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전승훈]반값여행-출렁다리 공화국

4 days ago 15

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올해 2월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 이재명 대통령이 전남 강진군 관광정책을 극찬하고 나섰다. 공식 석상에서 벌써 세 번째였다.

“강진군의 ‘반값여행’처럼 여행비 부담은 줄이고 혜택은 지역 상권에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확대해야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부랴부랴 65억 원 예산을 들여 ‘지역사랑 휴가지원 사업(대한민국 반값여행)’을 실시했다. 전국 84개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중 16개 기초단체를 선정해 관광객 여행경비의 50%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환급해 주는 정책이다.

지난달 말. 필자는 전남 해남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함께 간 지인이 ‘반값 할인’을 신청했다. 여행지마다 인증샷 사진을 찍고 영수증을 챙기며 다녔다. 그러나 신분증을 운전면허증으로 제시할 경우 주민등록등본을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을 뒤늦게 발견해 반값 환불은 받지 못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하는데, 증빙 자료 챙기며 공무원에게 숙제검사 받기 위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세금으로 관광객 이사시키기

전국 최초로 반값여행을 설계했던 강진문화관광재단 임석 전 대표는 “20개 기초단체(올 하반기 4곳 추가)가 똑같은 시스템으로 경쟁하면 변별력 없는 복제로 출혈 경쟁과 과도한 규제가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강진의 경우 조폐공사 ‘착(Chak)’ 시스템을 이용한 부정 막기, 농산물 직거래몰과의 연동, 농촌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 ‘푸소 촌캉스’ 등 정교한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했기에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 없는 무리한 반값여행 확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정 군에 ‘반값’ 깃발이 꽂히면 바로 옆 마을은 그 군으로 손님을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나라 전체 여행 총량 파이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세금 들여 관광객을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이사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인근 지자체에서 넘어와 마트나 식당만 반값에 이용하는 얌체족을 잡는 데 행정력이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보조금은 근육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반 값에 익숙해진 여행자는 제값 앞에서는 지갑을 닫는다. 절반 값에 길들여진 숙박업소는 서비스를 높이기보다는 다음 보조금 공고를 기다린다. 시장의 자생력은 죽고 ‘보조금 의존형 수요’라는 만성질환이 남게 된다. 스위스 관광청 마르쿠스 베르거 대변인은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위스는 단 한 번도 가격으로 경쟁한 적이 없다. 더 싼 곳은 언제나 어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위스와 일본은 ‘더 많이’라는 숫자보다는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국이 똑같은 복사판

임기 내 치적을 숫자로 홍보하기 위한 관광정책은 계속 복사된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지방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시설물을 세웠다. 흔들리는 출렁다리, 절벽에 매단 잔도, 허공에 뜬 유리 전망대…. 형제처럼 닮은 구조물들이 지금 전국의 산과 계곡을 수놓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로 전국 출렁다리는 현재 254개다. 전국 226개 시군구마다 하나 이상씩 출렁다리가 있는 셈이다. 하나에 평균 40억 원, 총 1조 원 넘는 세금이 출렁다리라는 단일 아이템에 쏟아부어졌다.

‘베끼기 관광’은 잔혹한 결말로 이어진다. 옆 마을이 더 긴 다리를 놓는 순간 우리 마을 관광객은 그리로 빨려 들어간다. 충남 청양 손님이 예산으로, 예산 손님이 논산으로 이사할 뿐이고, 세금으로 관광객을 이 다리에서 저 다리로 실어 나른 셈이다. 전국이 똑같아지는 순간, 여행할 이유는 사라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는 “오늘 숙박료가 반값이라 걷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값 할인은 마중물이다. 이제는 우물을 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값여행은 예산이 마르는 날 함께 증발하는 신기루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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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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