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우리를 이어주는 실 … 독자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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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의 핵심 키워드는 '빛과 실', '연결', '심장', '전류', '촛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삶을 회고하며, 소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등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때의 감정과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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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스톡홀름서 '노벨 강연'
여덟 살 때 쓴 일기장 속 시집
난 그때의 '나'와 연결돼 있어
사슬처럼, 도미노처럼 이어진
질문과 질문으로 소설을 쓴다
느린 속도지만 계속 써나갈것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강연하는 모습. 이날 강연 제목은 '빛과 실'이었다.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강연하는 모습. 이날 강연 제목은 '빛과 실'이었다. AFP연합뉴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란 것을 실감하는 순간에 놀라고 감동합니다.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림원 2층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의 핵심 키워드는 '빛과 실(絲), 연결, 심장, 전류, 촛불'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노벨 강연(Nobel Lecture)'은 공식 시상식(10일) 전에 열리지만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지는, 노벨상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한강 작가는 이날 200여 명의 청중이 가득 찬 스웨덴 한림원 건물 2층에서 담담하면서도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문학적 삶을 가만하게 회고했다.

마츠 말름 노벨위원회 사무총장과 함께 입장한 뒤 한강 작가의 시간은 1979년 4월로 돌아갔다.

한강 작가는 작년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한 일기장들 사이에서 '시집'이라고 적힌, 어린 시절 자신이 쓴 8편의 시를 스테이플러로 직접 제본한 소책자를 회고하면서 노벨 강연의 서두를 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내가 쓴)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하는 금실이지'란 문장을 보았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후 14년이 지나 시와 단편을 발표하며 '쓰는 사람'이 됐다. 장편소설은 삶의 상당 기간과 맞바꿈되는데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며 서로 '연결'된 작품들을 쓰던 때의 감정, 의도, 정서를 하나씩 회고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 머물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한강 작가에 따르면, 그 질문들은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였다.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의 중심인물인)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바람이 분다, 가라'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희랍어 시간'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담았다"며 "이는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진 질문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노벨 강연의 압도적 하이라이트는 상대적으로 최근작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회고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심연에 품었던 질문들이 어떤 변곡점의 순간에 부딪혔던 때의 심경을 한강 작가가 고백적으로 회고했기 때문이었다.

한강 작가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서 '소년이 온다'의 '첫 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났다. '오래전에 이미 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란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아홉 살 무렵인 1980년 1월까지 광주에 살았고 4개월 뒤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그는 "900여 명의 증언을 담은 모든 책을 한 달간 매일 9시간씩 읽어 완독했다(풀빛 출판사가 1990년 출간한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자료를 읽을수록 이 소설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체념하다가 박용준 열사의 일기에서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란 글을 읽고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벼락처럼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한강 작가는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며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하는 어린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고 말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관련해서는 "소설의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며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정심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한강 작가는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며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감동한다.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한강 작가가 강연한 스웨덴 한림원에는 시인 타고르의 희곡 '폭포'를 형상화한 폭포 형상의 1000개 LED 조명이 건물 외벽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와 오후 3시면 저녁이 되는 스톡홀름의 어둠을 밝히는 중이었다. 한강 작가의 강연에 앞서 스웨덴의 저명한 첼리스트 크리샨 라르손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 5번 C단조를 연주해 깊고 넓은 한강 작가의 심연 속으로 세계 청중을 인도했다. 1717년부터 1723년 사이에 바흐가 작곡한 이 곡은 300년이 지난 작품이며, 스웨덴 한림원 건물도 1786년에 세워져 역사가 길다.

이날 노벨 강연은 32분간 이어진 한강 작가의 한국어 강연 직후 스웨덴어, 영어로 차례대로 낭독됐으며 마츠 말름 사무총장이 한강 작가에게 작은 꽃다발을 안기면서 긴 박수 속에 마무리됐다.

[스톡홀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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