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취약한 AI, 고전 번역에 한계… 우리말 의역엔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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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vs 챗GPT-제미나이 비교
남구만 ‘약천집’ 중 210자 분량… 챗GPT, 5군데서 명백한 오역
제미나이도 배경 몰라 잘못 번역
“가독성 측면에선 인간보다 낫다”… 고전 학습량 늘면 성능 개선될듯

최근 학계에선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우리 한문 고전의 번역에도 시험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 한문학계 원로는 “젊은 연구자들이 번역을 AI에 의존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쓰면 공부가 늘지 않을까 봐 우려된다는 것이다. AI의 한문 번역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국고전번역원의 권경순 대외협력처장과 최두헌 선임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챗GPT 4o’(유료), ‘제미나이 2.0 프로’(유료)가 번역한 결과물을 인간 번역자의 것과 비교해 봤다.

● 한국어는 청산유수

인간 번역자는 성종실록 성종 19년 5월 20일 기사를 “이미 체임(遞任)된 수령은 어쩔 수 없지만, 시임(時任) 수령도 공초를 받지 않고 해당 아전이 공초한 말만 가지고 파직하기도 하고 자급(資級)을 강등하기도 하였으니”라고 옮겼다. 이에 비해 챗GPT는 “이미 교체된 수령(守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 재직 중인 수령조차 직접 소환하여 조사하지 않고, 단지 해당 아전(吏)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삼아 어떤 이는 파직되고, 어떤 이는 강등되는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옮겼다. ‘시임’ ‘공초’와 같은 말을 오늘날 널리 쓰이는 표현으로 옮긴 것이다.

최 연구원은 “가독성과 한국어의 자연스러움 측면에 한정하자면 챗GPT가 인간 번역자보다 낫다는 느낌도 든다”며 “나중엔 번역의 품질 향상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는 의역이나 생략된 단어를 살려 옮기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부 번역물은 예스러운 말투 탓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 군데군데 오역… 신뢰 어려워

AI 고전 번역의 문제는 오역과 들쭉날쭉한 수준이다. 챗GPT와 제미나이는 남구만(1629∼1711)의 ‘약천집(藥泉集)’에 실린 ‘좌윤 최공의 묘갈명(左尹崔公墓碣銘)’을 번역하면서 “무인년에 (최)공은”이라는 뜻의 “戊寅公”을 ‘무인공’이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잘못 옮겼다. 권 처장은 “AI가 수식어 등을 인명으로 인식하는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했다. 같은 글에서 “중을 홍승주의 군문(軍門)으로 보낸 것입니다(送僧洪軍門是已)”라는 구절은 “승려 홍을 청나라 군영으로 보낸 일입니다”(챗GPT)라고 오역했다. ‘홍군문’은 명나라 측 인물인 홍승주의 군영을 가리키는데도 역사를 모르는 AI가 洪(홍)을 승려 이름으로 번역하는 등 내용을 엉뚱하게 왜곡한 것이다. 챗GPT에선 이를 포함해 한자 210자 분량을 번역했는데 명백한 오역이 5군데 발견됐다. 제미나이 역시 성종실록 기사에서 “일전에 군적 경차관(軍籍敬差官)으로 보낸 관원들”을 “전직 군인 신분으로 경차관에 임명되었던 자들”로 오역했다.

연구원들은 “AI를 초벌 번역용으로 쓰려고 해도 아직은 처음부터 사람이 번역하는 것에 비해 별로 시간이 줄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 ‘만능 아닌’ AI, 현명히 활용해야

이 같은 한계는 이들 AI가 학습한 고전 및 우리말 번역 자료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권 처장은 “지금은 인물이나 전례, 고사 등의 정보 검색도 썩 만족스럽진 않은데, 관련 정보가 많은 언어로 질문할 경우엔 더 유용한 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대세인 기술이라면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게 준비하자’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 최 연구원은 “향후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사람은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를 살피고, 주석을 풍부히 하는 등 심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역시 인간 연구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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