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주목할 소규모 창작극 3편…공연계 '일상 서사' 뜬다
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를 구할 영웅도 물리쳐야 할 악당도 없다. 대신 특수청소업체에서 고인의 마지막 자리를 정리하는 남자가 있고, 서울 새벽 심야 카페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는 두 청춘이 있고, 폭우에 잠긴 도서관에서 젖은 책을 한 권씩 꺼내 말리는 사서들이 있다. 6월 서울 소극장가에 거대한 서사 대신 일상의 관계와 만남으로 위로를 건네는 창작 공연 세 편이 나란히 개막한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을 주는 무대들이다.
◆ '다정한 배웅' 세대 넘나드는 캐스팅
가장 먼저 막을 올리는 연극 '다정한 배웅'은 오는 6월 5일부터 7월 26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 공연제작사 문컴퍼니가 선보이는 창작 초연으로, 특수청소업체 '꽃향기'를 무대로 삼는다. 죽음을 소재로 하되, 죽음 그 자체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주인공 반춘배는 특수청소 경력 20년의 베테랑이다. 평생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정리해온 인물로, 누구의 사정에도 마음 쓰지 않으며 혼자 살다 죽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친구 한달수의 현장에 들어가면서 덮어두었던 과거와 상처가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다. 제작사 측은 "눈물에 기대기보다 담담한 태도로 '끝까지 책임지는 다정'의 의미를 풀어내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반춘배 역에 원로 배우 장용과 서인석이, 특수청소업체 사장 박민재 역에 정겨운과 금동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금동현은 7인조 보이그룹 EPEX 출신으로 이번 작품이 첫 연극 무대다. 반춘배의 전처 윤선영 역에는 서권순과 방은희가 이름을 올렸다. 원로부터 아이돌 출신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VIP석 8만8000원, R석 7만7000원, S석 4만4000원이며 프리뷰 기간 50% 할인이 적용된다.
◆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던터치'
뮤지컬 '던터치(Dawn Touch)'는 6월 19일부터 7월 5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정동극장 세실의 창작 지원 프로젝트 '창작ing' 선정작으로, 올해 처음 무대에 오르는 2인극이다. 제목은 '돈 터치(Don't Touch)'와 '새벽의 접촉(Dawn Touch)'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다.
한때 주목받던 아역 배우였지만 지금은 놀이동산 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양지안과, 접촉만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희귀질환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를 앓고 있는 문정원이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감독을 꿈꾸던 두 사람은 서울의 어느 새벽 심야 카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잊고 지냈던 꿈과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지안 역에는 걸그룹 카라 멤버 출신 박규리와 뮤지컬 배우 한재아가, 정원 역에는 배우 류제윤이 캐스팅됐다. 실제 아역 배우 출신인 박규리가 잊힌 스타의 불안과 상실을 무대에서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232석 소극장에서 관객들은 두 배우의 밀도 높은 호흡을 관람할 수 있다. 2023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동반사업을 통해 개발됐으며, 2024 K-뮤지컬국제마켓 공식 선정작으로 소개되고 일본 도쿄 시어터크리에 쇼케이스에도 초청되는 등 국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해외에서 먼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전석 3만원이며 6월 10일까지 조기예매 할인이 제공된다.
◆ '사사로운 사서' 첫 서울 무대
연극 '사사로운 사서'는 6월 20일부터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공동 기획한 작품으로, ACC 아시아 콘텐츠 공연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돼 지난해 초연에서 객석 점유율 94%, 관객 만족도 92점을 기록했다. 이번에 서울 무대에 처음 오른다.
과거 학교 건물이었던 대도시의 한 공공도서관이 배경이다. 인문사회자연과학실 실장 재선과 1년 차 사서 시연, 수서 담당 정윤, 정리 담당 대영, 사회복무요원 창현까지 사서 다섯 명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록적인 폭우가 도시를 덮친 어느 여름날, 보존서고가 침수되면서 사서들은 폐기 대신 복원을 선택한다. 젖은 책을 한 권씩 꺼내 말리는 과정에서 이들은 직업윤리와 과거의 부채, 각자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다.
작·연출을 맡은 강현주는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직업인들을 꾸준히 그려왔다. 재선 역에 이지현, 그 외 손지윤·박용우·장호인·황상경이 출연한다. 강현주 연출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는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복원하는 사서들의 이야기가 관객의 일상에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공연은 6월 28일까지 단 9일간이다. R석 6만원, S석 4만5000원, A석 3만원이다.
세 작품은 공통점이 뚜렷하다. 모두 소규모 창작극이고, 거대한 스펙터클 없이 일상의 관계 속에서 위로의 서사를 길어 올린다. 티켓 가격도 저렴하다. 전석 3만원부터 시작하는 작품이 있고, 프리뷰·학생·마티네 할인까지 더하면 2만원대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대형 뮤지컬 VIP석이 15만원 이상인 것과 대비된다.
◆ 출판계 '위로 트렌드' 공연계 확장
출판계에서 먼저 유행한 '다정함' '위로' '안부' 같은 키워드가 공연계로 건너온 것도 눈길을 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피로감 속에서 관객이 '작고 가까운 위로'를 찾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공연계 분석이다.
국립정동극장 창작ing, ACC 공연 개발 프로그램 등 공적 창작 지원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 흥행 논리 바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실제 무대까지 올라오는 토양이 넓어졌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공연계 관계자는 "출판에서 시작된 '위로 서사'가 공연으로 확장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최근 사회적 피로감이 커지면서 '나를 위한 작은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더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소극장 공연은 같은 공간에서 숨을 나누는 경험 자체가 위로인데, 이건 스크린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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