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가장 잘 팔던 남자는 왜 증류소를 샀나 [정보연의 시간을 마시는 기술]

1 day ago 4

서울 장충동의 바 텐트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수킨더 싱 / 사진제공. ⓒ김예연

서울 장충동의 바 텐트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수킨더 싱 / 사진제공. ⓒ김예연

지난 13일, 서울 장충동의 바 텐트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수킨더 싱(Sukhinder Singh)을 만났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그는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이자 하나의 롤모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위스키를 만든 사람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대신 위스키를 발견하고, 분류하고, 추천하고, 판매하며 시장의 욕망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읽은 사람이었다.

수킨더 싱은 1999년 형제 라지비르 싱(Rajbir Singh)와 함께 위스키 익스체인지(The Whisky Exchange)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영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주류 리테일러로 성장했다. 페르노리카는 2021년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위스키 익스체인지를 약 1만 개 상품 카탈로그와 온라인 판매, 오프라인 매장, 온트레이드 공급, 프라이빗 세일, 희귀 주류 경매까지 갖춘 옴니채널 플레이어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위스키를 가장 잘 팔던 사람은 왜 결국 증류소를 사고 싶어졌을까?

수집가에서 플랫폼 창업자로

위스키 익스체인지는 1999년에 태어났지만, 그 뿌리는 1970년대 런던 북서부의 작은 주류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킨더 싱과 라지비르 싱 형제는 부모님의 가게 위층에서 자라며 주류 소매업을 몸으로 익혔다. 이후 가족 사업을 매각한 뒤, 당시로서는 낯선 온라인 위스키 전문 플랫폼을 열었다.

사실 수킨더 싱의 출발점은 ‘판매자’라기보다 ‘수집가’에 가까웠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미니어처 위스키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후 풀 보틀 컬렉션으로 관심을 넓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적인 위스키 컬렉터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였다. 그의 수집은 단순히 병을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세계의 증류소, 빈티지, 캐스크, 가격, 희소성, 소비자의 반응을 체화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플랫폼이 데이터로 취향을 읽는다면, 그는 병과 라벨과 향으로 시장을 먼저 읽은 셈이다.

위스키 익스체인지 및 엘릭서 디스틸러스 창립자 수킨더 싱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위스키 익스체인지 및 엘릭서 디스틸러스 창립자 수킨더 싱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The Whisky Exchange, 위스키 애호가의 검색창이 되다

위스키 익스체인지는 단순 쇼핑몰이 아니었다. 위스키 애호가에게 일종의 검색창이자 가격표이자 박물관 같은 플랫폼이었다. 필자 역시 궁금한 위스키를 검색하다가 위스키 익스체인지의 페이지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클릭하곤 했다. 제품 정보의 분류 기준이 명확했고, 데이터베이스가 충실했으며, 소비자 리뷰까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스키 익스체인지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출발했지만, 현재 런던 중심부에 코벤트가든, 그레이트 포틀랜드 스트리트, 런던 브리지에 세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의 방대한 카탈로그와 오프라인의 전문 상담 경험을 결합한 구조다. 필자 역시 영국을 여행할 때면 이 매장에 들러 어떤 위스키가 들어와 있는지 둘러보곤 한다. 희귀 주류와 익스클루시브 보틀을 만날 수 있어, 위스키 애호가에게는 그야말로 방앗간 같은 곳이다. 궁금한 위스키가 있다면 현장에서 문의하고, 일부 제품은 시음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위스키 익스체인지의 의미는 소비자와 만나는 온오프라인 리테일에만 있지 않다. 이 회사는 온트레이드 공급, 희귀 주류 경매, 프라이빗 세일까지 확장한 옴니채널 사업자였다. 제조사는 자신이 만든 술을 안다. 그러나 플랫폼은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무엇 앞에서 망설이며, 무엇이 사라질 때 아쉬워하는지를 안다. 위스키 익스체인지가 특별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취미처럼 시작된 독립병입

수킨더 싱은 2002년 첫 캐스크를 병입했다. 이 흐름이 싱글몰트 오브 스코틀랜드(The Single Malts of Scotland)로 이어졌다. 2008년에는 엘리멘트 오브 아일라(Elements of Islay)가 출시됐다. 이 두 브랜드는 오늘날 엘릭서 디스틸러스(Elixir Distillers)를 대표하는 독립병입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독립병입자는 증류소를 소유하지 않는다. 대신 증류소에서 생산된 원액을 구매해 캐스크를 고르고, 병입 시점과 도수를 정하고, 라벨과 이야기를 붙인다. 다시 말해 위스키의 출생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위스키가 세상에 나오는 방식은 통제한다.

이 점에서 독립병입은 제조와 유통 사이의 회색지대다. 증류하지는 않지만, 어떤 위스키가 어떤 이름과 얼굴로 소비자 앞에 놓일지는 병입자의 감각에 달려 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독립병입이 강력한 차별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팔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자기 플랫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엘릭서 디스틸러스의 위스키와 럼을 총 11종을 시음했다. 그 중에서도 싱글몰트 오브 스코틀랜드에서 병입한 글렌로시 싱글캐스크 18년 숙성 버번 캐스크가 인상적이었다. 복숭아 콤포트, 바닐라, 라임, 리치, 꿀의 향이 조화롭게 피어났다. 버번 캐스크 특유의 밝은 과실향이 과하지 않게 살아 있는 위스키였다. 최근 시장에서 자주 만나는 강렬한 셰리 캐스크 위스키와는 다른 결의 매력이 있었다. 오랜만에 “정말 맛있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균형 좋은 위스키였다. 수킨더 싱 역시 버번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좋아한다며, 자신이 순수한 마음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던 20여 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고숙성 위스키도 있었다. 싱글몰트 오브 스코틀랜드가 병입한 쿨일라 40년은 바나나 껍질, 망고, 레몬 제스트, 베이컨 스모크가 은은하게 어우러진 위스키였다. 동시에 참기름에 무친 미역줄기 같은 고소하고 짭조름한 바다의 인상도 스쳤다. 낯선 고급스러움보다 이상하게 정감이 가는 맛이었다. 수킨더 싱은 쿨일라를 자신이 좋아하는 증류소라고 소개하며, 이 증류소가 지닌 과실향과 피트의 균형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좌] 싱글몰트 오브 스코틀랜드 글렌로시 싱글캐스크 18년 숙성 버번 캐스크  [우] 엘릭서 디스틸러스의 위스키와 럼 테이스팅 / 사진제공. ⓒ김예연

[좌] 싱글몰트 오브 스코틀랜드 글렌로시 싱글캐스크 18년 숙성 버번 캐스크 [우] 엘릭서 디스틸러스의 위스키와 럼 테이스팅 / 사진제공. ⓒ김예연

플랫폼을 팔고, 증류소를 사다

2021년 페르노리카는 위스키 익스체인지 인수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2년, 엘릭서 디스틸러스는 페르노리카로부터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에 위치한 토모어(Tormore) 증류소와 브랜드를 인수했다. 토모어는 1960년에 지어진 증류소로, 페르노리카 공식 발표 기준 연간 약 500만 리터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이는 글렌피딕이나 글렌리벳 같은 초대형 싱글몰트 증류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결코 작은 공방형 증류소도 아니다. 크라이겔라키, 글렌파클라스, 롱몬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중대형 체급의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즉 수킨더 싱이 사들인 것은 낭만적인 작은 증류소 하나가 아니라, 수백만 리터의 원액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스페이사이드의 생산 기반이었다.

그는 페르노리카에 플랫폼을 팔았다. 그리고 이듬해 페르노리카가 갖고 있던 증류소를 샀다. 표면적으로는 두 건의 거래였지만, 더 깊이 보면 방향의 전환이었다. 판매에서 생산으로, 선택에서 창조로, 플랫폼에서 원액으로 향한 이동이었다.

왜 플랫폼은 제조를 꿈꾸는가

플랫폼이 제조를 꿈꾸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마진이다. 플랫폼은 거래를 중개하지만, 제조사는 브랜드 자산과 원가 구조를 더 깊이 통제할 수 있다.

둘째, 차별화이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누구나 같은 상품을 팔게 된다. 결국 “우리만 가진 것”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온다. 위스키 익스체인지가 익스클루시브 병입으로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셋째, 데이터의 종착지이다. 플랫폼은 소비자 취향을 안다. 어떤 숙성연수, 도수, 캐스크, 가격대, 지역, 스토리가 반응하는지 읽을 수 있다. 그 데이터를 가장 강하게 활용하는 방식은 결국 직접 상품을 만드는 일이다.

넷째, 문화적 권위다. 위스키 세계에서 유통자는 시장을 움직이지만, 증류소 소유자는 시간을 소유한다. 특히 스카치위스키에서 증류소는 단순한 공장이 아니다. 지리, 역사, 숙성고, 건축, 물, 사람의 서사를 품은 문화적 자산이다.

반대로 제조사는 왜 플랫폼을 원하나

반대로 제조사는 왜 플랫폼을 원할까? 페르노리카는 위스키 익스체인지 인수를 설명하며 소비자 중심 전략, 전자상거래 성장, 프리미엄화 수요를 언급했다. 제조 회사는 오랫동안 제품을 만들고, 유통망을 통해 시장에 내보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접점이 중요해졌다. 플랫폼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취향과 가격과 반응이 쌓이는 곳이다.

따라서 제조사는 플랫폼을 원하고, 플랫폼은 제조를 원한다. 제조사는 소비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플랫폼은 자신만의 병을 갖고 싶어 한다. 오늘날의 주류 산업에서 두 욕망은 서로를 향해 걸어간다.

독립병입자는 타인의 증류소에서 나온 원액을 해석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해석자는 자신만의 악기를 갖고 싶어진다. 시그나토리(Signatory)가 에두라두어(Edradour)를 품은 것처럼, 엘릭서는 토모어를 품었다. 다만 두 사례의 성격은 다르다. 에드라두어는 소규모 하이랜드 증류소의 개성과 시그나토리의 캐스크 중심 철학이 강하게 결합한 사례라면, 토모어는 훨씬 큰 생산능력을 지닌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다. 엘릭서 디스틸러스의 토모어 인수는 취미의 연장이라기보다 본격적인 제조업 진입 선언에 가깝다.

토모어 증류소 전경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토모어 증류소 전경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토모어 증류소 구성원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토모어 증류소 구성원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토모어, 숨겨진 스페이사이드의 재해석

토모어는 오랫동안 블렌디드 위스키의 구성 원액으로 더 많이 인식됐다. 싱글몰트 브랜드로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증류소였다. 엘릭서 디스틸러스 인수 후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2025년 공개된 블루프린트(Blueprint) 시리즈는 엘릭서의 인수 이후 토모어의 첫 공식 릴리스로 소개됐다. 이 시리즈는 2026년 본격 브랜드 론칭을 앞둔 예고편에 가깝다. 버번 배럴, 크림 셰리 캐스크, 토스티드 배럴의 세 가지 10년 숙성 위스키로 구성됐고, 토모어가 앞으로 어떤 방향의 싱글몰트로 재해석될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2026년에는 토모어 12년을 포함한 핵심 라인업이 준비되고 있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운 좋게도 토모어 12년을 먼저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애플민트, 복숭아 잼, 유칼립투스, 바닐라, 생강과 백후추의 스파이스가 조화로웠다. 버번 캐스크, 크림 셰리 캐스크, 뉴오크 계열의 조합은 토모어가 지닌 과실향 중심의 캐릭터를 또렷하게 살리는 방향으로 느껴졌다.

토모어 증류소 숙성고 내부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토모어 증류소 숙성고 내부 / 사진제공. ⓒ메타베브코리아

수킨더 싱의 행보는 한 사람의 성공담이라기보다, 오늘날 위스키 산업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제조사는 플랫폼을 원하고, 플랫폼은 제조를 꿈꾼다. 한쪽은 소비자의 데이터를 원하고, 다른 한쪽은 시간의 권위를 원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위스키 브랜드는 무엇으로 평가받게 될까. 잘 만든 술일까, 잘 팔리는 구조일까, 아니면 그 둘을 모두 설계하는 사람의 감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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