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을 설 연휴 첫날에 관람하고, 5주 뒤 극장을 찾아 재관람했다. 최근 넘쳐나는 각종 역사 해설을 학습한 뒤라 그런지 두 번째 관람에서는 작품이 더 자세하게 보이고 즐길 수 있었다. 여전히 좌석의 대부분이 관객으로 채워져 있었다. 상영 내내 웃거나 눈물을 글썽거리는 관객의 모습에서 영화가 뜨거운 파도를 타는 것 같았다. ‘왕사남’은 7일 기준 관객 1600만 명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그 파도가 역사 투어리즘, 역사 탐구 및 관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배경이자 실제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 영월군 청령포나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 관광객이 몰려 영월행 기차표는 자주 매진된다. 또한 엄흥도 관련 고문서나 실록 등의 자료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전시됐고, 정순왕후의 거처 정업원이나 무덤인 사릉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단종 관련 웹툰과 웹소설의 조회수는 ‘왕사남’ 상영 이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다운로드 횟수도 늘었다고 한다.
‘국보’는 어떠한가. 이 영화는 일본의 중세 에도시대부터 이어온 전통예능 ‘가부키(歌舞伎)’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세습과 실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가부키 배우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양식미를 중시하는 가부키에서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수련을 통해 동작을 익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습득해 선보이며 관객을 압도했다. 특히 두 남성 배우가 여성을 연기하는 ‘온나가타(女形)’로 복잡한 여성의 감정을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극찬을 받았다. 3시간의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어 개봉하자마자 화제가 됐다.일본에서 지난해 6월에 개봉한 ‘국보’는 해를 넘겨 현재까지 상영 중이다. 10개월이 넘는 장기 상영은 이례적인 일로, 일본 흥행통신사에 따르면 올해 2월 15일 기준 흥행 수익이 200억 엔(약 1880억 원)을 돌파해 22년 만에 일본의 실사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한국에선 지난해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같은 해 11월에 개봉해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이맥스(IMAX)’ 상영에 이어 지금은 ‘돌비 시네마’로 상영 중이다. 나는 지난해 7월 일본 방문 당시 두 번이나 관람할 정도로 이 작품의 매력에 빠졌다. 원작 소설도 완독했다. 한국 귀국 후에는 시나리오를 구해 원작과 영화, 시나리오를 비교하며 분석하고 있다. 한국 개봉 후 간간이 들어가는 한국어 자막 해설을 즐기면서 두 번을 더 봤다. 이제 실제 가부키를 전용 극장인 도쿄의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보고 싶어 짬짬이 사이트를 검색하곤 한다.
가부키좌를 운영하는 쇼치쿠(松竹)의 지배인 센다 마나부(千田學) 씨는 “영화 ‘국보’의 성공을 계기로 가부키 붐이 확산돼 젊은 관객이 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7∼12월 신규 관객 수는 약 2만5000명으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또한 그는 “이 붐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가부키에 대한 온라인 강좌와 공연도 늘고 있고,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시네마 가부키’에도 인기 있는 레퍼토리를 추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젊은 관객과 외국인 유치에도 힘을 기울여 공연과 함께 즐기는 도시락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추가하고, 외국인들이 쉽게 가부키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개발해 외국어 자막 제공과 해외 결제가 가능한 예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이처럼 ‘국보’의 흥행은 내리막길을 걷던 전통공연계에도 큰 호재가 되고 있다. 단순히 가부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能), 교겐(狂言) 등 전통공연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에서는 4월부터 6월 초까지 상설로 노 공연이 펼쳐진다. 이 외에도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전통공연 관련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 작품이 전통에 다시 눈을 뜨게 하고 극장과 공연장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두 영화가 일으킨 문화적 파장이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 전반에 지속적인 힘이 되어 올바른 문화 회복과 발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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