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재영]그대가 ‘삼전닉스’에 있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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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김재영 논설위원
2024년 6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산유국의 꿈을 설파했을 때, ‘대왕고래’의 최대 기대가치는 당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2200조 원이었다. 대박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이후 동해 앞바다에 거대한 고래가, 그것도 두 마리나 떠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11일 3000조 원을 찍었다. 내년엔 두 회사의 영업이익이 100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비현실적인 숫자에 취한 탓일까. 일단 내 몫부터 챙겨 달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노조가 먼저 움직였다.

“주주 패싱하고 우리부터 챙겨 달라”

파업이란 벼랑 끝 전술을 꺼내 든 삼성전자 노조의 핵심 요구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연봉 50%라는 지급 상한선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SK하이닉스였다. 2021년 산식이 복잡한 ‘경제적 부가가치(EVA)’ 대신 ‘영업이익의 10%’를 약속하더니 지난해엔 상한선마저 풀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낸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이자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경영진의 ‘통 큰 결단’이었겠지만,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회사의 이익을 근로자와 나누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몫으로 영구히 못 박으라는 건 논리에 맞지 않다. 손익계산서의 흐름을 보자. 매출에서 임금 등 인건비를 가장 먼저 떼어 근로자들에게 확정적 대가를 지불한다. 작년에 삼성전자 직원들은 평균 1억5000만 원, SK하이닉스는 1억8000만 원을 받았다. 영업이익이 확정되면 채권자는 이자를, 정부는 법인세를 받아간다.

순이익이 정해진 뒤에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 몫을 따진다. 배당으로 모두 가져갈 순 없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할 유보금과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부터 먼저 떼어놔야 한다. 모든 정산이 끝난 후에야 성과급 규모를 논의할 수 있고, 모든 과정은 철저히 경영적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이익의 특정 비율을 먼저 떼어 달라는 노조의 주장은 채권자, 정부, 주주를 패싱하고 기업의 장기적 생존마저 외면하겠다는 억지에 가깝다. 대법원은 성과급이 근로의 대가가 아닌 ‘경영 성과의 사후적 분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국식 성과급의 더 큰 맹점은 개인의 기여도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 데 있다. 금·은·동상 대신 ‘참가상’을 주는 식이다. 이익 규모가 작아 성과급이 소소한 보너스 정도였을 땐 문제가 없었지만, 참가상으로 6억, 7억 원을 달라며 파업까지 불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근로자들의 노력만으로 이룬 성과인가” “우리도 간접적으로 기여했으니 ‘응원상’을 달라”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투자, 고용, 납세로 책임을 다하고 있는 기업들에 또 다른 식으로 기여를 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노조의 과도한 탐욕이 빌미를 제공했다.

‘참가상’ 6억, 7억은 과연 공정한가 빅테크들과 해외 반도체 경쟁사들은 어리둥절하다. 노조도 없거니와, 경영 판단의 영역인 성과급을 이유로 파업을 하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엔비디아나 구글, 애플 등은 현금 대신 장기 실적 및 주가와 연동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핵심 보상 수단으로 활용한다. 대만 TSMC는 현금으로 주지만 이사회가 회사 재무 상황과 미래 투자 소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성과급 크기와 배분 비율을 정한다.

이젠 한국 기업들도 왜곡된 보상 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꿔야 한다. 온정주의나 나눠 먹기식 관행을 끊어내고, 개인과 기업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소모적 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 인공지능(AI) 해류를 따라 나타난 고래가 다시 심해로 사라질 수도 있다. 고래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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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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