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폐경 다가오는 초기 80∼90% 경험
지나고 5년 후 비뇨생식기 병 증가… 여성호르몬 줄면서 질환 위험 커져
약물 치료, 유방암 위험 높이지 않아… 용량과 나이 엄격히 제한하면 안전
폐경 이후 가장 경계할 것은 비만, 산책으론 부족해 근력 운동 꼭 해야
생리통은 증세가 심할 때만 약을 먹으면 된다. 반면 갱년기 장애일 때는 매일 복용해야 한다. 한 달 후, 딸은 병원에 안 가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 엄마도 밤잠을 이룰 수 있어 다음 날 생활이 편해졌다. 박 교수는 엄마에게 3개월분 약을 다시 처방했다.
3개월 후 엄마는 갱년기 장애를 극복했다. 치료 4개월 만에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달라진 것. 엄마는 박 교수에게 “학업 문제로 딸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생긴 증세인 줄 알았는데 갱년기 장애였다니 나중에 딸에게 미안해지더라”고 말했다.
사춘기가 무섭다지만, 여성 갱년기도 무섭다. 갱년기 장애는 사람마다 증세나 빈도, 강도가 모두 다르다. 참다 보면 저절로 좋아지는 걸까. 약을 먹으면 정말로 좋아질까.● 시기별로 증세 달라
초기엔 안면홍조가 가장 흔하다. 얼굴, 목, 머리, 가슴 등에서 불쾌한 열이 느껴진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식은땀도 난다. 열은 전신으로 퍼질 수도 있다. 박 교수는 “갱년기 장애를 겪는 여성 80∼90%가 이런 증세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보통 폐경 후 2년까지 증세가 지속된다.
원래 체온이 오르면 뇌는 이를 낮추려고 혈액 공급을 명령한다. 갱년기일 때는 다르다. 체온은 그대로인데 뇌가 덥다고 느껴 잘못된 명령을 내린다. 그 결과 혈관이 확장되고 혈액이 몰리면서 화끈거리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혈관 운동 증세라 한다. 안면홍조의 강도나 횟수는 천차만별. 매일 나타날 수도 있고, 매주 나타날 수도 있다. 1시간 이내에 여러 번 나타나기도 한다. 밤에 심하면 잠을 잘 못 자니 수면장애로 이어진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짜증이나 화도 커진다. 감정 기복도 잦아진다. 우울증 같은 정신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손가락 관절이 빳빳하거나 통증이 나타나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관절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에스트로겐이 감소해 생기는 증세다. 폐경 전후로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면 갱년기 장애도 의심해야 한다.
폐경 후 4∼5년이 지나면 대체로 안면홍조 증세는 완화된다. 이때부터는 질 건조증, 방광염, 배뇨 장애 같은 비뇨생식기계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골감소증과 골다공증(뼈엉성증) 위험도 커진다.
● ‘마법의 보호막’ 에스트로겐
갱년기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난소 노화와 그에 따는 에스트로겐 감소다. 사실 여성호르몬은 여러 질병의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게 줄어드니 폐경 이후 치명적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에스트로겐은 혈관의 탄력을 지켜준다. 몸에 나쁜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좋은 HDL 콜레스테롤은 높인다. 폐경 이후에는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드니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동맥 경화와 심혈관 질환 위험이 급격하게 커진다.
요도와 질 조직이 얇아지고 건조해지는 만성 폐쇄성 비뇨생식기 증후군(GSM) 위험도 커진다. 감염에 취약해지고 만성 방광염에 시달릴 수 있으며 빈뇨와 요실금 증세도 생길 수 있다. 에스트로겐은 뇌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자칫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 교수는 “폐경 이후 여성은 제2의 삶을 맞는다. 비록 에스트로겐이란 보호막은 줄지만, 제대로 관리하면 건강한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갱년기 장애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 호르몬 제제 안전하다증세가 미약하면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야 더 심각한 병을 막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증세가 심해도 실제 치료받는 이는 5명 중 1명꼴이다. 박 교수는 “치료받으러 왔다가도 약을 거부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치료율이 낮은 편인데, 호르몬 제제가 암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 때문이다.
2002년 미국국립보건원(NIH)은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호르몬 요법 임상 시험을 전격 중단했다. 호르몬제를 투입한 그룹에서 유방암, 뇌졸중, 심장질환 발생률이 모두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호르몬 제제가 암 위험을 높인다는 인식이 이때 생겨났다.
이후 분석에서 약의 용량이 과했고 임상 시험 참가자 평균 연령이 63세였다는 점이 지적됐다. 60세가 넘어서면 유방암 위험은 커진다. 이런 점을 반영해 새로운 표준 치료 원칙이 만들어졌다.
첫째, 호르몬 요법은 폐경이 시작되는 50대 초반, 늦어도 60세 이전 환자만 대상으로 한다. 둘째, 용량을 크게 낮추고 사용 기간도 5년 이내로 제한한다. 셋째, 노화 방지 등 다른 목적으로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이 원칙을 지키면 유방암 위험도는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대장암 위험도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다만 유방암 위험도가 높다면 호르몬 요법은 여전히 쓰지 않는다. 호르몬제가 피를 끈적이게 하는 경향이 있어 혈전증이 있거나 간 기능이 약할 때도 쓰지 않는다. 박 교수는 “이럴 때는 호르몬 대신 승마(升麻) 추출물이 들어있는 약이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폐경 이후 비만은 위험
폐경 이후에는 비만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폐경 이전, 에스트로겐은 지방이 엉덩이나 허벅지에 쌓이도록 유도한다. 기초대사율도 높여 열량 소비를 돕는다. 폐경 이후에는 지방이 장기 사이에 쌓인다. 피하지방(피부밑지방)이 내장 지방으로 바뀌는 것. 여성도 남성처럼 배만 볼록한 형태의 비만이 된다. 기초대사율도 30% 이상 떨어진다. 박 교수는 “말랐던 여성이 많이 먹지도 않고 운동도 했는데도 폐경 이후 살이 급격하게 찐다면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폐경 이후 비만은 유방암 위험을 크게 높인다. 호르몬 변화 때문이다. 원래 에스트로겐은 난소에서 분비되며 보호막 역할을 한다. 폐경 이후에는 다르다. 체지방에서 남성호르몬이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되는데, 이게 유방 주위에만 머물며 유방암 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 체지방에서 비롯된 에스트로겐은 비만할수록 더 많이 분비된다. 살이 찔수록 유방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폐경 이후에는 체중 조절이 필수다. 다만 과식해서 생기는 비만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백질이 넉넉하게 식단을 짜야 한다. 운동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산책하듯이 걷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강도 이상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거나, 느리게 달려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중년 이후 여성일수록 근력 운동은 더 중요하다. 틈나는 대로 근력 운동을 해 주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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