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휴전 협상 교착… 양측 조건 판이하고 美도 오락가락[글로벌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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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 1200일… 두 차례 직접 회담 소득 없이 끝나
‘우크라 나토 가입’이 최대 난제… 러 점령지 반환 등도 입장 차 극명
트럼프, 러-우 오가며 갈등 악화
反이민-관세 등 의제 처리로 바빠… “현재로서 휴전 불가능” 비관론
협상 고지 선점 위한 양측 공세 격화… “러 공세 2∼3개월이 향방 가를 듯”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8일(현지 시간) 1200일을 맞았다. 두 나라는 지난달 16일, 이달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두 차례 직접 회담을 열었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3년 이상 이어진 전쟁으로 양측 모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고, 전력상 우위에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의사를 비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휴전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최근 러시아 본토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세 등을 강화하고 있다. 1일에는 러시아 본토 5곳의 군사 기지를 드론으로 타격해 전략폭격기 41대에 큰 손상을 입힌 ‘거미줄(Spiderweb)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양측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재자’를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존재감은 빈약하다. 그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를 갈지자처럼 오가는 오락가락 행보만 보인 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아예 휴전 협상 중재에서 발을 빼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 협상 역시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최근 미국 외교 매체 포린어페어스(FA) 기고에서 “양국 모두 전쟁을 그만둘 동기가 부족해 현재로서 휴전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 우크라 나토 가입이 최대 난제

① 러, 우크라 부차 등 곳곳서 민간인 학살

① 러, 우크라 부차 등 곳곳서 민간인 학살
휴전 협상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는 두 나라가 원하는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꼽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시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간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로 ‘나토의 동진(東進) 저지’를 꼽았다. 반면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제2, 제3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토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나토 ‘조약 5조’를 우크라이나는 자국 안보에 꼭 필요한 ‘보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② 우크라 대반격 시작

② 우크라 대반격 시작
하지만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 보좌관은 9일 관영매체 RT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핵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항복 없는 평화 협정은 우크라이나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지 ‘나고르노카라바흐’처럼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지위 획득은 돌이킬 수 없는 경로로 이미 결정됐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불허하는 대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주요국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러시아는 이 또한 사실상 나토 가입에 준하는 조치로 인식하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러시어학)는 “협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명확한 안전보장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안전을 보장해줄 주체는 미국밖에 없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를 회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태림 미국 조지워싱턴대 초빙 연구원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항복’을 선언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는 이상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 러 점령지, 악화된 양 국민 감정 등도 걸림돌

③ 나토, 북한군 쿠르스크 배치 확인

③ 나토, 북한군 쿠르스크 배치 확인
양측은 전쟁 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지역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되돌려받겠다고 주장한다. 2일 회담에서도 러시아는 점령지 반환 불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의 군사 지원 중단, 지난해 5월 5년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을 이유로 시행하지 않고 있는 대선 실시 등을 휴전 조건으로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점령지 주권 주장 불인정, 유럽연합(EU) 및 나토 가입에 대한 자유, 전쟁범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이런 극명한 입장 차로 양측은 3차 회담의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1200일을 넘긴 전쟁으로 양측 피해가 너무 커졌고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고조된 것 또한 휴전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장기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적 물적 피해로 양국 지도자 모두 “다소 불리하더라도 현 수준에서 전쟁을 끝내자”고 자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에서는 사망자 25만 명을 포함해 95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사상자가 이미 100만 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본다. 우크라이나에서도 4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중 사망자는 6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다. 우크라이나는 최소 1760억 달러(약 242조880억 원), 러시아는 최소 960억 달러(약 132조48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휴전 후 재건에는 이보다 훨씬 큰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갈지자’ 트럼프가 상황 악화시켜

④ 트럼프-젤렌스키 회담, 설전 끝 파국

④ 트럼프-젤렌스키 회담, 설전 끝 파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행보도 휴전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만 해도 노골적으로 푸틴 정권에 밀착했다. 그는 올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지원에 고마워하지 않는다”며 공개석상에서 설전을 벌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도 잠시 중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선 미실시를 이유로 “집권 정당성이 없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두 달 후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맺은 뒤에는 우크라이나와 밀착했다. 지난달 25일에는 휴전 협상에 미온적인 푸틴 대통령을 향해 “미쳤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불법 이민자 단속에 대한 항의 시위가 미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데다 관세와 감세 등 주요 정책에 대한 국내외 비판도 커지고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다.

엄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의제로 대외 정책의 추동력을 잃은 것 같다”며 “유럽 주요국과 러시아 모두로부터 신뢰도 잃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유럽 주요국은 방위비 증액과 관세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맺었기에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이다.

● 발 빼는 美 vs 지원 강화하는 유럽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축소하려고 하는 반면 유럽은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차이가 판세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10일 하원에 출석해 2026 회계연도(올해 10월∼내년 9월) 국방예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을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축 규모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지원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 양측과 미국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앞서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도 불참했다. 미국과 서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쟁 발발 후 매년 개최한 이 회의에 현직 미국 국방장관이 불참한 것은 처음이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 위해 조달했던 드론 격추 장비를 중동의 미 공군 부대로 재배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국방부는 자국 자동차 기업인 르노에 우크라이나 지원 차원에서 드론 생산 협조를 요청했다. 드론은 전반적인 군사 역량이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1200일 동안 전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⑤ 우크라, 러 군사기지 드론 공격

⑤ 우크라, 러 군사기지 드론 공격
독일 역시 우크라이나가 자체 장거리 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 및 자금 지원에 나섰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8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양국이 협업해 만든 무기가 빠르면 내년 6월 처음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및 구호물자 신규 지원에 50억 유로(약 7조7000억 원)의 예산도 배정했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가 독일의 도움을 받아 생산할 무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장 2500km 거리의 목표물을 때릴 수 있는 로켓, 순항미사일 등 장거리 무기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기술 요소를 독일 측이 제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브루노 칼 독일 연방정보국(BND) 국장은 10일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계획 중인 징후를 포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궁극적 목표가 발트3국, 동유럽 주요국이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던 199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전쟁 발발 후 미국보다 먼저 전차 등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를 적극 도왔다. 안드레이 켈린 주(駐)영국 러시아대사는 6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영국이 1일 ‘거미줄 작전’ 때도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러 유리하나 향후 두세 달이 중요

⑥ 러-우크라, 이스탄불서 2차 회담

⑥ 러-우크라, 이스탄불서 2차 회담
단순 판세로만 보면 현재 국력과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전쟁이 진행될수록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러시아가 18세기 스웨덴과 21년간 벌인 전쟁에서도 승리했다며 “러시아를 상대로 한 장기전은 반드시 패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미온적이라는 점도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요소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간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이 대부분 미국이 제공한 고해상도 레이더 영상 등에 의존해 왔다며 이런 지원이 사라질 경우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집권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포함해 미 정계에는 대(對)러시아 강경파가 상당하다. 이들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추가 제재 등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독일 언론인 파울 호케노스도 최근 미 외교 매체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우크라이나가 붕괴할 경우 미국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에 ‘눈과 귀’에 해당하는 미국의 위성 정보 접근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역시 전쟁 수행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협상에 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국 안보연구기관 오픈소스센터(OSC)에 따르면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일일 최대 3만8000발의 포탄을 쐈지만 현재는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발사하고 있다. 특히 포탄 수요의 50%를 북한에서 충당한다고 봤다. 북한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격전지인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에 약 1만1000명을 파병한 것 또한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향후 2, 3개월간 이어질 ‘여름 공세’의 전황이 휴전 협상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대대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점령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엄 교수는 “향후 두세 달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세를 잘 막아내면 러시아도 지금보다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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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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