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사칭 신고해도 소용 없어
피싱범죄 장기수사 허점 노려
“어차피 못잡아” 적반하장
핵심 해외서 범행…추적 어려워
수사기관 협박하는 사례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A법무법인은 최근 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조롱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 조직이 A법무법인과 소속 변호사를 사칭해 사기 행각을 벌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들은 사기 피해자로 위장해 법인 상담채팅방에 잠입하거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업무를 방해하는 식으로 보복에 나섰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경찰에 신고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수사 진행과 피의자 특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지금도 저희를 사칭한 피싱범들에게 2차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법무법인을 사칭하는 신종 범죄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회복을 위한 법률상담을 목적으로 사기 피해자들에게 돈을 추가 갈취한 뒤 잠적하는 신종 피싱 범죄가 최근 급증하면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법무법인들은 수사기관을 통해 사칭 대응에 나섰지만 수사망을 피해가는 피싱조직으로부터 욕설과 협박 등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피싱 범죄가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사법 처벌의 레이더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맹점을 이용해 오히려 피싱범이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도 종종 포착된다.
A법무법인도 피싱범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법무법인이 수사기관을 통해 사칭 대응에 나섰지만 수사망을 피해가는 피싱조직으로부터 욕설과 협박 등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측이 ‘허위사실 유포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대화 내용을 캡처해 형사 고소하겠다’는 등 경고를 해도 피싱조직은 오히려 “신고해도 어차피 못 잡는다” “우리는 한 달에 40억원씩 버는데 너네 사칭해서 돈 좀 벌어보자” “사무실로 찾아가 불을 지르겠다” 등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피싱조직 검거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피의자 특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데다 중국·동남아 등 해외에서 대포폰을 활용해 범죄에 나선다. 또 대다수 피싱조직은 주로 중국·베트남·캄보디아 등에 사무실을 차리고 한국인이나 조선족을 고용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 검거되는 인물들은 주로 하위 조직원으로, 심부름 역할을 하는 수준이어서 주요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경찰청과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조직형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는 최소 6개월 이상 장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 수배 과정에서 해외 경찰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보이스피싱 조직이 되레 수사기관 등을 협박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해외에 근거지와 주요 장비를 두고 한국에서 전화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은 자신들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대담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