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가서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암 병동에서 의사들이 자주 듣는 말이라고 한다. 단순한 소망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다른 절망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75% 이상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호스피스는 여전히 소수의 몫이고, 가족이 간병을 감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스위스행을 꿈꾸는 것은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는 죽기 싫다는 말이다.
신간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그 절박함에서 출발한다. 정신종양학 전문의 박혜윤, 신장내과 전문의 신성준, 의료인문학 교수 최은경 등 죽음을 오래 마주해온 세 저자가 함께 썼다. 조력임종 찬반을 가르는 책이 아니다. 이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려면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2024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고, 찬성 여론은 80%에 달했다. 헌법재판소에는 안락사 허용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접수됐다. 스위스의 조력자살 단체 디그니타스에 등록한 한국인은 2023년 기준 162명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어느새 입법 문턱에 와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그 80%라는 숫자를 신중하게 해석한다. 용어와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면 찬성률이 50%대로 낮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의사들의 찬성 비율은 일반 여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여론의 열기가 충분한 이해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말기 돌봄의 공백이 만들어낸 절박함의 반영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개념부터 제대로 정의한다.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의사조력임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윤리적으로 전혀 다른 함의를 지닌다. 이름이 달라지면 논의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어 자기결정권, 고통, 존엄이라는 조력임종의 세 핵심 논거를 하나씩 해부한다.
자기결정권은 가장 강력한 논거지만, 임종 과정에서 그것을 실현하려면 역설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존엄'이라는 단어는 찬성과 반대 진영이 서로 전혀 다른 의미로 쓴다. 책은 그 혼용이 논의 자체를 얼마나 흐트러뜨려왔는지를 짚는다.
해외 사례도 풍부하다. 30년의 판결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합법화에 이른 네덜란드와 합법화 이후 적용 대상이 말기에서 비말기, 정신질환자로 빠르게 확장된 캐나다, 조력임종 없이도 아시아 최고의 '죽음의 질' 평가를 받은 대만까지. 사례들을 통해 이 제도가 단순히 도입 여부로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기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저자들은 집요하게 묻는다. 노인 3분의 1이 빈곤 수준인 한국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음 쪽으로 밀려나는 일은 추상적 우려가 아니다. 캐나다에서조차 장애인들이 통증이 아니라 빈곤 때문에 조력임종을 떠올린다는 증언이 나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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