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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왠지 몸이 아픈 것 같은데….”
직장인 이진수 씨(40·가명)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극심한 갈등에 시달린다. 오후 6시만 되면 ‘주 3회 운동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희미해진다. 괜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고, 더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매달 꼬박꼬박 알람을 맞춰놓고 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회원 등록 기간에 맞춰 온라인 등록을 한다. 기존 회원 등록 기간을 놓치면 제한 인원이 차버려 운동을 다닐 수 없어서다. 사실 지난달에는 딱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달도 어김없이 회원 등록을 완료했다.
누구나 한 번쯤 운동 앞에서 주저앉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의지와 실천은 한 세트가 아니다. 새해 다짐 단골 레퍼토리인 다이어트, 영어 공부, 독서 등이 몇 년째 지켜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말로만 그친 허튼 다짐은 얼마나 많단 말인가.
부지런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갓생(God+生, 신 같은 삶)’이란 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의지는 충만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왜일까. 운동이나 공부같이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일에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도전해 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 나도 이번만은 ‘파워 J’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꾸만 패배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짜야 한다. 비교적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으면서 효과가 좋은 방법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 세우기다. 헐렁한 계획보다 깨알같이 치밀한 계획이 있을 때 생각보다 성공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이때 이른바 ‘파워 J’가 필요하다. 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 판단(Judging)형을 의미하는 J 성향은 얼마나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한가의 수준을 나타낸다. 미리 대처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격일수록 J 성향 점수가 높다. 하기 싫은 일을 습관으로 만들 때 ‘나는 이번만큼은 강한 J 성향이다!’라고 마음먹으면 도움이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구체적 계획 유무 여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목표 달성과 자기 통제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한 피터 골비처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s)라고 명명했다. 쉽게 말해 목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예를 들어 ‘저녁때 운동하겠다’보다는 ‘월요일 퇴근하고 오후 7시가 되면(언제), 회사 옆 A 헬스장에 가서(어디서) 30분 동안 러닝머신에서 뛰겠다(어떻게)’는 구체적인 계획이 훨씬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받겠다’보다는 ‘매일 오전 8시 출근할 때, 차 안에서 사과 한 알을 먹겠다’ ‘이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B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겠다’로 바꾸면 좋다.
● ‘모든 것이 나의 통제 속에 있다’는 만족감
계획 세울 시간에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실행 의도와 관련한 세계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성공률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길들이기 어려운 습관인 운동을 주제로 진행한 연구를 보자. 영국 베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48명을 A, B, C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 중 A, B 그룹에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심장질환의 치명적인 위험과 운동의 예방 효과에 대한 교육 자료를 나눠줬다. 운동 의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B 그룹에만 실행 의도에 관한 추가 교육을 했다. ‘운동하겠다고 다짐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실행 의도를 구체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운동할 건지 바로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다. C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 실제로 하루에 2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몇 차례 했는지 조사했다.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커진 상태에서 구체적 계획을 세운 B 그룹 학생들이 가장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그룹의 91%가 실제로 운동했고, 이들 중 97%는 애초 계획대로 움직였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을수록 ‘내가 계획대로 상황을 통제한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행동으로 옮기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고 봤다.
반면 운동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A 그룹은 35%만 운동했다. 아무 교육을 받지 않은 C 그룹(38%)과 비슷했다. 이들 중 운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바빠서’ ‘잊어버려서’라고 답했다. 특정 시간과 장소 등을 못 박지 않아 운동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기억에서 사라진 탓이다.
이 외에도 구체적 계획의 힘을 확인한 연구 결과는 많다. 연구진은 입원 치료를 받다 퇴원을 앞둔 약물 중독 환자들에게 퇴원 전까지 구직활동에 필요한 이력서를 쓰라고 요청했다. 이들 가운데 이력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쓸 건지 계획을 세운 환자의 80%가 정말로 이력서를 쓰고 병원 문을 나섰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은 환자들은 퇴원할 때까지 아무도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보고서 제출하기, 재활운동 하기, 숙제하기, 가족과 갈등 해결하기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비율이 훨씬 높았다.
● “뭘 실패했지?”… 스스로 숙제 검사
계획을 행동에 옮겼는지 자신이 모니터링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스스로 숙제 검사하듯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면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음에 할 일을 상기할 수 있어서다.
다이어트처럼 식사, 운동, 체중 변화 등 두루 살펴야 하는 일이 많을 때 자신이 기록하며 관찰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미 오하이오주 볼링그린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비만 성인 40명을 모집해 21주 동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식이요법 교육과 운동 처방에 더해 참가자들에게 매일 먹은 음식과 식사량, 운동시간, 체중 등을 적는 ‘다이어트 일기’를 쓰도록 했다.
21주 뒤에 살펴보니, 놀랍게도 다이어트 성패를 가른 기준은 얼마나 일기를 꾸준히 썼는지였다. 다이어트 일기를 거의 매일 쓴 사람들은 체중이 평균 10.5kg 줄었지만 일기를 쓰다 말다 한 사람들은 이에 절반 수준인 평균 5.5kg만 감량할 수 있었다. 또 일기를 매일 쓴 사람들은 일주일 평균 3시간 운동했지만, 꾸준히 쓰지 않은 사람들은 1시간 30분 정도만 운동했다.
연구진은 “모니터링을 열심히 한 사람들은 무엇이 체중 감량에 걸림돌이 되는지 알게 되면서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 조절 필요성을 더 잘 알게 됐고, 다이어트를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 보상이 기다리면, 반복이 쉬워진다
공부나 운동을 하고 난 뒤 보상을 주면, 하기 싫은 일의 문턱을 조금 낮춰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외적 보상과 주관적으로 느끼는 내적 보상이 동시에 따를 때 효과가 더 크다. 외적 보상은 물질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 칭찬 같은 요소들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칭찬은 혼자 있을 땐 보상으로 받기 쉽지 않으므로,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 장치를 만들면 도움 된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 30분을 채울 때마다 ‘해외여행 가기’라고 이름 붙인 통장에 일정 금액씩 저축하는 것은 외적 보상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때그때 원하는 걸 사거나, 먹는 방법도 있다.
내적 보상은 성취감, 즐거움, 뿌듯함 같은 것이다. 미 뉴멕시코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주 3~6회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266명을 대상으로 어쩌다 운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조사해 봤더니, 많은 이들이 외적 보상보다는 운동 후 쾌감이나 성취감같이 주관적인 만족감을 꼽았다. 행동 후에 느껴지는 내적 보상이 무엇인지 찾아내 인식해 보려고 연습하면 더 몰입해서 즐길 수 있다.
● 할까말까 고민할 시간을 주지 말 것
실천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저항 요소를 미리 제거해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것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헬스장은 무조건 집과 가까워야 한다. 거리가 멀거나 가는 길이 복잡하면 딴 길로 새거나 아예 포기하기 쉽다. 운동복이나 신발을 담은 운동 가방을 현관에 미리 싸놓는 것도 방법이다. 준비 과정을 최대한 단축해서 망설일 틈을 주면 안 된다.
여러 습관 연구를 진행한 탁진국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명예교수(지아미라이프코칭센터 대표 코치)는 “새로운 행동이 습관으로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저항 요인이 뭔지 파악해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초기에 성공 경험을 몇 차례 쌓고 나면, 계속 반복하도록 만드는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쓱 밀면 자동결제가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리와도 같다. 유통 기업들은 결제 과정이 복잡하면 소비자가 물건을 사려다가도 귀찮아서 포기할 수 있으니, 최대한 쉽게 돈을 쓸 수 있도록 장애물을 없애 놓는다. 물론, 이런 원리를 거꾸로 뒤집어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최대한 장애물을 많이 설치하고 번거롭게 만들어서 도중에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관련 기사: 밤샘 쇼츠-라면 야식… 의지의 문제일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일정 시간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갓생’ 문턱은 조금 낮출 수 있을지라도 왕도는 없다는 의미다. 탁 교수는 “일부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음식 먹기, 물 마시기, 운동하기 같은 습관이 형성되는 데 평균 66일 걸렸다”며 “좋은 습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주 이상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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