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견고한 ‘삼각형 친구’ 혜은이·윤희정·권성희가 끝내 지킨 것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오래된 우정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관계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끝내 친구로 남는다.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내가 조금 더 이해하고, 이 사람과의 관계를 잃고 싶지 않다는 선택이 쌓여 탄탄한 우정이 되는 게 아닐까.
가수 혜은이에겐 이런 친구가 둘 있다. ‘국민 가수’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던 아픈 시간도 있었다. 고개를 숙여야 했던 날도 있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조차 버거웠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재즈 가수 윤희정과 세샘트리오 권성희가 곁에 머물렀다. 이들은 자신을 비우고 다가왔다. 그저 시간이 나면 만나 밥을 먹고, 웃고,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쇼핑백 하나 들고 밤무대로
“야간업소에서 우리 처음 만났잖아.”혜은이의 한마디에 셋의 시간이 5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1973~74년 무렵이다. 권성희는 “혜은이가 승주일 때”라고 추억 회로를 돌린다. 혜은이의 본명은 김승주.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국민 가수지만 그 때의 승주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래하던 청춘이었다. 아버지의 빚보증 문제로 집안 형편이 하루 아침에 기울었다. 대전을 떠나 서울 홍제동의 방 하나짜리 작은 전셋방을 얻고 살았다. 미8군 무대와 야간업소는 어린 승주에게 꿈의 무대가 아니라 생계의 현장이었다.그 무렵 권성희는 동덕여대 성악과 학생이었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쇼핑백에 드레스 한 벌 넣고 야간업소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학교에서 알면 퇴학이었죠. 부모님도 모르셨어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무교동 극장 식당 ‘월드컵’.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1, 2, 3부 쇼를 보는 서울의 대표 공연장이었다. 권성희에게 혜은이는 이미 선배였다.
“혜은이는 노래를 너무 잘했죠. 그 당시에 패키지 쇼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1970년대 패키지 쇼는 여러 가수와 악단이 한 팀을 이뤄 공연하는 무대였다.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권성희의 기억 속 혜은이는 이미 ‘될성 부른 견습(見習) 가수’였다. 그럼 권성희는?
“월드컵은 좀 짰어요. 한 달에 7~8만 원 줬나. 다른 업소는 15만 원 줬어요. 여기저기 뛰면서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벌었어요. 당시 제 대학 등록금이 13만 원, 직장인 월급이 3~4만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매일 드레스 들고 나가는 거죠.”
친구 혜은이를 치켜세우는 기억 호출에 윤희정이 배를 잡고 웃는다.
“동생들아, 나도 옛 이야기 해줄까?”윤희정은 1971년 ‘전국노래자랑’ 1회에서 ‘세노야’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중에 PD를 만났더니 지원자가 5만4000명이었다더라. 내가 우승했고, 전영록이 장려상 받았지.”
권성희는 당시 생방송을 기억했고, 혜은이도 텔레비전으로 윤희정을 봤다.
“언니는 그때 얼굴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난 언니가 정말 특별하게 노래한다고 생각했어.”
기다렸다는 듯이 윤희정이 “얘들아, 나 아직 얼굴에 주사 한 대도 안 맞았잖아”라고 하자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가장 화려했던 사람, 가장 외로웠던 사람
일단 혜은이와 권성희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 길옥윤을 만나 다시 하나로 이어졌다. 혜은이는 1975년 길옥윤이 만든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했다. 혜은이는 “노래 발표하고 1년 만에 떴다”고 했다. ‘당신만을 사랑해’, ‘진짜 진짜 좋아해’까지 연이어 히트했다. 당시 156cm, 38kg 체구의 꼬마 숙녀는 1977년 한 해 가요계를 완전히 평정했다.
권성희 역시 길옥윤의 눈에 띄었다. 세샘트리오라는 이름도, ‘나성에 가면’이라는 국민 가요도 모두 길옥윤의 손에서 탄생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은 세대를 초월한 노래다. 지금도 어린 학생들이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라는 가사와 리듬을 안다.
“우리는 같은 선생님 제자였잖아요. 한 식구였죠.”
혜은이는 방송국에서도, 녹음실에서도 권성희를 매일 만났다. 권성희는 “세샘트리오가 나올 당시에는 혜은이는 이미 스타가 돼서 빨간색 포니를 타고 다녔다”고 시샘어린 폭로를 했다. 사실 당시 혜은이는 스타가 됐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틈이 없었어요. 외국 공연도 많았고 방송도 매일 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엄해서 다른 가수들과는 이야기도 잘 못했었어요. 당시만 해도 연예계에 ‘신비주의’ 문화라는 게 있긴 했어요. 가수들을 말을 아껴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건방지다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죠.”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정작 친구를 만날 시간은 없었다. 모두가 국민 가수 혜은이를 알았는데 ‘인간 김승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윤희정이 “혜은이는 건방지지 않아. 말 주변이 없을 뿐이지”라며 상황 정리를 한다. 특별한 언니만이 해줄 수 있는 변호다.


노래는 20분, 수다는 4시간
윤희정은 혜은이, 권성희와 같은 소속사도 아니었다. 길옥윤의 제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윤희정은 오래 이 관계의 구심점 노릇을 해왔다. 관계의 삼각형을 만들었다. 혜은이와 권성희는 스케줄이 끝나면 윤희정의 집과 작업실 등에 자연스럽게 모였다. 권성희는 “참새 방앗간 같았다”고 했다. 각자의 삶이 바빠진 뒤에도 먼저 ‘한번 보자’고 손 내미는 사람이 윤희정이었다.
대중가요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윤희정은 유행을 좇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않던 재즈를 공부했다. 당시만 해도 재즈는 돈이 되는 장르도, 대중의 사랑을 폭넓게 받는 음악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30년 넘게 재즈를 지키며 공연을 만들고, 후배를 키우고, 일반인들과 무대에 서며 한국 재즈의 저변을 넓혔다. 권성희는 그런 윤희정을 존경했다.
“언니는 개척하는 사람이잖아. 없는 걸 만들어낸다는 게 너무 부러웠어.”
혜은이도 윤희정이 재즈 공부를 하던 시절 딸(쏘머즈 김수연)을 돌봐주기까지 했다. 마음을 내줬다. 윤희정은 이 친구들에게 다른 음악 세계를 열어줬다. 15년 전, 공백기를 보내던 혜은이에게는 “재주를 썩히지 말고 재즈를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코로나19로 무대가 멈췄을 때는 권성희에게도 “우리 같이 재즈를 해보자”고 권했다. 더 자주 볼 일을 만들었다. 셋이 같이 무대에 올라 선보일 ‘레파토리’도 많이 만들어놨다. 그런데 이상했다. 음악 진행이 안 됐다.
“레파토리는 20개 이상 됐었어. 그런데 모이면 노래 연습은 20~30분 하고 수다는 4시간을 떠니.”
권성희의 팩트 폭행에 모두 넋을 잃고 웃는다.


험담 안 하고 지킨 우리 우정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에서 누구 흉을 봤으면 오래 못 만났을 거야.”
혜은이의 한 마디에 순간 웃음이 잦아 들었다. 반세기 우정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 같다. 연예계는 특히 말이 많은 곳이다. 오늘 던진 험담이 내일, 다른 사람을 입을 거쳐 돌아와 여기 가장 가까운 관계를 흔들 수도 있다. 어떻게 잘못 살이 붙어 날아들지 모를 일이다.
셋 사이는 ‘그럴 수도 있지, 사람 마음이 다 그렇지’로 이해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미덕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친구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았고, 친구의 실패를 화제로 삼지도 않았다.


친구들에게 혜은이는 한 번의 성공으로 지금까지 온 가수가 아니다. 소속사 관계자들의 갈등으로 1980년대 초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의상실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2년에 ‘독백’이라는 노래를 받았다.
“처음에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가성으로만 부르는 노래라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히트는 전혀 예상 못했죠. 회사를 위해 LP 한 장은 내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노래 만든 분들에게 미안함을 가졌다. 그러다 ‘독백’이 히트를 쳤다. 이어 ‘작은 숙녀’, ‘질투’까지 사랑받으며 혜은이는 다시 가요계 정상에 섰다.
“의상실을 할 때는 밤만 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쇼윈도 너머로 저는 의상실 한 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아서만 있었죠. 만약 ‘독백’을 받지 못했다면 그 뒤에 무대에서 다시는 못 섰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 산 인생은 아니라고 본다. 남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차라리 내 탓을 하는 게 편하다.
“가수로서는 성공했죠. 그런데 다른 건 잘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았지만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고, 주부 생활도 못 했잖아요. 그냥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았죠.”
이런 자신을 옆에서 지켜준 두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권성희는 “그런 혜은이가 나는 오히려 부럽다”고 했다.
“ ‘혜은이’를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자기가 남겨 놓은 업적이 셀 수 없잖아요. 지금도 세대를 넘어 불리는 수많은 히트곡이 있고, 최근 다시 만들어 낸 소극장 공연이 있고, 다시 형성된 팬클럽도 있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혜은이는 그걸 해냈잖아요. 언니도 재즈의 대가로 자기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게 부럽죠.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으로 아등바등 살아와서….”
그러자 윤희정은 “성희야.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고 어려운 거야. 너가 그렇게 살아 왔어”라며 권성희를 토탁인다. 그러면서 “권성희가 늘 보내주는 문자에는 ‘윤희정은 보물’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내가 인생 살아가는데 큰 힘”이라고 치켜 세웠다.
권성희는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봉사 활동을 오래 해왔다.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공연을 열었다. 이달 30일에도 한다. 쉬운 일 아니다. 그러면서 무대에 게속 섰고, 탤런트 남편과 결혼해 가정을 잘 꾸렸고, 아들도 잘 키웠다. 윤희정의 눈에는 그것이 더 대단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친구들. 누구도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의 삶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칭찬했다. 이런 관계는 흔치 않아 보인다.

혜은이는 7월 4일부터 8월 2일까지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을 한다. 5번째 공연이다. 250석으로 시작한 공연 규모를 320석으로 늘렸다. 월요일은 쉬고, 토요일은 두 차례 한다. 한 달 내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희망을 내비친다.
“제 브랜드를 계속 만들 거고요. 노래를 못 할 때까지, 소극장 공연도 계속하렵니다.”
힘들 것 같은데 아니란다. 권성희는 “팬들에게 에너지를 자주 받더니 혜은이가 더 밝아졌다”고 했다. 윤희정도 “무대에 선 본 사람만 아는 기운”이라고 했다. 혜은이는 “1년에 한 번씩은 대극장 공연과 디너쇼도 할 것”이라고 들떠 말했다.
윤희정은 28일 자신의 재즈 프랜즈 파티를 연다. 일반인들에게 재즈를 가르쳐서 같이 무대에서는 재즈 공연이다. 17번째다. 유명 건축가 홍태선 씨도 특별 손님으로 출연한다.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는 윤희정이 친구들에게 즐거운 경고를 한다.
“나 죽기 전에 너희들 죽지 마라. 누가 100억 원을 준다 해도 건강과는 안 바꿀 거다. 너희들 건강 잘 챙겨.”
30년 만 더 보자


혜은이가 언니의 명령을 이어 받는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30년 만 더 이렇게 만나자. 우리.”
권성희도 두 말 하면 잔소리라는 심정이다.
“혜은이도, 언니도 자랑스럽고. 나한테 자랑스러운 친구가 둘 있어.”
혜은이는 국민 가수가 됐고, 윤희정은 한국 재즈를 지켰으며, 권성희는 ‘나성에 가면’이라는 시대의 노래를 남겼고, 평범한 삶을 지켰다. 세 사람의 인생은 서로 달랐지만 우정만큼은 한 번도 다른 방향을 향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혜은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뇌리를 스쳤다.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냥 그 사람 자체만으로. 저에겐 둘 있습니다.”
듣고 보니 세 사람은 서로의 무명 시절도, 가장 화려했던 순간도, 가장 힘들었던 시간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긴 설명도 필요 없고, 힘든 일이 생겨도 애써 위로의 말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권성희는 그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린 가식적일 필요가 없어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니까요. 동등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서로를 더 성장하게 만들죠.”
생각해 보니 50년 우정은 거창한 약속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나면 만나 밥을 먹고, 옛날 얘기를 하고, 실컷 웃는 일이 반복됐을 뿐이다. 그러니까 또 만난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설명보다 웃음이 먼저인 사람들.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 셋은 그렇게 오늘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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