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사투리 연기로 펼친 말이 안 통하는 사회

1 month ago 5

연극 ‘코믹’ 20일까지 무대 올라
배우 8명이 퇴장없이 30개 역할

연극 ‘코믹’의 ‘이혼법정’ 에피소드에서 이웃 주민이 부부 싸움을 춤추는 모습으로 착각하는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연극 ‘코믹’의 ‘이혼법정’ 에피소드에서 이웃 주민이 부부 싸움을 춤추는 모습으로 착각하는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한 남자가 모자를 사러 상점에 들어오자 모자 장수는 손님을 반긴다. 그런데 이 손님, 머리 사이즈를 묻자 “내 사이즈는 55인데 모자는 60을 달라”고 한다. 모자 장수는 “사이즈에 맞는 모자를 사야지 왜 큰 걸 사느냐”고 되물으며 ‘큰 머리 사이즈’를 감추고 싶은 손님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다. 모자 장수는 눈치 없이 캐묻고, 손님은 자존심을 세우며 두 사람의 사소한 말다툼이 점점 심각해진다. 그런데 이 남자, 검은 롱코트 차림에 올백 머리를 하고 이북 말투를 쓰고 있다. 이 말다툼은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어느 ‘회담’을 연상케 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서울시극단의 2025년 첫 연극 ‘코믹’의 한 에피소드(모자 사러 왔습네다)다. 연극은 이 밖에도 잃어버린 안경을 찾으려다 계속해서 말꼬리만 잡는 노부부(내 안경 어데 갔노), 빈 새장을 가져와 놓고 새를 기재한 영수증이 증거라고 우기는 새 장수(새 장수), 회사로 온 문의 전화를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른 부서로 돌리기만 하는 직원들(떠넘기기) 등 10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10편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생기는 우여곡절이다.

이 연극은 독일 극작가 카를 발렌틴이 1930년대 쓴 ‘변두리 극장’의 여러 단편을 재구성했다. 대사 언어를 최소화하고 배우의 표정과 몸짓 위주로 이야기를 전하는 신체극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 임도완 연출이 각색과 음악까지 맡았다. 말꼬투리를 잡으며 리드미컬하게 주고받는 말다툼, 배우들이 몸을 던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두드러진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물론이고 이북과 연변 말까지 다양한 사투리가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 공연 시간 100분 동안 배우 8명이 퇴장 없이 30개 역할을 소개한다. 에피소드 10개가 속도감 있게 전개돼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다만 작품 제목과 달리, 모든 에피소드가 관객의 웃음이 빵빵 터지는 코믹극은 아니다. 오히려 ‘말이 서로를 속이는 상황의 부조리함’에 방점을 찍는다.

임 연출은 프로그램 북에서 “일상에서 소통하는 언어를 속이고 파괴하는 행위, 소통의 형식을 뒤집는 행위, 행위와 행동의 불일치, 생각과 언어의 불일치를 드러내려고 한다”며 “이를 통해 우리의 모순된 일상과 사회의 코믹한 모습을 확대해 보이려 노력했다”고 했다. 편안한 웃음을 기대하기보단 역동적인 연기를 통해 펼쳐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집중해서 볼 만한 작품이다.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