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세계화 앞장서는
소프라노 임청화 백석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어릴 때부터 뭔지 모를 동질감이 있었다. 많은 위인 중 유난히 독립운동가 유관순을 남다르게 여겼다. 17세에 고문의 고통보다 나라 잃은 고통이 더 괴롭다고 느꼈다던 ‘열사’ 유관순이 마음 속 조용한 우상이었다. 유관순을 알고나니 어머니가 보였다. 희생의 결이 같았다. 시골에서 무조건 자식만 위하고 살다가 정작 본인은 챙기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을 봤다. 말못할 고통을 일찍 이해했다. 그게 우리 여인들 가슴에 굳게 맺히는 한(恨)이라는 것도 알았다.
100일간 성악 레슨을 받고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해 가장 한국적인 슬픔과 희생의 정서를 노래하려 했다. 유관순과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 가곡의 차별화된 영혼과 정서를 알리는 음악의 길을 찾으려 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약할 때 유럽으로 홀로 유학을 떠나 한이 서린 우리의 가곡을 여기저기서 불렀다. 우리 가곡을 레퍼토리에 한 두 곡이든 고집스럽게 끼워 넣었다. 파란 눈을 가진 관객들을 ‘그리운 금강산’으로 울렸다. 한국 가곡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K클래식’이라는 말을 만들어 세계화의 선구자로 뛰고 있다.한(恨)의 감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세계 가곡의 주류로 정착시키고픈 소프라노 임청화 백석대 교수(문화예술학부). 그의 고향은 경기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이고, 유관순의 고향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다. 다른 지역이지만 지명 끝이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위인에게서 자신과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 중요한 건 우연이든 아니든, 그런 작은 맞춤을 동기 삼아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인생을 잘 살았나 점검하는 게 아닐까.
>> 특별한 내가 되기 위한 한 박자 빠른 선택
특별함을 노래하는 ‘임청화’는 선택에 거침이 없었다. “늦게 성악을 해서 성악과를 꼴찌로 들어갔어요. 기초도 부족했죠. 1, 2학년 때는 쥐구멍 찾기 바빴어요. 그런데 3학년 때, 1985년 9월 제가 고향에서 독창회를 했답니다.”
“편도 표만 예약했어요. 왕복으로 샀다면 빨리 한국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어요.”
‘3학년 독창회’처럼 밀어붙이면 뭔가 얻는 게 있겠다 싶었다. 시작이 잘 풀렸다. “입학오디션에선 피아노과 학생들이 반주를 해줘요. 그런데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제게 세계적 피아니스트 탄 크로네 교수님이 반주를 해주시는 거예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용기가 났어요. 교수님이 보기에는 제가 얼마나 단점이 많았겠어요. 그런데 단점 대신에 음색, 성량, 음악성 세 가지에 대해 극찬만 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음 한 마디로 네덜란드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고, 그 한 마디가 나중에 교수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교육 철학의 마중물이 됐다고 했다. “칭찬만 해주신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웰컴 투 마이 스쿨’ 이라고 해주시는 거예요. 한국에선 ‘너는 왜 이게 안 되니’, ‘어떻게 호흡이 짧을 수 있니’ , ‘발음이 왜 그 모양이야’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거든요. 주눅 들어 노래를 못하기도 했죠. 그런 게 익숙했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학생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참교육이구나 깨달았죠.”
>> K클래식 세계화 실천 “문화적 진검승부 중”
한국 가곡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했던 노력은 의미 있는 족적을 많이 남겼다. 한국 성악가 최초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 음악회’ 독창자 타이틀이 돋보인다. 1991년 모차르트(1756∼1791)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네덜란드 여왕 초청으로 헤이그 왕궁극장에서 음악회가 열렸을 때 당당하게 독창자로 출연한 것이다.
“오디션을 통해 딱 1명 뽑는데, 마지막 3명으로 좁혀진 후보에 저와 중국, 일본 사람이 올라온 거예요. 한중일 경쟁에서 제가 이겼죠. 편견없이 실력으로 평가하는 유럽에서 이방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영광스러웠어요.”
1995년 귀국한 임 교수는 한국 가곡이 세계로 뻗어가는 꿈의 확장을 시도했다. 2012년 ‘K클래식 세계화’ 라는 슬로건을 세우고 한국 가곡 알리기에 나섰다. 시작으로 고향인 양평에서 200여 명의 청소년, 대학생들과 가곡을 알리는 국토 순례를 했다. 이듬해 독일 뮌헨 헤라쿨레스잘과 세계 3대 극장인 비엔나 뮤직페어라인 황금홀에서도 ‘그리운 금강산’ 등을 불렀다. 한국 성악가가 그곳에서 한국 가곡을 부른 건 극장 200년 역사상 최초였다. 스펙트럼을 넓혔다. 양평 두물머리의 자연, 지금 시대의 정서를 담아 기존 아리랑의 색깔과는 차별화시켜 만든 ‘두물머리 아리랑’을 해외에서 불러봤다. 해외 독창회, 공연 횟수는 헤아릴 수 없다. 미국에서는 K클래식 콘서트도 했다. 해외에서의 반응을 보고 우리 가곡이 가진 힘과 확장성에 대해 확신을 얻었다.>>“세계적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 제대로 부르는 시대를 이끌 것”
임 교수는 우리 가곡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의 흡수가 절실하다. 그래서 대학 교육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다. 전공 학생들에게 역사와 사람을 ‘스토리텔링’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평가보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함께 가곡을 부르는 기회도 많이 가지려 한다. 잘 된다면 국민과 가곡이 묶인 정체성을 세계에 확실하게 어필하는 K클래식만의 ‘플랫폼’이 뿌리 내릴 것도 같다.
음악 인생 40년. 뜻을 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력을 쌓아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했던 발걸음에 만족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 이름이 ‘샛별사진관’이에요. ‘샛별사진관 큰 딸’로 불리면서 자랐죠. 늘 샛별처럼 보이고 싶어서 저의 확실한 정체성을 찾고 다녔나 봐요.”
자신의 이름을 따 ‘청화문화재단’을 세울 계획도 있는 임 교수는 기대와 도전의 길을 가면서 얻은 울림을 문화적 소통을 통해 나누고 싶다. 이 시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어주셨으면 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할 수 있는 독보적인 존재 말이에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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