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식 담은 작품 ‘Mirror …’
수원 문화공간 111CM서 발표
거울 같으면서 정보 담은 CD
구식 아이패드·노트북 활용
우리가 걸어온길 되돌아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기억해보자. 명령어를 입력하는 순간, 응답은 즉각적으로 도착한다. 이때 질문과 답변 사이 간극은 사실상 무(無)에 수렴한다. 동시성에 가까운 상호작용 때문이다.
설치미술 작가 오원은 이를 두고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사에서 인간의 모든 질문엔 의도, 즉 인텐션(intension)에 내재해 왔다. 그러나 AI 이후, 답변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제로’가 되면서, 질문자는 자신의 인텐션이 뭐였는지조차 잊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설치미술 작품 ‘Mirror Mirror On The wall : AI Between Attention And Intention’를 최근 수원시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 발표한 오 작가를 현장에서 만났다.
“즉각적인 답을 얻지 못했던 과거엔, 사람들은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단서를 제거해야 했고, 그래서 정확한 인텐션이 필요했어요. 이젠 그렇지 않잖아요. 경로의 총합이 너무 짧아졌기에 인텐션을 각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이번 작품에선 인텐션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모습을 사유하고 싶었습니다.”
오 작가의 이번 작품엔 정면의 거울 하나가 먼저 눈에 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오래 전, 백설공주의 계모(여왕)는 거울에게 말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오 작가에 따르면, 계모의 질문 속엔 “여왕님이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란 답변을 얻으려는 의도, 인텐션이 숨겨져 있다. 계모는 ‘정답’을 얻지 못했고, 이 때문에 ‘백설공주’ 서사는 시작됐다.
그런데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현대의 인간은, 계모의 질문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게 오 작가는 비판이다. 즉각적인, 그리고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해내고야 마는 AI 때문이다. AI는 과연 인류에게 과연 희망이기만 할까.
“넓게 보면 아예 인텐션이 없는, 그저 사실 체크에 가까운 질문만이 오가는 세상이 된 건 아닐까 해요. 우리 인간은 내면에서 스스로 꿈틀거리게 만들어야 하는 인텐션을 잊어버렸고, 때로 나의 인텐션이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타인의 인텐션을 무시하기도 하고요.”
거울의 반대편 하얀 벽면엔 그가 제작한 검색창 화면이 보인다. 관람객은 생성형 AI에 프롬프트를 넣듯이 이곳에 질문을 써넣을 수 있다. 하지만 질문해도 ‘답’은 뜨지 않는다. ‘…생각중’이라는 문장만 커서와 함께 깜빡거린다.
“답이 나오길 기다려도 답이 뜨지 않는 바로 그 잠깐의 시간, 자기가 처음 생각했던 인텐션이 뭐였는지를 잊게 돼요. 바로 그 순간을 묻고 싶었어요. 어쩌면 현대 디지털 사회는 인텐션이 사라진 자리에서 타인으로부터 어텐션(attention·관심)만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닐까요? AI로 의미가 부여되는 방식, 현실이 형성되는 방식을 되묻고 싶었습니다.”
거울과 벽면의 모니터 화면 사이엔 오래된 기계와 부속품들이 실제 흙, 인조이끼, 솔방울 등에 둘러싸여 있다. 플로피디스크와 CD처럼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한때 ‘최신’이라고 추앙받았지만 한때의 추억으로 남은 오래된 노트북, 또 구식 아이패드 등이다.
오 작가는 이를 두고 “우리가 걸어온 길의 한 단면”이라고 말한다.
“CD는 거울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해요. 비추는 면에 빛이 반사된다는 점에서 거울을 닮았고, 또 무수한 선 속에 수많은 데이터가 담겼다는 점에서 나무테를 연상시키기도 하죠. 재생을 해보면 엄청난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요.”
오원 작가의 본명은 손정은. IT 인프라 솔루션 기업에 근무하는 임원이기도 한 그에게 ‘오원’은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허락해주는 ‘부캐’다. 2012년부터 사용한 예명 ‘오원’은 숫자 0과 1을 뜻하고, ‘O.One’으로 표기한다.
“숫자 0과 1 사이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무한대의 수가 있잖아요. 인간의 행위란 그 사이에 놓인 작고 힘없는 역설적인 점 하나 같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도 그런 점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