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 1200일… 두 차례 직접 회담 소득 없이 끝나
‘우크라 나토 가입’이 최대 난제… 러 점령지 반환 등도 입장 차 극명
트럼프, 러-우 오가며 갈등 악화
反이민-관세 등 의제 처리로 바빠… “현재로서 휴전 불가능” 비관론
협상 고지 선점 위한 양측 공세 격화… “러 공세 2∼3개월이 향방 가를 듯”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고, 전력상 우위에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의사를 비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휴전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최근 러시아 본토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세 등을 강화하고 있다. 1일에는 러시아 본토 5곳의 군사 기지를 드론으로 타격해 전략폭격기 41대에 큰 손상을 입힌 ‘거미줄(Spiderweb)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 우크라 나토 가입이 최대 난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불허하는 대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주요국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러시아는 이 또한 사실상 나토 가입에 준하는 조치로 인식하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러시어학)는 “협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명확한 안전보장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안전을 보장해줄 주체는 미국밖에 없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를 회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태림 미국 조지워싱턴대 초빙 연구원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항복’을 선언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는 이상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 러 점령지, 악화된 양 국민 감정 등도 걸림돌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점령지 주권 주장 불인정, 유럽연합(EU) 및 나토 가입에 대한 자유, 전쟁범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이런 극명한 입장 차로 양측은 3차 회담의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1200일을 넘긴 전쟁으로 양측 피해가 너무 커졌고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고조된 것 또한 휴전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장기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적 물적 피해로 양국 지도자 모두 “다소 불리하더라도 현 수준에서 전쟁을 끝내자”고 자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에서는 사망자 25만 명을 포함해 95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사상자가 이미 100만 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본다. 우크라이나에서도 4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중 사망자는 6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다. 우크라이나는 최소 1760억 달러(약 242조880억 원), 러시아는 최소 960억 달러(약 132조48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휴전 후 재건에는 이보다 훨씬 큰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갈지자’ 트럼프가 상황 악화시켜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두 달 후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맺은 뒤에는 우크라이나와 밀착했다. 지난달 25일에는 휴전 협상에 미온적인 푸틴 대통령을 향해 “미쳤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불법 이민자 단속에 대한 항의 시위가 미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데다 관세와 감세 등 주요 정책에 대한 국내외 비판도 커지고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다.
엄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의제로 대외 정책의 추동력을 잃은 것 같다”며 “유럽 주요국과 러시아 모두로부터 신뢰도 잃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유럽 주요국은 방위비 증액과 관세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맺었기에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이다.
● 발 빼는 美 vs 지원 강화하는 유럽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축소하려고 하는 반면 유럽은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차이가 판세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10일 하원에 출석해 2026 회계연도(올해 10월∼내년 9월) 국방예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을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축 규모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지원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 양측과 미국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앞서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도 불참했다. 미국과 서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쟁 발발 후 매년 개최한 이 회의에 현직 미국 국방장관이 불참한 것은 처음이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 위해 조달했던 드론 격추 장비를 중동의 미 공군 부대로 재배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국방부는 자국 자동차 기업인 르노에 우크라이나 지원 차원에서 드론 생산 협조를 요청했다. 드론은 전반적인 군사 역량이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1200일 동안 전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가 독일의 도움을 받아 생산할 무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장 2500km 거리의 목표물을 때릴 수 있는 로켓, 순항미사일 등 장거리 무기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기술 요소를 독일 측이 제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브루노 칼 독일 연방정보국(BND) 국장은 10일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계획 중인 징후를 포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궁극적 목표가 발트3국, 동유럽 주요국이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던 199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전쟁 발발 후 미국보다 먼저 전차 등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를 적극 도왔다. 안드레이 켈린 주(駐)영국 러시아대사는 6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영국이 1일 ‘거미줄 작전’ 때도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러 유리하나 향후 두세 달이 중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미온적이라는 점도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요소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간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이 대부분 미국이 제공한 고해상도 레이더 영상 등에 의존해 왔다며 이런 지원이 사라질 경우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집권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포함해 미 정계에는 대(對)러시아 강경파가 상당하다. 이들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추가 제재 등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독일 언론인 파울 호케노스도 최근 미 외교 매체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우크라이나가 붕괴할 경우 미국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에 ‘눈과 귀’에 해당하는 미국의 위성 정보 접근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역시 전쟁 수행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협상에 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국 안보연구기관 오픈소스센터(OSC)에 따르면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일일 최대 3만8000발의 포탄을 쐈지만 현재는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발사하고 있다. 특히 포탄 수요의 50%를 북한에서 충당한다고 봤다. 북한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격전지인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에 약 1만1000명을 파병한 것 또한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향후 2, 3개월간 이어질 ‘여름 공세’의 전황이 휴전 협상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대대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점령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엄 교수는 “향후 두세 달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세를 잘 막아내면 러시아도 지금보다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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