불어났고, 올 들어 1조원 넘게 추가 유입됐다. 관련 시장 규모가 1년 반 만에 5배 가까이 커진 것이다.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이달 4조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채권혼합형 ETF 시장이 커진 것은 퇴직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려는 투자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식 비중을 최대한 높여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는 연금 가입자들 사이에서 채권혼합형 ETF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상 퇴직연금 내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은 70%를 넘을 수 없다. 나머지 30%는 예금, 적금,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채권혼합형 ETF를 활용하면 위험자산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 채권혼합형 ETF는 기본적으로 채권 비중이 50% 이상이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신상품 중 상당수가 주식을 50% 가까이 담고 있어서다. 결국 퇴직연금 계좌 내 주식 비중을 최대 85%까지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퇴직연금 감독규정이 2023년 11월 개정되면서 이런 방식의 연금 투자가 가능해졌다. 채권혼합형 ETF가 편입할 수 있는 주식 비중을 종전 40%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美 단기채’ 혼합 상품 봇물
채권혼합형 ETF 중에서 주식 비중을 최대한 담은 상품이 큰 인기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배당미국채혼합50’과 올해 4월 상장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50액티브’가 대표적이다.
SOL 미국배당미국채혼합50은 미국배당 다우존스와 10년 만기 미 국채에 절반씩 투자하는 구조다. 올 들어서만 개인투자자 자금이 1185억원 순유입됐다.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50액티브는 나스닥100지수에 50%, 국내 단기채권에 50% 투자한다.
최근엔 미국 지수와 미국 단기채를 절반씩 담는 ETF가 많이 나온다. 이날 하나자산운용의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와 한화자산운용의 ‘PLUS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가 동시에 상장됐다. 미국 S&P500지수와 단기채 가격을 절반씩 추종하는 상품이다.
미국 단기채를 선호하는 투자자가 최근 늘고 있다는 게 증권가 설명이다.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재정 적자가 확대되면서 장기채 변동성이 커지자 투자심리가 단기채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정섭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S&P500지수와 미국 초단기 국채의 조합은 기업 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얻으면서도 변동성을 줄이는 방법”이라며 “특히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채권혼합형 ETF의 신상품 경쟁은 갈수록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이 자산운용사의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431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9% 급증했다. 운용사 관계자는 “통계적으로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장기 성과가 좋은 게 사실”이라며 “위험자산 비중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채권혼합형 ETF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