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극적 합의로 18년 만의 연금 개혁이 성사됐지만, 개혁안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다. 연금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추게 됐을 뿐, 결국 부담은 현재 젊은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 합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및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 확대 등 모수 개혁을 담은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했다.
합의안은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높이기로 했다. 내년부터 해마다 0.5%포인트씩 8년간 오른다. '받는 돈'을 정하는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은 내년부터 43%로 올린다. 소득대체율은 올해 기준 41.5%다. '더 내고 더 받는' 것이 핵심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월급 309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내년 국민연금에 신규 가입해 40년간 보험료를 낸다고 가정하면 총 1억8762만원을 납입하게 된다. 현행 대비 5413만원 많다. 은퇴 후 받는 총연금 수급액(25년 가정)은 3억1489만원으로, 개혁 전보다 2170만원 늘어난다. 내는 돈은 약 5000만원, 받는 돈은 약 2000만원 늘어나는 셈이다.
◆ 9년 늦춰진 고갈…"미래 세대 더 심각한 부담"
이번 개혁으로 연금 적자 전환 시점은 2041년에서 2048년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각각 7년, 9년 늦춰지게 됐다. 앞으로 수십년간 보험료를 내야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춘 게 무슨 개혁이냐'는 취지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28세 직장인 박모씨는 "앞으로 30~40년 보험료만 잔뜩 내고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탈퇴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30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번 개혁안은 결국 수년 내 기금 고갈이 자명하다. 그 부담은 결국 젊은 세대에게 다시 전가될 것"이라며 "지금 60대 정치인들은 이 계수 조정 방식으로 10년 정도 시간을 벌고 그사이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면 그만이다. 이런 식의 개혁이 계속된다면 미래 세대는 더욱 심각한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고 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건 개혁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정치 기득권을 장악한 기성세대의 협잡이다. 미래 세대를 약탈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냐"며 "왜 나만 더 내고 너만 더 가져가나. 시한부 국민연금에 산소호흡기나 달아주는 합의에 동의할 수 없다. 오늘 상정할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공개 반대한다. 여야는 당장 구조개혁에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국민연금은 청년들 등골 빼먹는 폰지 사기다. 대한민국 최대 기득권인 86세대 은퇴가 다가오니 이제서야 보험료율을 찔끔 올리면서 소득대체율도 같이 올려 미래세대 부담은 여전히 무겁게 만들었다"며 "청년들이 연금 받을 나이에는 어차피 한 푼도 남아있지 않을 텐데, 이따위 개혁보다는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 구조 개혁 쟁점 '자동조정장치'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개선을 위해선 인구·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각계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여당은 이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연금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야는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해 구조 개혁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연금연구회 소속인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청년층과 미래세대를 위하는 척하고 있지만, 50대 이상 연령층들이 '자신들만 연금 더 받아먹고 튀겠다'는 눈속임 수단일 뿐"이라며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주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수개편안과 함께 자동조정장치를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여야가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시민단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성명을 통해 "국민의힘은 재정 안정화를 구실로 국민연금을 자동 삭감하며 연금 민영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연금개혁에 졸속합의했다는 오명을 씻으려면 연금특위 논의에서 정부·여당이 국민의 소중한 노후소득인 국민연금을 자동으로 삭감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강력하게 저지하라"고 장치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